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이 말하는 아동학대 근절 대책
방법은 다 나왔는데, 문제는 예산과 인력
학대예방안 설계됐지만 인력·예산 뒷받침 안 돼 … "시군구 체계 갖추고 입양도 관리"
한국아동복지학회, 한국아동권리학회, 한국아동학회, 한국보육지원학회, 한국여성사회복지사회 등은 7일 오후 공동성명을 내고 "아동학대를 줄이기 위한 대책은 이미 마련되어 있지만 예산과 인력이 충분하지 않아 수많은 대책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정부는 포용국가 아동보호정책을 약속대로 실천하라"고 요구했다.
이현숙 탁틴내일 대표도 "정인이 사건 관련 지엽적이고 자극적 여론몰이는 아동학대 대응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학대로 사망에 이르는 사례를 막기 위해 근본적으로 보호체계를 내실화하고 체계가 정상 작동될 수 있도록 인력과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군구 아동보호팀 인력과 예산 확충 안돼 = 2019년 5월 문재인정부는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발표하고 아동학대 조사업무를 시군구 지자체로 이관하고 보호아동에 대한 공적 사례관리 도입을 핵심으로 하는 아동보호 공적 책임성 강화를 추진해왔다.
하지만 2020년 10월 이후 전국 시군구에서 추진되고 있는 공공성 강화를 위한 아동보호체계 재편 작업은 예산과 인력의 확보라는 최소한의 필요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시군구의 아동보호팀은 2인 1조라는 최소인력도 지켜지지 않고 1인 배치되는 경우마저 있다.
아동학대 전담공무원과 아동보호전담요원의 사례배치 기준은 당초 계획대로 지켜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자체 전담인력의 부족은 24시간 가동되어야 할 학대조사팀 업무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이로 인해 지역 경찰과 학대전담 공무원,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 간 업무와 역할분담의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류정희 아동복지연구센터장은 "현재 시군구 아동보호전담팀 인원으로는 24시간 업무를 지탱할 수도 없고 아동학대 예방활동의 지속가능성도 어렵게 만든다"며 "정부와 지자체는 이 문제 해결을 위해 공동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동보호·학대 대응 인력 전문성 확보 부재 = 정인이 사건에서 경찰 등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높은 이유는 지역아동보호체계인 아동보호전문기관과 경찰 등에 3차례 학대 의심 신고가 있었음에도 아동이 사망했다는 데 있다.
이와 관련 지난 5일 정부는 아동학대 대응 긴급관계장관회의를 개최하고 올해 말까지 전국 모든 시군구 아동학대전담 공무원을 확충하고 전문성을 강화해 안정적 아동학대 대응기반을 마련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아동학대조사와 위기개입, 아동의 보호배치와 양육상황점검 및 가정복귀 등 보호과정 전반을 관리하는 것은 고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업무인데, 아동보호 경험이 전무한 신규채용 인력중심의 아동학대전담공무원과 아동보호전담요원의 배치, 40시간의 제한된 교육훈련만으로 전문성 강화는 요원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순환보직에 따른 아동학대전담 공무원의 잦은 교체를 방지하기 위해 학대전담 공무원의 전문직제 도입 필요성도 제기된다.
최 영 중앙대 교수는 "현실적으로 단기적으로는 학대전담 공무원의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기존 아동보호전문기관 등 민간의 유경험자들을 특채하는 방식을 활용해야 하고, 지속적인 인력 양성과 교육을 통한 중장기대책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학대 대응을 위한 협업체계 필수 = 정인이 사건에서 경찰은 신고사례에 대한 학대여부를 단독으로 판정했다. 이는 정인이의 죽음을 막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결과로 이어졌다.
아동복지학회 등에 따르면 현재 112신고 일원화에도 불구하고 경찰, 시군구 아동학대전담 공무원, 지역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 등 다양한 조합에 따라 단독 또는 공동으로 아동학대신고와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그 결과 개인에 의존한 조사와 판정과정에서 판단의 오류와 편차가 크게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이에 학대조사와 판단 과정에서 경찰-시군구 공무원-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 간의 공동조사, 공동사정에 기초한 학대판단 과정을 구조화할 수 있는 협업체계 및 아동학대정보 공유체계를 마련하고, 공동의 교육, 공동의 표준가이드라인ㆍ매뉴얼을 도입해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구체화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아동복지학회 등은 "이러한 협업체계의 구상에서 올해부터 시행되는 지자체 자치경찰제도를 활용해 아동학대와 가정폭력 전담경찰관의 충원 및 배치를 적극 고려할 것"을 제안했다.
이외 관계부처 및 시민사회단체, 현장과 학계의 전문가, 법조인 등으로 구성된 '국가 아동학대 진상조사위원회'를 조속히 설치하고, 심각한 아동학대 사례에 대한 조사와 분석을 통해 아동보호안전망을 촘촘히 다져가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이현숙 탁틴내일 대표는 "학대사건이 발생하면 그 사건의 과정과 원인을 아동 최상의 이익이 최우선이라는 관점에서 정밀히 분석하고 유사사례 재발 방지를 위한 대안을 마련하는 활동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한편 아동복지학회 등은 "이번 정인이 사망사건은 아동보호체계와 분리되어 민간에 맡겨진 입양체계의 문제점과 한계를 보여준다"며 "입양실무매뉴얼이 있고 지자체의 지도감독이 있지만 아동 최선의 이익에 충실한 입양인지 파악하기는 어렵다. 입양아동에 대한 국가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해 입양체계가 아동보호체계로 통합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