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AI시대, 되묻지 않는 자와 대체되는 자
“인공지능 시대에 (당신이 속한) ○○ 업계는 사라진다는데 어떡해요?” ‘급속하게 변화하는 기술의 속도에 행여 낙오하지는 않을까’라는 두려움 때문일까. 최근 이러한 대화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이처럼 자신의 위험은 과소평가하는 ‘침해불가능 편향’은 의사 법조인일수록 높고, 반면 IT나 공학종사자 일수록 약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인공지능을 잘 모를수록 남의 일자리는 크게, 나의 일자리는 작게 위협할 거라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문제는 이러한 확신이 불확실성에 대비할 수 있는 ‘자갈밭 경계선’을 확인할 확률을 낮춘다는 점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에단 몰릭 교수에 따르면, 인공지능 능력은 매끈한 하나의 선이 아니라 울퉁불퉁한 지형처럼 어디서 강하고 약한지 예측불가능하다. 자갈밭의 안쪽과 바깥쪽이 어딘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직접 부딪혀보는 것뿐이라는 지적이다. 몰릭 교수는 생성형 인공지능 분야의 예언자라고 불릴 정도로 인공지능을 실무에 어떻게 쓸지 실용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 컨설턴트 758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한 그룹이 대다수 과제에서 좋은 성과를 냈지만, 인공지능이 잘하지 못하는 영역의 과제에서는 달랐다. 인공지능을 쓴 컨설턴트의 정답률이 60~70%로, 쓰지 않은 그룹(84%)보다 낮았다. 이는 잘못된 안도감에 안주하면 인공지능에 잠식되는 부분이 어디일지 등 자갈밭 지형을 판단할 기회조차 놓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산업혁명 등 기술의 혁신적인 진화가 있을 때마다 지식과 통제권이 시스템에 장악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1898년 미국 베들레헴 스틸 공장에서 프레더릭 테일러는 하루 12.5톤씩 선철을 나르던 노동자 슈미트(가명) 동작을 초 단위로 분석해 47톤까지 끌어올렸다(이 일화는 테일러의 저술을 통해 알려진 것으로, 후속 연구에서 실제 정황이 이만큼 극적이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노동사회학자 해리 브레이버만은 이를 ‘구상과 실행의 분리’라고 부르며, 이미 넘어간 지식과 통제권을 되찾기란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기술의 종류만 달라졌을 뿐 우리가 처한 현실도 슈미트와 다르지 않다. 인공지능의 편리함에 기대어 내린 판단이 적절한지, 한 번 더 검증하는 절차를 잊어버리게 된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슈미트가 되어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검증의 시간이 무의미하지 않도록 개인의 각성에 그치는 게 아닌 함께 확인하고 공유하는 공동체의 합의가 필요한 때다. 반복적이고 측정 가능한 사항만 표준·관리화한 채 창의성이나 생각할 권리를 외면한 ‘테일러리즘’의 한계를, 선배들이 다양한 노력으로 극복해온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