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면택 워싱턴 특파원 현장보고
미 한인들 "한국전화 받기 겁나요"
막무가내 유학 부탁에 몸살
여름방학철이 다가오면서 유학이나 연수를 도와달라는 한국발 전화들이 빗발치고 있다. 오랫동안 준비해온 유학, 연수를 위해 도와달라는 부탁이면 부담이 없지만 미국 사정을 외면한 채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요청에 많은 미주 한인들이 홍역을 앓고 있다.

<한국에서 자녀들을 미국에 조기 유학보내려 할 경우 사전 답사를 한 다음 학교를 선택하고 기숙학교나 홈스테이 등 주거방식을 결정한 후 유학생활을 시작해야 한다. 내일신문 자료사진>
"요즘 한국전화 받기 겁나요.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가슴이 쿵쾅거려요." 워싱턴DC 근교인 버지니아 페어팩스에 사는 주부 한선영(가명)씨는 여름 방학이 다가오면서 걱정거리가 생겼다. 올 여름방학에는 한국서 조기 유학생과 어학연수생이 찾아오기로 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남편은 한국에 있을 때 도움을 받았던 지인의 고등학생 딸을 집에 데려왔다. 며칠 머물다 가는 줄 았았으나 유학을 준비하러 왔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학교를 알아보고 한국으로 나간 그 여고생이 여름 방학때 다시 온다는 소식에 앞이 캄캄할 지경이다.
그 여고생이 여름에 다시 와서 9월부터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 때늦은 수험생 뒷바라지를 해야 하고 무엇보다 매일 아침과 오후에 차로 데려다 줘야 하기 때문에 모든 생활이 엉망이 될 것이라고 한씨는 걱정하고 있다.
매일 이른 아침 가게 문을 열기 전에 이 학생을 사립학교에 데려다 주고 점심을 먹자마자 학교에 데리러 가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일을 하지 않는 한인 주부들이 한 달에 2000달러 정도 받고 유학생 홈스테이를 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참아볼 수도 있겠지만 한씨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서울에 있는 학생의 부모로부터 숙식비는커녕 등하교 비용에 이르기까지 한푼도 받지 못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미국사정을 전혀 생각지 않고 무턱대고 딸을 미국에 보내는 그녀의 부모를 이해하기 어렵고 단지 도움 받았던 지인이라는 이유로 모든 경비를 떠맡으려는 남편이 밉다고 한씨는 하소연했다.
버지니아 센터빌에 살고 있는 배정희씨는 수년만에 친척의 전화 한 통을 받고 의아해 했다. 다정다감한 목소리의 본래 목적은 몇분만에 드러났다. 자신의 대학생 딸이 영어연수차 워싱턴으로 가게 됐으니 도와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로부터 배씨는 어학 연수차 온 박지연(가명) 양의 미국보호자가 됐다. 공항픽업에서 시작해 며칠 동안 정성껏 대했고 생활용품을 사줬다. 대학기숙사까지 데려다 주고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어김없이 집으로 데려와야 했다. 배씨는 1년 가까이 자원봉사자와 같은 생활을 해야 했다.
한씨나 배씨와 같이 한국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기가 겁난다고 토로하는 워싱턴을 포함한 미주지역 한인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이들은 한결 같이 적절한 시기에 철저한 준비를 갖추고 미국내 친지, 친구들의 사정을 감안해 부탁하는 것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한다. 학비는 물론 생활비까지 모두 내는 경우들도 많이 있다고 이들은 전했다.
그러나 배씨와 한씨의 경우에는 한인들의 생활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물론 가정불화까지 부채질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또 해당 유학생들의 대다수도 틈바구니에서 눈치를 봐야 하고 스트레스를 받아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 채 방황하는 사례들도 많다고 한인들은 전하고 있다.
"남의 아이 돌보는데 열번을 잘했다가 한번만 잘못해도 원성을 듣기 십상인데… 한국전화 받기 무섭지 않겠어요. 막무가내 유학이나 연수, 인정만 내세운 무분별한 부탁은 자제했으면 해요."
악몽이 시작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듯하다면서 한씨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통상적으로 '막무가내 조기 유학'의 경우 사립학교에 입학해야 하는데 기숙학교를 포함해 이름난 학교들은 영어테스트와 영어인터뷰 등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곧바로 입학허가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쉽게 입학할 수 있을 것 같은 미션 스쿨을 가보면 미국에서 1년은 학교에 다닌 다음 전학할 수 있기 때문에 곧바로 입학하기는 어렵다. 결국 들어보지도 못한 사립학교에 입학하게 되는데 대다수는 학비만 비쌀 뿐 공부와는 거리가 멀고 소위 문제아들이 많아 잘하면 왕따, 잘못하면 탈선할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한인들은 경고하고 있다.
워싱턴 지역에서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아카데미 학원을 경영하고 있는 진 필립 박사는 한국에서 자녀들을 미국에 조기 유학보내려 할 경우 사전 답사를 한 다음 학교를 선택하고 기숙학교나 홈스테이 등 주거방식을 결정한 후 유학생활을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학생 어학연수일 경우 해당 대학에서 기숙사를 이용하고 주말에 머무를 수 있는 친척집이 있는 지역을 선택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진 박사는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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