금요진단

각자 속에 존재하는 작은 우주, 뇌를 이해할 날이 올까

2021-12-24 11:24:32 게재
이준호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자연과학대 학장

"당신의 주체성과 자유의지조차도 실은 신경세포들과 그와 연관된 분자들의 거대한 집합체적 행동일 뿐이다."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 노벨상을 수상한 프란시스 크릭 박사가 1994년에 쓴 책의 핵심 내용이다. 크릭은 철학의 영역이었던 의식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과감히 과학의 영역으로 환원시켜 풀어보려고 평생 노력했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2004년 타계했다.

그로부터 17년, 우리는 지금 의식에 대해 과학적으로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예를 들어 우리가 '기쁨'을 느낀다고 할 때 그 '기쁨' 현상은 뇌의 신경세포들에서 일어나는 어떤 작용의 결과인데, 그렇다고 해서 신경세포가 기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 그 '기쁨' 이라는 의식의 실체는 무엇일까?

예쁜꼬마선충이 연 신경생물학 새시대

과학의 발전은 기술과 발견, 그리고 새로운 아이디어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뇌에 관해 생각해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 또는 가설과 호기심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그러니 기술의 한계가 곧 우리 지식의 한계였다. 최근에는 기술의 발전으로 엄청난 양의 정보를 빠른 시간에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게 되면서 뇌 연구가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다.

병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기공명영상(MRI, Magnetic Resonance Imaging) 기술을 예로 들어보자. 각각의 방향과 움직임으로 운동하는 수소 양성자들을 자기장의 힘으로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한 후 그 힘을 풀어주면서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에너지를 기록하고 계산해 영상으로 옮기는 것이 MRI의 기본 원리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기능적 MRI(fMRI)가 뇌기능 측정과 연구에 많이 활용되는데, 이는 시간을 두고 MRI를 연속으로 찍어 그 차이를 비교하는 것이다. 활동이 활발한 뇌 부위에는 혈류가 많아지고 헤모글로빈의 산소포화도도 달라서 양성자들의 행동에 차이가 나타나고 결과적으로 MRI 영상이 시간적으로 차이가 나게 된다. 그렇게 뇌의 활성부위 즉 뇌기능을 측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fMRI 기술을 활용하면 질병에 동반되는 비정상적 뇌기능이나, 정상적인 뇌 활동도 확인할 수 있다. 사람이 서로 다른 사물을 인식할 때 작동되는 뇌 부위가 다른데 다양한 뇌 활동을 fMRI를 이용해 기록하면 각각에 대응하는 뇌부위 지도, 즉 뇌 활동 사전을 만들 수 있다. 이 사전이 완벽해지면 fMRI만 봐도 이 사람이 어떤 뇌 활동을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잠자는 사람의 fMRI 영상을 보면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의 꿈을 읽어주는 기계가 머지않은 미래에 나타날 것을 상상해보시라!

fMRI 기술로 인간의 뇌 기능을 분석하고자 하는 것이 뇌에 대한 통합적(holistic) 접근법이라고 한다면, 뇌의 구조 자체를 환원주의적 관점에서 풀어보려는 노력을 경주한 과학자들도 있었다. 인간의 뇌는 너무나 복잡해 풀기가 힘드니 단순한 뇌를 가진 동물을 연구함으로써 인간의 뇌 이해에 적용하고자 하는 시도다.

대표적으로 1980년대에 이미 커넥톰(Connectome) 지도가 완성된 예쁜꼬마선충(Caenorhabditis elegans)을 들 수 있다. 커넥톰은 신경세포들의 연결의 총합을 이르는 말이다. 예쁜꼬마선충이 커넥톰 연구의 모델이 되는 중요한 이유는 단 302개의 신경세포만 가졌지만 필수적인 동물 고유의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실제로 선충 한마리를 고정해 수만장의 절편으로 만들어 전자현미경 사진을 찍어 하나하나 연결함으로써 모든 신경세포와 그들의 8000여개의 연결망을 규명할 수 있었던 때가 1986년이다. 이로부터 새로운 신경생물학 시대가 열렸다. 당시에는 모든 일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져서 하나하나 손으로 칠해가면서 신경세포들을 확인하고 연결을 확인하는 작업을 했으니 참으로 눈물겨운 노력이 아닐 수 없다.

초파리 뇌 연구로 엄청난 기술 발전

커넥톰을 통해 어떤 것을 알 수 있을까? 커넥톰을 전기 배선에 비유한다면, 모든 전선과 그 연결점들을 나타내고 있는 배선도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켜고 끄는 스위치까지는 표시되어 있지는 않은. 커넥톰 정보는 신경세포들의 연결 여부를 알려주기는 하지만 언제 어떤 연결이 더 의미 있고 중요한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많은 연구들이 병행되어 각 신경 연결들의 의미를 찾아내야 하는 일이 중요한 이유다.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꽃이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커넥톰 정보를 분석해 보면 신경세포들의 연결 강도, 중심 허브로 작동하는 세포와 주변 세포들의 집합체 등을 결정할 수 있다. 현재까지 밝혀진 것은 기능이 비슷한 뉴런들끼리 더 많은 연결을 가지고 있다는 점과 신경계 전체는 진화의 과정을 통해 경제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다는 점 등이 있다. 새로운 신경작용의 기전을 알고 싶으면 커넥톰을 들여다보면서 어떤 뉴런이 작동할지 예측해볼 수도 있고 시뮬레이션을 해볼 수도 있다.

커넥톰 정보는 스프레드시트 표로 정리되어 정량적 계산의 대상으로 환원되어져 있다. 다양한 개체들(같은 종이거나 인접한 종이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의 커넥톰을 비교할 수 있다면 신경세포 연결의 보편성과 개별성,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를 검증해 볼 수도 있을 것이고, 특정 신경작용의 진화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1980년대 이후 한동안 정체되어 있던 커넥톰 연구는 2020년대 들어 다시 뜨겁게 불붙고 있다. 이번에는 좀 더 큰 규모로, 더 큰 목표를 가지고 진행되는 중이다. 여기서도 4차산업혁명의 총아인 인공지능이 그 동력을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하워드휴즈재단의 자넬리아연구소에서 진행하는 초파리의 전체 뇌 규명 프로젝트를 들 수 있겠다. 지난해 초파리 뇌의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커넥톰을 규명하더니 올해는 전체 뇌의 커넥톰을 풀 수 있는 정보를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자넬리아연구소에서 시작하는 프로젝트는 공통의 목표를 설정하고 다학제적 융복합 연구를 전폭적으로 진행하면서 한번 착수하면 15년을 지속하는, 세계적으로도 아주 드문 파격적인 과학 모험 여행이다.

머지않아 인간의 뇌 커넥톰도 밝혀낼 듯

휴먼게놈 프로젝트를 되돌아보면, 그 시범사업으로 예쁜꼬마선충의 게놈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그 과정에서 엄청난 기술적 진보가 이루어졌다. 결국 처음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속도로 인간게놈 프로젝트가 진행되었고 곧 인간 유전체 전체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아마 커넥톰 연구도 비슷한 경로를 따라 발전하지 않을까 싶다. 예쁜꼬마선충이 커넥톰 연구의 희망을 보여주었고 초파리 뇌 커넥톰 규명 연구를 진행하면서 엄청난 기술적 진보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머지않은 미래에 인간의 뇌 커넥톰도 고스란히 우리 눈앞에 펼쳐지지 않을까 기대를 하게 된다.

최근 엄청난 발전을 거듭해온 뇌 과학이지만 아직도 우리는 초파리의 뇌 커넥톰도 정확히 모를 뿐 아니라 커넥톰이 환경과 발생시기에 따라 어떻게 다른 지도 거의 모른다. 그럼에도 생명과학, 특히 뇌과학의 매력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아직도 훨씬 많다는 것과 장차 풀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아닐까 싶다. 최근의 눈부신 과학과 기술의 진보는 적어도 뇌와 그 고도의 결과물인 의식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가능할 것이라는 믿음을 주기에 충분하다.

과학과 철학이 한뿌리였던 때가 있었고, 한동안 나누어져 있었지만 앞으로 높은 단계에서 다시 만나는 때가 올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그때 우리는 우리의 뇌로 우리의 뇌를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커넥톰이란]

커넥톰은 뇌의 모든 신경연결의 총합을 이르는 용어로서 2005년 스폰스(Olaf Sporns) 박사와 해그만(Patric Jagmann) 박사가 독립적으로 거의 동시에 제안한 용어다. 유전자의 총합을 유전자(Gene)와 총합(ome)을 합쳐 게놈(genome)이라고 부르는 것, 단백질의 총합을 프로테옴(proteome = protein + ome)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원리다.

커넥톰 연구 결과물의 시초는 ‘Mind of Worm’이라 불리우는 예쁜꼬마선충의 커넥톰이다. 현재까지 커넥톰이 고스란히 다 알려진 유일한 동물이 예쁜꼬마선충인데, 조만간 초파리가 그 대열에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

커넥톰이라는 용어가 대중화된 것은 2010년 프린스턴대학의 재미한인 과학자 세바스찬 승 교수가 TED에서 한 ‘나는 나의 커넥톰이다’(I am my Connectome)라는 강의 이후다. 승 교수는 KT와 함께 아이와이어(eyewire)라는 게임을 출시해 커넥톰 연구를 시민과학의 수준으로 승화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2012년 승 교수는 ‘커넥톰’이라는 책도 저술하여 커넥톰 연구를 대중화시키는데 앞장섰다.

예쁜꼬마선충 커넥톰 분석의 예. 특정 신경세포들의 연결이 특정 행동의 핵심이 된다.(Sohn et al., 2011)



[자넬리아 연구소는]

하워드휴즈재단(HHMI)이 설립한 생명과학연구소다. HHMI는 민간재단으로서 초우수 생영과학 연구자들에게 큰 규모의 연구비를 장기적으로 지원해 주는 가장 대표적인 연구지원기관으로 자넬리아연구소를 설립하기 전까지는 기존의 대학 캠퍼스들에 있는 연구실들을 지원해 왔다. 그런데 다학제간 연구를 통해서만 이룰 수 있는 대규모 연구는 기존의 대학 캠퍼스에서 하기 힘들다는 점을 알고 버지니아주의 작은 마을에 있던 오래된 농장을 연구소로 개조해 2006년 자넬리아연구소를 설립,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2014년까지는 자넬리아 농장 캠퍼스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나 현재는 자넬리아연구소라고 불리고 있다.

15년 주기의 장기 다학제간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 이 연구소의 특징이다. 2019년부터 2033년까지 기전 중심의 인지신경과학 프로젝트가 가동 중이며, 2023년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15년 짜리 두번째 프로젝트는 4차원적 세포생리학 프로젝트다. 이러한 주제 중심의 프로젝트의 기반이 되는 새로운 현미경 등 전혀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는 연구소 설립 이후 계속 되어왔다. 전적으로 민간재단에 의해 진행되는 가장 기초적인 과학 프로젝트의 대표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작은 규모이기는 하지만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이 기초과학 육성을 위해 HHMI와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