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채용비리' 실형 선고 이유 들여다보니
'평가기준 변경' 60등을 6등으로 바꿔 채용
"김수일(당시 인사담당 부원장보), 범죄전체에 본질적 기여" … "상급자 지시에 따랐다고 감경사유 안돼"
인사담당 임원인 김수일 전 금감원 부원장에게는 징역 1년, 총무국장이었던 이상구 전 금감원 부원장보는 징역 10월의 실형이 선고됐다.
금감원은 2014년 경력·전문직 채용과정에 법률전문가로 로스쿨 출신 변호사 임 모씨를 합격시켰다. 임씨는 최수현 원장의 행정고시 동기이자 전직 국회의원인 임영호씨의 아들로 드러났다. 채용비리가 벌어진 2014년 금감원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법원 판결문을 통해 사건을 재구성했다.
◆한차례 기준변경에도 46등 탈락 = 금감원은 2014년 경력·전문직원을 채용하면서 법률전문가 영역에서 36명을 서류전형 합격자로 발표했다. 하지만 서류전형 합격자 발표일 이틀 전 이상구 당시 총무국장은 김수일 부원장보에게 현행 서류전형 평가기준을 적용하면 임씨는 60등(67점)으로 탈락한다는 내용을 보고했다.
김 부원장보는 '필기시험이라도 볼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 국장은 채용담당 직원에게 서류전형 평가항목 중 졸업연도 점수를 삭제해서 임씨의 경력적합성 평가등급을 B에서 A로 올리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이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임씨는 46등(72점)으로 서류전형에서 탈락하는 결과가 나왔다.
이날 오후 이같은 결과를 보고받은 김 부원장보는 '다른 방법을 강구해 보라'는 취지로 추가적인 평가기준 변경을 지시했다. 이 국장과 채용담당은 당초 로스쿨이나 사법시험 등 변호사의 출신에 상관없이 서류전형 합격자를 뽑기로 한 채용계획과 달리 이를 구분해 평가하고 로스쿨 출신의 경우 경력기간 점수를 삭제했다. 기준을 변경하자 임씨는 6등(92점)으로 서류전형에 합격하는 결과가 나왔다.
이 국장은 평가결과를 김 부원장보에게 보고하고 전결권자인 당시 최종구 금감원 수석부원장(현 금융위원장)에게 최종 결재를 받았다. 임씨는 이후 두 차례 면접을 거쳐 최종 합격했다.
◆당시 총무국장 "최수현 원장이 지시" = 이번 채용비리 사건은 당시 최수현 금감원장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는 의혹이 컸다. 채용비리로 뽑힌 임씨는 최 원장과 친분이 두터운 전직 국회의원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당시 총무국장이었던 이상구씨는 이후 임원으로 승진해 부원장보가 됐고 채용비리가 터지자 사표를 냈다.
재판과정에서 이씨의 변호인은 "서류전형 평가기준을 변경한 것은 당시 최 원장과 김 부원장보의 양해 하에 부정한 지시에 따른 것이라서 금감원 또는 최 원장의 직원 채용 업무와 관련해 위계(속임)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최 원장이 지시를 내리고 보고를 받았는지 여부를 수사했지만 구체적인 정황을 확인하지 못하자 공소장에 "김 부원장보와 이 국장은 당시 최수현 원장이 임씨의 채용 여부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서류전형에 합격시키기로 마음먹었다"고 적었다.
결국 형사처벌 결과만 놓고 보면 원장이 지시를 내렸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임직원들이 원장의 의중대로 임씨를 뽑기 위해 위법행위를 벌인 것이다.
실형을 선고받고 부원장에서 물러난 김수일씨는 재판과정에서 혐의를 부인했다. 총무국장인 이씨가 자신의 권한 범위 내에서 금감원의 정책적인 목표에 부합하도록 평가기준을 변경했다고 주장했다.
김씨의 변호인은 "김수일이 서류전형 합격을 지시했다고 인정되더라도 '평가등급 변경'까지 지시하거나 이씨와 이를 상의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평가등급 변경을 명시적으로 지시하지 않았더라도 김씨가 예상할 수 없거나 허용하지 않을 방법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김씨가 범죄 전체에서 차지하는 지위, 역할이나 범죄 경과에 대한 지배나 장악력 등을 종합해 볼 때 이씨의 업무방해 범죄 전체에 대해 본질적 기여를 통한 기능적 행위지배가 존재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금융 신뢰도 떨어뜨린 범죄" = 검찰은 이씨에게 징역 8월을 구형했지만 재판부는 징역 10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총무국장이던 이씨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이씨가 김씨의 지시에 의해 범행을 저질렀더라도 이씨는 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권한과 책임, 능력을 모두 갖췄다고 보인다"며 "상급자의 지시라는 사정은 이씨의 형을 경감시킬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금감원의 특수성도 실형 선고에 영향을 미쳤다. 재판부는 "금융기관에 대한 검사·감독 업무 등을 수행하는 금감원에서 이런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금감원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금융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린 범죄"라고 말했다.
다만 드러난 범행이 채용의 첫 단계인 서류심사 업무에 관한 것이고 이씨는 범행의 책임을 지고 사임했으며 반성하고 있다는 점을 양형에 반영했다. 김씨의 경우 많은 금액을 꾸준히 기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