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그루밍 위장수사 법제화 환영한다

2021-03-25 11:40:28 게재
이현숙 탁틴내일 상임대표

아동·청소년 피해자를 지원하면서 메신저, SNS, 채팅 앱 등 온라인에서 알게 된 사람들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한 사례를 자주 접하게 된다. 도대체 온라인이 얼마나 위험한지 궁금해서 모니터링 목적으로 청소년으로 가장해 접속해보면 성적 대화를 시도하거나 성매매를 제안하고 접근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화가 났다. 취약한 아동 청소년을 사냥하기 위해 나선, 명백한 범죄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활개를 치는데도 이들의 계정을 플랫폼 운영자에게 신고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 무력감을 느낄 때도 많았다.

사전에 성범죄자 접근 차단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자를 강력하게 처벌하는 것도, 피해 아동을 잘 지원해 치유와 회복을 돕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범죄자의 접근을 차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아동 청소년을 성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접근하는 사람들은 상습적이고 여러 차례 범행에 성공한 경험이 있다. 범죄 경험이 많을수록 아이들을 조종하고 통제하는 방법을 잘 안다. 아직 사회 경험이 많지 않은 아이들은 이들에게 속거나 이용당하기 쉽다.

오래 전부터 영국이나 미국 호주 등은 이런 아동 청소년 대상 성범죄의 특성을 파악해 그루밍 행위를 처벌하는 법을 만들었다. 경찰이 신분을 위장해 성범죄를 목적으로 아동에게 접근하는 범죄자를 검거한다. 이를 위해 아동 성범죄를 전문적으로 수사하는 전담기구를 만들었다.

우리나라도 그루밍을 범죄화하고 아동청소년대상 성범죄자 검거를 위해 위장수사를 도입하는 방안을 오래 전부터 고민해왔다. 그루밍을 방지하기 위해 2008년에 온라인 성매수 유인행위를 처벌할 수 있도록 아동청소년성보호법을 개정했다.

그러나 청소년이 직접 신고해야 수사가 가능해 실효성이 떨어졌다. 2013년 기회제공형 함정수사 방식의 '유도수사'를 허용하는 것을 검토했지만 도입하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아이들이 성적 착취와 학대의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이 지속됐다. 지난해 소위 'N번방'이라고 불리는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이 알려졌다. 시민들은 충격과 분노를 느꼈고 정보통신기술을 매개로 발생하는 아동 성착취의 심각함을 알게 됐다.

정부도 심각성을 인식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그루밍을 범죄로 규정하고 경찰의 잠입수사를 허용하겠다는 내용을 포함한 대책을 수립했다. 그러나 실제로 법제화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오랜 기간의 논의가 있었다. 2월 25일 온라인 그루밍 처벌, 신분 비공개·위장수사로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를 방지하는 내용의 아동청소년성보호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23일 공포됐다.

9월 24일부터 개정된 법이 시행되면 성인이 아동·청소년에게 성적 대화를 시도하거나 성적 행위 유인·권유 등을 목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처벌할 수 있게 된다. 경찰이 신분을 비공개하거나 위장해 수사할 수 있는 특례가 마련돼 채팅앱 SNS 메신저 등에 경찰이 신분을 위장해 잠복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범죄자들은 아동에게 접근했지만 사실은 경찰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게 될 것이다. 아이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접근하는 행위가 위축될 수 있다. 그렇다고 이들이 범죄를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새로운 범죄 수법을 개발하고 자신이 접촉하고 있는 상대방이 경찰인지 아동인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확인하려 할 것이다.

실효성 높이는 전담기구 설치

진화하는 범죄 수법에 대응하기 위해선 숙련된 수사관이 필요하다. 전담 수사기구를 설치해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수사기법을 개발하고 아동청소년 피해자의 특성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전문수사관들이 근무하도록 해야 한다.

온라인 그루밍을 처벌하고 신분 비공개 위장수사를 가능하게 한 아동청소년성보호법 시행에 기대가 크다. 그러나 처음 시행되는 만큼 보완해야 할 점도 많을 것이다. 이번 개정이 끝이 아니라 시행하는 과정에서 부족한 점을 찾고 보완할 필요가 있다.

섬세하게 아동 청소년을 보호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모니터링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