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복지 로드맵 1년

정책기조 ‘긍정적’, 세입자 대책 ‘부실’

2018-11-26 11:01:27 게재

주거급여 부양의무자 폐지 … ‘신혼부부’에 과도한 집중 논란

문재인정부의 주거복지정책 청사진인 ‘주거복지로드맵’이 발표된 지 29일로 1년이다. 지난 1년간 집값과의 전쟁 중에도 주거복지를 향한 발걸음은 이어졌다. ‘임대시장 안정화 방안’ ‘신혼부부·청년 주거지원 방안’, ‘취약계층.고령자 주거지원 방안’ 등 주거복지로드맵을 구체화하는 작업이 진행됐다. 현 정부 주거복지정책 1년을 짚어본다.

◆생애주기별 맞춤형 정책 마련 = 주거복지 로드맵은 ‘맞춤형’ 주거사다리를 제시했다. 주거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생애주기별 주거복지망을 구축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청년층 신혼부부 고령층 저소득 가구에 대한 맞춤형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한다.

김현미(왼쪽 세번째) 국토교통부 장관이 10월 24일 서울 정동 국토발전전시관에서 열린 ‘제3차 주거복지협의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주거취약계층을 적극 발굴하고, 공공임대주택 보증금 부담을 완화하는 내용의 '취약계층.고령자 주거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사진 국토부 제공


무주택 서민과 실수요자를 위해 향후 5년간 100만호(공공임대주택 65만호, 공공지원주택 20만호, 공공분양주택 15만호)의 공공 및 공공지원 주택을 공급한다.

주거복지로드맵에 이어 ‘임대차 시장 안정화 방안’(2017년 12월), 청년.신혼부부(2018년 7월), 취약계층.고령층 주거지원방안(2018년 10월) 등이 잇따라 발표됐다.

지난 1년에 대해 국토부는 “주거복지로드맵 발표, 주거복지정책관 출범 등 추진체계를 정비하고, 맞춤형 주거지원을 구체화하는 과정이었다”고 평가했다.

우선 주거급여 수급자 선정시 적용하던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했다. 부양의무자(수급권자의 1촌 직계혈족 및 배우자)가 수입이 있으면 부양을 하지 않더라도 수급 권자가 될 수 없었다. 대표적 ‘적폐’로 폐지 요구가 많았다. 이에 따라 주거급여 수급자가 2017년 81만가구에서 올해는 130만가구 이상으로 늘었다.

김선미 성북주거복지센터장은 “아직도 주거급여 선정기준이 매우 낮고, 재산 소득환산방법이 엄격한 점 등은 문제지만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된 건 환영할만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도입 때부터 특혜시비가 일었던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옛 기업형임대주택, 뉴스테이)에 대해 과도한 혜택을 줄인 것도 성과로 꼽힌다. 뉴스테이는 초기임대료 규제가 없어 시세의 90%에 이르는 등 혜택에 비해 공공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많았다.

변창흠 세종대(행정학과) 교수는 “이명박·박근혜정부 10년간은 주택시장 살리기에 집중하면서 주거취약계층을 위한 주거복지정책은 많이 부족했다”며 “문재인정부가 서민주거안정과 주거복지를 위한 여러 긍정적인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신혼부부가 주거취약 계층인가”= 그러나 문제도 많다. 먼저, 신혼부부가 주거복지정책의 주된 수혜계층이 되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출산장려정책과 맞물리면서 주거복지 혜택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주거복지로드맵에 따르면, 정부는 5년간(2018~2022년) 신혼부부 25만호(나중에 5만호 추가), 청년 19만호(공공지원 6만호), 노인 5만호, 저소득 41만호(공공지원 14만호)의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할 계획이다. 저소득층이 다양한 계층을 아우르는 점을 고려하면 단일계층으로는 신혼부부에게 가장 많은 물량이 배정됐다.

그러나 신혼부부는 적어도 '소득'을 기준으로 볼 때 정책 우선순위가 아니다. 통계청(2017년 기준)에 따르면, 신혼부부 222만4816가구 중 98만6615가구(44.3%)가 연 4000만~7000만원 소득자다. 전체가구(27.8%)보다 1.6배 많다.

신혼희망타운 입주대상자도 맞벌이는 도시근로자 평균소득 130%, 외벌이는 120%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소득은 도시근로자보다 많지만 출산장려를 위해 상당한 주거혜택을 제공하는 것이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주거복지 자원) 배분의 적정성에 대한 논의가 거의 이뤄지지 않은 상태이고, 배분기준도 제시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신혼부부 특화용 주택인 '신혼희망타운'에 대해서도 곱지않은 시선이 많다. 우리 사회의 희소자원이자, 미래세대에게 물려줘야 할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까지 풀어 신혼부부에게 혜택을 주기 때문이다. 특히 공공자산인 공공임대주택이 아닌, 분양받는 사람에게 모든 혜택이 돌아가는 분양주택으로 공급하는 것이어서 더욱 문제가 되고 있다. 신혼희망타운이 '공공성 부족'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 폐기된 이명박정부의 '보금자리주택' 재판이라는 비난이 쏟아지는 이유다.

결국, 국토부도 보완책을 마련했다. 과도한 시세차익을 환수하기 위해 분양가격이 신혼희망타운 입주자격인 순자산기준(2억5060만원)을 넘으면 '수익공유형' 기금대출을 의무화했다. 주택매각시 얻은 수익을 주택도시기금과 나눠야 한다. 또 신혼희망타운 공급물량의 1/3을 임대주택(행복주택, 국민임대)으로 공급할 방침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공급물량(5년간 총 15만호)의 2/3는 분양주택이다.

최은영 소장은 "신혼희망타운은 전면 재검토돼야 한다"며 "환매조건부 등으로 개발이익의 사적 전유를 방지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실상 세입자 보호대책은 없다”= 민간임대차시장 투명성과 세입자 권리보호에도 소극적이라는 지적이다. 민간임대시장에 내몰려 있는 무주택 서민의 주거안정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공공임대주택 재고가 6%로, OECD 평균(8%)을 밑돌고 있는 상황에서 많은 무주택자들이 민간임대시장에 놓여 있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800만 세입자 주거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임대등록의무화’와 ‘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 도입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문재인정부는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로 답했다.

임대인에게 취득세, 재산세, 건강보험료 등을 감면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해 임대주택 등록을 유도하겠다는 계산이다. 대신 4~8년간 임차료 인상률을 5% 이내에서 제한한다. 이를 통해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를 도입한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임대차 시장 안정화' 정책은 임대인의 임대주택 등록을 의무화하고 있지 않다. 임차인 주거권 보장이 세입자 권리가 아닌, 임대인 선의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를 갖고 있다.

게다가 임대차 시장안정화 정책은 당초 의도와 달리 다주택자들의 재산불리기만 도와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결국 정부는 임대사업자에 대한 혜택을 줄일 수 밖에 없었다.

이원호 빈곤연대 집행위원장은 “정부는 전월세상한제 등 적극적인 세입자 보호대책을 2020년 이후 도입을 검토하는 것으로 미뤘다”며 “사실상 세입자 보호대책은 없다”고 비판했다.

◆UN 특보 “고시원.쪽방 주거환경 개선전략 수립하라”= UN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모든 국민의 인권으로서의 주거권 보장’을 국가의무로 인정하고 있다. 국가가 국민의 주거권 실현을 위해 노력할 것으로 주문하고 있다.

UN사회권규약위원회는 지난해 7월 한국에 대해 “주거정책이 홈리스에 대한 장기적 해결책을 제공하고 있지 않다”고 우려했다. △적절하지 않은 거처에 거주하는 개인.가구가 많고 △주택부족 등으로 인해 주거비 부담이 높고 △강제퇴거에 대한 적절한 세입자 보호장치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지난 5월엔 레일라니 파르하 UN 인권이사회 적정주거 특별보고관이 방한해 권고안을 발표했다. 정부가 고시원.쪽방 주거환경 개선전략을 수립할 것과, 비닐하우스 등 불안정한 주거상황에 놓인 주민에게 적절한 장기주택을 제공할 것을 권고했다. 파르하 특보는 내년 3월쯤 한국 주거상황에 대한 공식보고서를 유엔 인권위에 보고할 계획이다.

현재, 한국에는 37만가구가 ‘주택외 주택’에서 거주하고 있다. △고시원.고시텔 15만1553가구(41%) △숙박업소 3만411가구(8.2%) △판잣집.비닐하우스 6601가구(1.8%) △일터 공간과 다중이용업소(PC방 등) 14만4130가구(39%) 등이다. 이들의 절반은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다.

김성달 경실련 부동산국책감시팀장은 “최근 종로 고시원 화재사고에서 확인됐듯이 여전히 많은 주거빈곤층이 불안한 주거생활을 영위하고 있다”며 “공공임대주택 확충, 주거비 지원확대 등 주거복지 강화를 위해 정부가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영구.국민임대 5만가구 착공지연

김병국 기자 bgkim@naeil.com
김병국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