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의 금융교실
경제교육의 장터, 벼룩시장
'우리는 돈 벌러 갑니다'라는 책이 있다. 자기 힘으로 돈을 벌겠다고 세상 밖으로 나간 초등학생들이 좌충우돌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단짝 셋이서 스스로의 힘으로 돈을 벌자고 의기투합한다. 하지만 초등학생들이 돈을 벌기가 쉬울 리 없다. 빈 병을 주워서 팔려다가 도둑으로 몰리기도 하고 전단 돌리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세상이 무섭다는 교훈을 얻는다. 20층 아파트를 돌면서 전단 수백 장을 붙였지만 정작 제대로 일당을 받지 못한 것이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일주일이 지나고 아이들이 손에 쥔 돈은 5000원 남짓이다. 그 동안 아이들이 흘린 땀방울의 결정체인 셈이다. 돈을 벌기 위해 이리저리 애쓰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돈 벌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돈이 얼마나 무서운지 등 돈에 대한 나름의 깨달음을 얻는다.
이렇게 돈은 직접 벌어봐야 그 진정한 가치를 알게 된다.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서 흥청망청 쓰던 사람들이 정작 취직하고 나서는 말도 못할 '구두쇠'가 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벌써 부모님 돈만 해도 '한 치 건너 두 치'라고 펑펑 쓰지만 자신이 땀 흘려 번 돈은 '피 같은 내 돈'이라는 생각에 함부로 쓰지 못한다.
부모님이 주는 용돈과 이별을 고하는 순간 돈의 가치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무게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이들이 돈의 소중함을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돈 벌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돈이 없어 당하는 고통이 어떤 것인지 아무리 열심히 설명해도 아이들은 눈만 껌뻑껌뻑 할 뿐이다. 말로만 설명을 들으니 말로만 이해할 뿐이다.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것을 아이들이 알 턱이 없지 않은가?
아이들에게 직접 돈버는 재미를
"옛날엔 말이야~"로 시작되는 상사나 부모세대의 말씀이 잔소리로 들릴 수밖에 없는 것도 우리가 옛날을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부모는 말로 세상이 어떤 곳인지를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는 몸으로 부딪치면서 세상을 배워나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직접적인 체험과 깨달음이다. 그렇다고 돈의 소중함을 알려주기 위해 돈을 벌어 오라고 아이를 세상 밖으로 등 떠밀어 내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도대체 아이에게 돈의 소중함을 깨우쳐 줄 방법은 없는 걸까.
생각보다 기회는 아주 가까이에 있다. '벼룩시장'이 바로 그것이다. 돈 벌기의 고단함과 돈의 소중함을 자연스레 깨우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예전에 일본 동경으로 여행을 갔다가 벼룩시장을 찾은 적이 있다. 현지에 사는 지인이 꽤 많은 살림살이를 벼룩시장에서 구했다는 얘기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일본 벼룩시장의 아이들
동경에는 주말마다 수십 곳에서 벼룩시장이 열리는 데 중고품도 있지만, 종종 재고품도 나오기 때문에 싼 값에 좋은 물건을 살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지인을 졸라 다음날 바로 근처의 공원에서 열린 벼룩시장을 찾았다. 벼룩시장은 일본에서 '후리마켓토(フリ-マ-ケット)'라고 하는데 대부분 공원이나 경기장 등 실외에서 열린다.
우리나라 벼룩시장과 분위기는 비슷하지만 규모는 훨씬 컸다. 각양각색의 좌판이 줄지어 들어선 길을 따라 사람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좌판 대부분이 돗자리 정도 크기에 불과한데도 의류·장난감·가전제품·음반·중고 명품이나 골동품·만화책에 이르기까지 없는 것을 찾기가 더 힘들 만큼 별의별 물건들이 가득했다.
물건을 구경하는데 만도 하루 해가 짧게 느껴질 정도였다. 물건을 쉽게 버리지 않고, 아낄 것은 지독하게 아끼는 일본인들의 근검절약 정신에 다시 한번 놀랐다.
벼룩시장을 돌면서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장면은 장사하는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여기저기서 쓰던 물건을 들고나와 팔고 있는 아이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싫증난 게임기와 게임팩, 운동화를 싼 값에 내놓은 남자아이도, 또 예쁜 인형과 옷·연필 몇 자루를 들고 나온 여자아이도 있었다. 가지런히 물건을 전시하고 손님들과 물건값을 흥정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여간 야무진 게 아니었다. 함께 간 지인의 말로는 일본에서는 경제교육 차원에서 부모들이 종종 아이를 벼룩시장으로 보낸다고 한다. 벼룩시장에 내놓을 물건을 고르는 것에서부터 물건에 가격을 매기고 흥정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이 경제마인드를 키워주는 좋은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주변에서 벼룩시장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학교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벼룩시장도 많고 아파트 벼룩시장도 활성화되어 있다.
아이의 행복한 미래를 부모가 영원히 보장해 줄 수는 없다. 아이는 언젠가는 부모 없는 세상을 스스로의 힘으로 헤치며 살아야 한다. 그래서 이번 주말엔 아이와 함께 경제교육 장터, 벼룩시장에 나가보면 어떨까. 아이와 쌓은 추억의 깊이가 한 뼘쯤은 더 깊어지면서도 돈의 가치를 체험으로 일깨워줄 수 있는 더 없는 경제교육의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