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사모시장의 바퀴벌레들

2026-03-24 13:00:02 게재

글로벌 금융시장이 다시 한 번 ‘보이지 않는 균열’의 영역으로 들어서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주식시장이 버티고 있고, 유동성도 완전히 마르지 않은 듯 보인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는 세 가지 서로 다른 충격이 동시에 축적되고 있다.

중동발 전쟁 리스크, 인공지능(AI) 혁신이 촉발한 산업 재편, 그리고 사모대출 시장에서 번지는 ‘조용한 위기’다. 이 세 축은 각각 독립적인 변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금융 시스템 안에서 서로를 증폭시키는 구조로 연결돼 있다. 지금 시장이 위험한 이유는 바로 이 ‘연결된 위기’ 때문이다.

중동전쟁과 AI발 파괴적 혁신, 사모금융의 연결된 위기

중동에서의 군사 충돌은 단순한 지정학적 이벤트가 아니다. 호르무즈 해협 긴장과 유가상승은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다시 자극하고, 이는 곧 통화정책 경로를 바꾼다. 실제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상회하면서 물가 압력이 재차 확대되고, 주요국 중앙은행은 금리인하를 미루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미국과 일본, 캐나다 중앙은행은 금리동결을 결정하며 중요 원인으로 “유가급등에 따른 경제 불확실성”을 들었다. 원유가격 상승이 에너지가격을 넘어 각종 제품 가격 및 물류 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인플레이션 둔화에 따른 통화정책 완화 기대감이 빠르게 식는 분위기다.

금리가 내려오지 않는 환경은 금융시장에 치명적이다. 자산가격은 결국 할인율의 함수인데, 고금리가 장기화될수록 기업가치와 부동산, 인프라 자산의 현재 가치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특히 문제는 레버리지에 의존한 투자구조다. 금리상승은 단순한 비용 증가가 아니라 부채로 쌓아 올린 수익구조 자체를 무너뜨린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금융시장의 기초 체력은 소진된다.

AI 역시 또 다른 균열을 만든다. AI 시장은 2030년까지 1조8000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현재는 투자 대비 수익화가 지연되는 구간에 있다. 자금은 일부 ‘승자 기업’으로 쏠리고 나머지 기업들은 빠르게 경쟁력을 잃는다. 특히 사모대출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 AI·소프트웨어 기업들의 경우 기업가치 하락이 곧 담보가치 붕괴로 이어지는 구조다. 기술 혁신이 곧 신용 리스크로 전환되는 국면이다.

지금 금융시장의 핵심 위험은 가장 덜 보이는 곳, 사모시장에 있다. 사모대출 시장은 저금리 시대에 급팽창하며 사실상 ‘그림자 금융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다. 문제는 구조적 취약성이다. 장기·비유동 자산에 투자하면서도 투자자에게는 환매를 허용하는 구조는 근본적으로 불안정하다. 최근 환매 요청이 급증하며 ‘펀드런’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불투명성이다. 사모자산은 시장가격이 아니라 장부가에 의존한다. 실제 자산 가치가 20~30% 낮을 수 있다는 의구심이 확산되면서 시장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블랙록과 같은 대형 운용사들이 환매 제한 조치를 도입한 것은 이러한 구조적 모순이 한계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JP모건 CEO 제이미 다이먼의 “바퀴벌레 한 마리가 보이면 더 많은 바퀴벌레가 있다는 뜻이다”는 경고는 이 시장의 본질을 정확히 짚는다. 지금은 일부 부실만 드러났을 뿐 전체 규모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세 가지 충격은 결국 하나로 수렴한다. 전쟁은 금리를 끌어올리고, 금리 상승은 사모시장 부실을 자극한다. AI는 산업 구조를 흔들며 대출 자산의 질을 약화시킨다.

중동발 충격파와 금융시장 불투명성, 산업 재편의 리스크 선제적 관리해야

한국 역시 안전지대가 아니다. 해외 사모대출과 부동산에 투자한 국내 증권사, 그리고 PF 시장과 연결된 건설업은 직접적인 충격 경로에 놓여 있다. 유동성 경색과 자산 가격 하락이 동시에 진행될 경우 연쇄적인 신용경색이 불가피하다. 만약 이 시장이 본격적으로 붕괴할 경우 2008년과는 다른 형태의 ‘유동성 블랙홀’을 형성하며 글로벌 금융시장을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2026년 현재의 위기는 저금리와 과잉 유동성이 만들어낸 마지막 거품이 꺼지는 과정이 될 수도 있다. 향후 전개에 따라 글로벌 금융시장의 향방이 좌우될 중대한 분기점이기도 하다. 금융위기는 언제나 ‘보이는 리스크’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연결’에서 시작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낙관도 비관도 아닌 구조적 인식이다. 금융시장의 불투명성을 줄이고, 레버리지 의존도를 점검하며, 중동발 에너지 충격파와 산업 재편 과정에서 발생하는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안찬수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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