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유가, 경제에 좋다'고? 부채가 '발목'

2016-08-05 10:56:47 게재

미, 1달러 벌 때 10달러 빚

국제유가와 경제성장은 죽고 못사는 애인이라기보다 서로 으르렁거리는 먼 사촌간 관계와 비슷했다. 일반의 통념상 저유가는 경제 전반이나 세계 경제엔 좋은 신호였다. 물론 석유로 수익을 올리는 석유산업계나 산유국에게는 분명한 악재인 건 분명하지만, 전체적으로는 플러스의 요소가 컸던 건 사실이다.
미국 노스다코타주 윌리엄스 카운티 티오가 시 인근의 셰일석유광구에서 '오일펌프잭'이 석양을 배경으로 기름을 퍼올리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고유가 국면이 펼쳐졌고, 그에 따라 미국엔 셰일석유 붐이 거세게 불었다. 미국에서 고유가 고성장의 예외상황이 벌어졌지만 많은 이들은 저유가가 경제성장과 회복을 뒷받침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다.

하지만 국제유가가 배럴당 40달러대로 약세를 지속하고 전 세계 경제성장이 동시에 지지부진한 상황이 이어지면서 '저유가가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통념을 수정해야 한다고 인터넷매체 '리소스인사이트' 5일 보도했다.

2014년 국제유가가 하락 반전한 이후 미국 경제성장률은 크게 낮아졌다. 지난주에 발표된 자료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올 2분기 미국 경제성장률은 연율 기준 1.2%로, 각종 기관 예상치 2.5%의 절반도 못 미쳤다. 1분기 성장률은 추정치 1.1%에 못 미치는 0.8% 확정치로 수정됐다. 이는 2014년 3분기 5% 성장률로 최정점을 기록한 이후 크게 하락한 것이다. 당시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훌쩍 뛰어넘은 마지막 시기였다.

전 세계 경제성장률도 속도를 더하기는커녕 오히려 둔화되고 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14년 2.6%, 지난해 2.5% 성장에 그쳤다. 저유가 혜택은 온데간데없었다.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 성장률이 수준이하를 기록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4년간 국제유가는 연일 상종가를 기록했지만 세계 경제동력은 약화됐다. 고유가 때문에 비(비) 에너지경제 부문의 자금이 에너지부문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민간과 공공부채 수준이 크게 높아졌다는 점도 낮은 경제성장률을 설명하는 또 다른 이유다. 돈을 벌어도 소비와 투자 대신 빚을 갚는 데 써야 하기 때문에 경제성장을 지연시킨다.

올 1분기 미국의 신용팽창 규모는 6449억달러(약 719조원)에 달했다. 같은 기간 미국 국내총생산(GDP) 팽창 규모는 647억달러(약 72조원)에 그쳤다. 단순 계산으로 GDP가 1달러 오를 때 빚은 10달러씩 오른 셈이다. 성장과 빚의 비율이 1대 1이었던 적이 언제였는지 모를 정도로 오래됐다. 반면 지난해 말 기준 중국의 신용팽창은 GDP 성장의 약 2배 수준이다.

물론 빚을 꼭 나쁘게만 볼 수는 없다. 단순 소비가 아니라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기 위해 무언가에 투자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빚은 요긴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현재 부채 팽창의 많은 부분은 단지 소비를 위한 것이다. 또 개인이나 국가, 또는 전 세계 시민사회가 빚에 대한 사용료, 즉 이자를 꼬박꼬박 갚을 여력이 있을 때는 소비만을 목적으로 한 대출도 반드시 나쁜 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빚이란 성장의 목덜미를 낚아채고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

저유가와 저성장의 동조화 현상은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국제유가가 세계 경제의 전반적 건강상태와 연결되는 비중이 과거보다 높아졌기 때문이다.

우선 석유는 세계경제를 굴리는 기본 동력이다. 특히 운송·수송 부문에서는 절대적이다. BP가 발간하는 전 세계 에너지통계 리뷰에 따르면 운송·수송 부문은 전체 석유수요의 33%를 차지한다.

둘째 미국 내에서 석유의 또 다른 원천을 찾으려는 열풍이 불면서 셰일석유업체들이 막대한 빚을 동원했다. 셰일업계는 수압파쇄공법을 통해 심해나 땅속 깊은 곳의 유정을 발굴하는 막대한 비용을 대부분 은행 대출로 충당했다. 신용이 팽창하면서 미국 경제전반에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하지만 저유가 국면으로 반전되면서 셰일업체들이 뽑아올리는 고비용의 석유로는 손익분기를 맞추지 못하게 됐다. 이는 결국 셰일업체의 석유생산을 크게 감소시키고 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대를 기록하던 때 호황기를 누리던 많은 중소규모 셰일업체들은 이미 파산했거나 다가올 파산을 기다리고 있다.

명심해야 할 점은, 빚이란 미래에 소비돼야 할 것을 현재로 앞당기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셰일업체들이 빚으로 석유를 파올린 것은 미래에 사용돼야 할 석유를 현재로 앞당긴 것에 불과하다. 석유뿐 아니다. 다른 천연자원이나 완성재도 막대한 민간·공공 빚을 통해 앞당겨 사용하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들의 막대한 돈을 풀고 금리를 제로까지 낮추는 등 갖은 노력을 했지만 여전히 현재의 경제성장은 과거에 비해 크게 둔화되고 있다.

만약 저유가가 산업경제 성장의 주춧돌이라고 가정한다면 에너지비용이 저렴하게 유지되는 한 우리는 상대적으로 빠른 속도로 성장해야 한다. 일단 에너지비용이 오르면 많은 경제부문의 성장은 둔화할 수밖에 없다. 점점 더 많은 자원과 자본이 에너지 부문으로 가야하기 때문이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현재의 저유가 국면은 세계 경제의 상당한 부양책이 돼야 한다. 하지만 왜 그것을 느끼지 못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지난 15년간 우리가 값비싼 에너지를 얻기 위해 빚을 내야 했고, 이 상황이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 일종의 숙취를 경험하고 있다.

리소스인사이트는 "최근 저유가 상황은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에 또 다른 위험요소가 추가됐다는 걸 의미한다"며 "저유가로 이용가능한 자원이 늘어났지만 가계와 기업의 막대한 빚으로 인해 경제성장의 '땔감'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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