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김용래 특허청장

"한국형 증거수집제도 올해 법제화 마무리"

2021-03-24 14:13:09 게재

특허침해 법적 보호수준 낮아 보완책 필요

수익보다 비용이 많은 R&D는 구조적 문제

기업경영에서 지식재산전략 최우선 고려해야

4차산업혁명시대다. 코로나19는 세계경제를 디지털경제로 급격히 전환시켰다. 지식재산(IP) 확보와 보호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다. 미·중무역전쟁, 일본의 소재부품장비 공급 중단 등은 '지식재산의 무기화'가 이미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한국은 세계 5대 특허강국으로 꼽힌다. 해외에서는 우리 기업을 향한 특허괴물들의 공격이 지속되고 있다. 지식재산전략은 기업 생존과 직결되는 셈이다.

우리는 세계 지식재산 전쟁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 지난 19일 김용래 특허청장을 찾은 이유다.

특허청 서울사무소에서 만난 김 청장의 첫마디는 '한국의 R&D 패러독스'였다.

'R&D 패러독스'는 수익보다 비용이 많은 R&D의 구조적 문제를 지칭한다. 한국은 세계 1위의 GDP 대비 R&D투자와 인구수 대비 연구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적 성과는 저조한 상황이다.

"'R&D 패러독스' 문제를 해결해야 한국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

김 청장은 우리 기업의 경쟁력과 가치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방안으로 '지식재산의 창출-보호-활용의 선순환 구조' 정착을 제시했다. 지식재산 선순환 구조는 산업 전반의 특허데이터 활용 극대화, 특허심사 품질제고, 지식재산시장 활성화, 지식재산 보호수준 강화 등 다각적 노력이 갖춰져야 가능하다.

그는 우선 연간 25조원에 달하는 국가 R&D의 전 단계에 특허분석을 전면적으로 활용해 효율성을 높일 계획이다. 선(先) 지식재산전략으로 비효율적 R&D 생태계를 근본부터 바꾸겠다는 의지다.

이는 기업의 지식재산 경영전략에 선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게 김 청장의 판단이다. 그는 "기업이 경영전략을 결정할 때 지식재산을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데 지금은 지식재산전략은 후순위에 밀려 있다"며 아쉬워했다. 특허를 창출할 것인지, 매입이나 라이선스 등을 통해 우회적으로 획득할 것인지 등을 판단해 필요한 R&D에 집중하는 '전략적 특허경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청장은 강력한 지식재산 보호망 구축에도 나선다. 이른바 디스커버리로 불리는 한국형 증거수집제도를 올해 법제화시킬 계획이다. 현재 기술혁신 중소기업들은 현 소송제도에서 특허침해 증거확보가 어렵고 시간과 비용부담이 있어 증거수집제도 도입을 바라고 있다.

그는 "특허기술을 침해하는 행위는 범죄행위다. 특허 침해 예방과 근절은 특허행정의 기본 원칙"이라며 의지를 보였다.

김 청장은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산업정책과 통상분야 등 핵심요직을 역임한 전문가답게 인터뷰 내내 지식재산과 산업 활성화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쏟아냈다.

■ 기술혁신기업들이 주목하고 있는 한국형 증거수집제도(디스커버리)에 대해 설명해 달라.

한국형 디스커버리라고 불리는 증거수집제도는 재판이 개시되기 전에 당사자 가진 증거와 서류를 전문가가 조사해 쟁점을 좀 더 투명하고 명확하게 하려는 제도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당사자는 자신이 가진 증거를 온전히 내놓을 수밖에 없다 피해자는 입증 부담이 줄어들고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증거를 살펴볼 기회를 제공받아 쌍방이 대등한 위치에서 소송에 임할 수 있다. 특히 쌍방이 가진 증거를 확인하면 사실관계가 분명해져 소송 전에 화해 또는 조정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장점이다.

■ 증거수집제도 도입에 대해 반도체산업협회 등에서 반대하고 있는데

한국형 증거수집제도는 전체 산업발전 차원에서 특허권자의 권리보호를 강화하고자 도입하려는 것이다. 지난 1년간 총 46회에 걸쳐 각계 의견을 폭넓게 수렴했다.

앞으로 발의된 법안을 중심으로 입법공청회 개최 등 이해관계인 의견을 다시 들어 이견이 있는 부분을 최대한 보완해 나가겠다. 반대하는 업계에서도 제도개선 필요성은 인정하고 있다. 다만 외국기업의 소송증가, 영업비밀 유출 우려, 피고(침해자)의 전문가 조사제도 활용 필요 등을 제기하고 있다.

■ 일본기업이 소부장 분야 핵심·원천 특허를 활용해 우리 기업을 공격 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현재까지 일본기업의 특허공격 증가를 뒷받침 할 통계상 근거는 없다. 2020년 기준으로 일본기업이 우리기업을 대상으로 제기한 소부장 분야 특허침해소송은 3건에 불과하다. 2020년 소부장 분야에서 발생한 한국과 일본 간 무효심판 분쟁건수도 지난 3년의 평균 수준(4.6건)이다.

■ 세계적으로 지식재산 경쟁이 치열하다.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우리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이 높아져 갈수록 국제적인 특허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은 게 사실이다. 특허청은 우리 기업 지원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우선 2020년 11월 '지재권분쟁대응센터'를 신설해 소부장 특허분쟁을 상시 점검하고 있다. 특허분쟁 기업에게는 지재권 분쟁 대응전략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지식재산 기반 연구개발(IP-R&D)로 특허분쟁 위험을 회피하거나 대체기술 보유처 발굴까지 다각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해외지식재산센터(IP-DESK)도 9개국 15개소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기업 진출이 활발하고, 지재권 분쟁 발생 가능성이 높은 지역에 전담인력을 채용해 현지에서 지원하고 있다.

■ 특허괴물로 불리는 NPE(특허전문관리회사)의 해외분쟁 현황과 대응 방안은

최근 5년간(2016∼2020년) 미국에서 발생한 우리기업 관련 NPE 특허소송은 527건이다. 이중 93%(489건)가 대기업에 집중돼 있다. 중소·중견기업은 7%(38건)다. 특허청은 미국 유럽 등 주요국에서의 NPE 소송 활동을 상시 점검해 기업에 제공하고 있다. 우리 기업에 소송 제기 가능성이 높은 NPE가 보유한 특허 포트폴리오를 분석해 결과도 공개하고 있다. 앞으로는 산업별로 주요제품·기술을 선정해 우리 기업과 분쟁 가능성이 높은 해외특허 정보를 선별해 기업에 제공하는 분쟁예측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IP-R&D전략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우리는 'R&D 패러독스'에 빠져있다. 특허 활용률, R&D 사업화 등 질적 성장이 필요하다. R&D 초기부터 특허정보를 활용해야 한다. 해외특허를 무효화하거나 회피, 공백기술에 대한 우수특허 선점 등을 통해 최적 R&D 방향을 잡아야 한다.

기존에는 연구개발 투자 방향을 정할 때 일부 전문가의 주관적인 판단이나 경영진의 직감에만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는 특허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객관적인 근거를 가지고 기술개발 전략을 짜야 한다.

■ 통상환경이 크게 변하고 있다. 새로운 지식재산 국제규범을 만들기 위한 국제협력 활동이 필요한데

디지털 환경이 확대되면서, 영업비밀 유출 가능성이 커지고 전자상거래를 통한 침해상품 유통 증가 등 통상환경에도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특허청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 등 최신 통상협정과 바이든 행정부의 통상전략 등을 분석해 변화된 환경에 맞는 전략을 마련 중이다.

우리나라는 미국 유럽 일본 중국과 함께 IP5의 일원으로 글로벌 지식재산 규범을 만들어 왔다. 앞으로 다양한 국가들과 협력 채널을 구축해 디지털시대의 새로운 국제규범 형성을 주도해 나가겠다.
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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