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학기제, 대학입시 '블랙홀'에 빨려드나

2016-03-03 12:06:46 게재

학부모, 대학입시에 영향 주지 않을까 걱정 … 정부, 학원가 단속 나섰지만 효과미지수

"자유학기제가 좋은 것 같은데, 성적이 떨어질까 걱정 되는 건 사실입니다." "제 주변에 학원상담을 받은 부모들이 많은데, 솔직히 대학입시에 영향을 미칠 것 같은 불안감이 드네요."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딸을 둔 김진희(가명·서울 마포구)씨 말이다. "일단 자유학기제 시작을 하면 좀 더 지켜본 후 학원을 보낼지 말지 결정할 생각입니다." "아이 미래를 좀 더 멀리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최 진우(가명 고양시 일산구)씨 소감이다.

올해 자유학기제 전면시행을 앞두고 학부모들의 생각이 엇갈린다.
지난 달 25일 이준식 사회부총리와 카이스트에서 자유학기제 궁금증에 대해 토론하는 충남 보령지역 중학생들. 사진 교육부 제공


학생들은 자유학기제 동안 중간·기말고사를 치르지 않아 시험부담에서 해방됐지만, 학부모들은 대학입시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내심 걱정이다. 정부는 한 학기동안 시험이 없는 대신 다양한 진로교육 기회를 제공, 미래 변화하는 직업세계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자유학기제 성과 중 눈에 보이는 가장 큰 성과는 수업과 평가방식이다. 일방적 주입식 교육과 줄 세우기 경쟁수업에서 벗어나, 대안과 토론중심의 협력 수업방식을 선택했다. 교사 학생 모두 만족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처방이다.

그럼에도 자유학기제가 대학입시라는 블랙홀에 빨려드는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학부모들의 불안이 쉽게 수그러들지 않는 이유다.

대덕 항공우주연구원을 찾은 충남 보령 중학생들이 로켓 발사체와 낙하산을 만들고 있다. 사진 전호성 기자


서울 강남에서 학원 강사로 활동 중인 최정윤(가명)씨는 "시험이 없다보니(자유학기제 기간) 학부모들의 불안감이 커지는 것은 사실"이라며 "그렇다고 사교육시장이 엄청 특수를 누리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학원에 보내는 집단은 자유학기제와 무관하게 학원을 지속적으로 선택한 학부모들"이라며 "자유학기제가 사교육 증가시키는 원인처럼 해석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덧붙였다.

다급해진 정부는 학원가 단속에 나섰지만 효율성은 미지수다.

교육부는 고용노동부 여성가족부 국민안전처 시도교육청 등과 함께 12월까지 자유학기제 왜곡 광고 합동점검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서울 대치동·목동·중계동과 경기도 분당·일산 등 수도권 학원 밀집지역이 단속 대상이다.

◆자유학기제에 학부모 불안심리 작용 = 서울 대형학원에서 상담을 맡은 이 모 실장은 "솔직히 학부모들에게 불안심리를 조장하는 점도 있다"며 "자유학기제 기간에 사교육 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학부모들은 자녀 성적이 상위그룹으로, 대학입시 관련 수업이나 진로교육에 불만이 있는 계층"이라고 설명했다.

대학입시나 진로교육에 대한 불안감은 농어촌보다 오히려 대도시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권진원(가명·경기도 분당)씨는 "딸아이 학교성적은 상위 10위권으로 외교관을 생각하고 있는데, 지난해 자유학기제 동안 진로 적성에 맞는 체험은 하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권 씨는 "딸이 학교 수업을 마치면 학원에서 영어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과목을 보충한다"고 덧붙였다.

전면시행을 앞두고 학부모들의 불안감이 커진다고 판단한 정부는 개선점 보강과 의혹 해소에 나섰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사교육을 통해서는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없도록 자유학기제 정책을 보다 정교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유학기제 시범사업과 연구 과정에서 개선이나 보완할 점을 점검하고, 학부모들이 만족할 내용으로 채워가라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준식 사회부총리겸 교육부 장관은 현장으로 달려갔다. 지난달 29일 이준식 부총리는 서울교육대학교 문화관에서 서울지역의 예비중학생 학부모 300여명과 자유학기제를 놓고 토론에 나섰다. 이번 토크콘서트를 시작으로 20회 대장정에 올랐다. 예혜란 교육부 공교육진흥과장은 "자유학기제에 대한 학부모의 걱정을 덜기 위해 토크콘서트를 마련했다"며 "자유학기제가 아이들의 꿈과 끼를 찾아주고 미래 진로의 좌표를 찍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학원 등 사교육에 대한 학부모들의 불안과 걱정을 해소하고 자유학기제 질을 높여 학교에서 원활히 시행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지다.

◆"대입정책 변화와 진로교육이 자유학기제 승패 가를 것" = 2014년과 2015년 자유학기제 시범운영과 연구학교를 통해 많은 성과를 거뒀다.

지난해 한국교육개발원이 실시한 자유학기제 운영 만족도 조사결과 일반 학교와 만족도 차이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눈에 띄게 나타난 변화는 '학생은 재미를, 교사는 보람' 느꼈다는 점이다. 특히 수업방법 개선, 학생 수업 참여, 학교생활 행복감, 학교 구성원 간 관계 만족도 등 학교생활 전 영역에 걸쳐 일반학교보다 높게 나타났다.

자유학기제를 경험한 대부분 학생들은 "공부하는데 집중이 더 잘되고 주제선택 활동에서 제 숨겨진 재능을 찾을 수 있어 좋았다"말했다.

교사들의 '교육과정 및 수업' 만족도 조사에서 연구학교의 경우 사전 3.93에서 사후 4.22로 증가한 반면, 일반학교는 3.77에서 사후 3.93으로 변화 폭이 좁았다.

질 높은 진로교육이나 체험이 학생과 학부모의 만족도를 높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12월 충북지역 중학생들은 '찾아가는 진로체험버스'를 타고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평창으로 진로체험을 떠났다. 학생들은 올림픽 선수보다 올림픽을 준비하는 다양한 직업군에 새롭게 눈을 떴다. 아이들은 "올림픽 관련 직업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는 반응을 보였고, 교사와 학부모들은 "아이가 평창 진로체험을 다녀온 후 생각과 행동이 긍정적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23일 1박2일 일정으로 카이스트와 대덕연구단지를 찾은 충남 보령지역 중학생들도 '카이스트에서 노벨상을 꿈꾸다!' 는 주제로 과학전문 진로체험을 경험했다. 직접 로켓을 만들어 쏘아 올리며 발사체에 대해 공부했다. 체험 후 만족도조사에서 38명 모두 '만족한다'며 친구에게 권하고 싶다고 답했다.

행사에 참석한 이준식 부총리는 "지식 습득은 다른 수단으로 얼마든지 대체 가능하기 때문에, 창의·협업을 위한 교육으로 시스템을 전면 개편하고, 아이디어와 기술의 융합이 필요한 교육을 펼쳐 나가겠다"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중요한 역할을 자유학기제가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지난해 전국 공공조직과 민간기업 등을 대상으로 진로체험처 6만여개와 양질의 관련 프로그램 10만여개를 자유학기제 지원이 가능하도록 묶어냈다. 전면시행 시, 학생 47만3116명을 10명씩 소그룹으로 묶어 2회 체험활동이 가능한 숫자다.

자유학기제 동안 활동내역을 생활기록부에 기록하고,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기능도 개편한다. 자유학기제 주요활동 내용을 대입에 연계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올해부터 고교 1학년 1학기에 진로교육을 집중 실시하는 '진로교육집중학기제'를 37개교에서 시범운영한다.

문제는 학교 현장의 소화력이다. 이미 시행한 시범학교나 희망학교는 문제 될 게 없지만, 전면 시행을 맞이하는 초보학교 3000여개는 시행착오나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올해 자유학기제가 전면시행되면서, 모든 중학교에서 지난해 같은 성과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대학입시와 연계된 불안을 해소하고, 얼마나 질 높은 진로교육을 하느냐가 자유학기제 승패를 좌우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호성 기자 hsjeo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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