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송의 미국 톺아보기
곤두박질치는 미국의 민주주의 ‘비상구가 없다’
미국은 오랫동안 민주주의의 기준을 만들어온 국가였다. 그런데 최근 국제사회로부터 그 미국의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있다는 질타를 받고 있다. 언론 사법 선거제도 전반에서 나타나는 미국의 변화가 다양한 국제 평가와 보고서를 통해서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프리덤하우스(Freedom House)와 스웨덴 예테보리대의 민주주의 연구소(V-Dem)가 매년 발표하는 민주주의 지표에 주목해보자. 이 지표들은 선거의 공정성, 언론의 자유, 사법부의 독립성, 권력분립과 같은 핵심 요소들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종합적으로 측정한다.
프리덤하우스에 따르면 미국의 민주주의 점수는 2025년 84점에서 2026년 81점으로 3점 떨어졌다. 이렇게 단기간에 3점이나 변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다. 더 긴 흐름으로 보면 하락 폭이 더 뚜렷하다. 2005년에는 93점이었던 점수가 2026년에는 81점까지 내려왔다. 같은 기간 독일과 일본 등은 90점대 중반 점수를 그대로 유지했고, 캐나다 역시 1점 안팎의 변화에 머물렀다. 이와 비교하면 미국은 뚜렷한 악화를 보여준다. 프리덤하우스는 이러한 감소 폭이 자유국가로 분류된 나라들 가운데서도 가장 큰 수준에 속한다고 평가한다.
브이뎀 연구소(V-Dem)의 분석은 변화의 속도를 더 분명하게 보여준다. 연구소는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지수(Liberal Democracy Index)’가 단 1년 만에 뚜렷하게 낮아졌다고 밝혔다. 세계 순위도 179개국 가운데 20위에서 51위로 내려갔다. 이러한 변화는 현대 민주주의 국가들 가운데서도 드문 수준의 급격한 악화에 해당한다.
국제 인권단체의 평가는 꽤 직설적이다.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는 2026년 세계인권보고서에서 트럼프행정부 시기의 정책들이 언론 사법 선거제도에 걸쳐 민주주의의 핵심 장치를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민주주의의 기둥이 공격받았다”라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물론 트럼프행정부는 이러한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백악관은 휴먼라이츠워치를 편향적이고 정치적 동기가 있는 조직으로 규정하며 보고서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미국은 더 이상 민주주의 모범국가가 아냐
국제 보고서들에 따르면 미국 민주주의 악화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권력 집중이다. 행정부 권한이 확대되면서 입법부 사법부의 견제기능이 약해졌다. 주요 정책 결정 과정에서도 의회의 통제력이 충분히 작동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둘째, 언론과 사법 영역에서 나타나는 긴장이다. 언론을 향한 정치적 압박과 공격이 늘었고, 사법부의 독립성을 둘러싼 논쟁도 계속되고 있다. 국제 인권단체들은 이러한 변화가 민주주의의 핵심 기반을 약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셋째, 정치 양극화의 심화다. 정당 간 대립이 격해지면서 의회의 협치기능이 약해졌고, 예산 처리와 주요 입법 과정에서도 충돌이 반복됐다. 정치적 경쟁이 제도운영을 압도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민주주의의 안정성에도 부담이 커졌다.
이 세 가지 요인은 서로 연결돼 작용한다. 권력이 한쪽으로 집중되면서 의회의 견제와 사법부의 통제기능이 충분히 작동하지 않았다. 정당 간 대립이 격해지면서 예산 처리와 입법 과정에서는 충돌이 반복됐다. 그 과정에서 언론과 사법에 대한 신뢰도 함께 약해진다. 이렇게 누적되어 온 변화는 국제지표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런데 미국의 민주주의 평가는 미국의 대외 정책과도 연결된다. 특히, 미국이라는 국가의 위치를 고려할 때 더 큰 의미가 있다. 미국은 오랫동안 민주주의를 앞세워 국제질서를 주도해온 국가다. 이런 국가에서 나타난 변화는 동맹국의 신뢰와 국제적 영향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미국은 그동안 민주주의와 인권문제를 앞세워 다른 국가의 정치상황을 비판하고, 필요할 경우 제재나 외교적 압박을 가해왔다. 이 과정에서 선거의 공정성, 언론의 자유, 사법판단의 독립성 등은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활용돼왔다.
그런데 미국 내부에서 같은 문제들이 반복적으로 제기되면 이러한 기준의 설득력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다른 국가를 향한 외교적 압박과 비판도 이전과 같은 힘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이미 중국과 러시아는 이를 근거로 미국의 비판을 되받아치며 자국 체제를 정당화하는 데 활용해왔다.
같은 평가 놓고도 진영 따라 다른 메시지
문제는 이러한 평가를 바라보는 미국 내부의 시선이 크게 엇갈린다는 점이다. 미국의 언론과 정치권은 국제 지표가 제시한 수치를 두고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의미를 해석한다.
워싱턴포스트는 프리덤하우스 분석을 인용해 미국의 민주주의 점수가 하락한 사실과 장기적인 감소를 함께 강조했다. 특히 선거의 공정성, 언론의 감시 기능, 사법부의 독립성 등이 약해지고 있다는 점을 주요 문제로 제시했다. 로이터 역시 인권단체 보고서를 바탕으로 언론자유와 사법부의 독립성 문제를 구체적으로 짚었다.
일부 보수매체는 민주주의 지표의 변화 자체를 주요 쟁점으로 제기하지 않았다. 대신 평가 기준의 정치적 편향 가능성을 문제 삼거나, 논의의 중심을 이민 정책이나 치안 문제 등의 다른 정치적 쟁점과 연결해버렸다.
이런 반응 뒤에는 국제지표의 신뢰성 자체를 흔들어 놓으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 특히, 일부 보수 진영은 V-Dem의 연구 네트워크와 재원 구조를 문제 삼고 있다. V-Dem 연구소가 조지 소로스가 설립한 오픈 소사이어티 재단(Open Society Foundations) 등 진보성향이 강한 재단의 지원을 받는다는 점을 트집 잡으며 분명히 연구결과가 정치적으로 편향됐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정치권의 대응 방식에서도 차이가 나타난다. 민주당은 국제지표가 보여준 수치를 제도 보완의 근거로 삼아 선거 접근성과 사법독립, 언론자유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가는 모습이다.
공화당은 이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다. 국제 지표에 대한 논평은 거의 하지 않았다. 오히려 선거규칙을 더 엄격하게 바꾸는 입법과 정치공세를 전면에 내세웠다. 최근에는 유권자 등록 과정에서 시민권 증명 서류와 신분증 제출을 요구하는 ‘세이브 아메리카 액트(SAVE America Act)’를 핵심 의제로 밀어붙이며 민주주의 평가 논쟁을 ‘제도후퇴’보다 ‘선거보안’으로 문제의 초점을 옮기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공화당은 이 법안을 중간선거를 앞두고 핵심 정치의제로 활용하고 있고, 민주당은 이 법안이 수백만 유권자의 투표를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정치적 이해관계와 전략이 반영된 결과다. 민주당은 선거 제도와 투표권 문제를 핵심의제로 삼아, 공화당은 선거 공정성과 보안을 강조하며 유권자 등록과 신분 확인 절차를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하며 지지층을 결집한다. 같은 지표가 서로 다른 정치적 메시지로 사용되고 있다.
미국의 변화, 한국에서도 반복될 수 있어
앞서 언급한 민주주의 평가와 지수에서 한국의 점수나 순위를 확인해보면 다소 불편한 진실과 마주한다. 프리덤하우스 평가에서 한국은 100점 만점에 81점을 기록하며 ‘자유국가’로 분류되었다. 하락했다고 비판받고 있는 미국과 같은 점수다. 민주주의 논쟁의 중심에 있는 국가와 같은 수준에 놓여 있다는 사실은 한국의 상황을 가볍게 넘기기 어렵게 만든다.
그래도 2026년 V-Dem 보고서에서 179개국 중 22위를 기록했다는 것은 희망적이다. 1년 전 보고서의 41위와 비교하면 순위가 크게 올랐다. 큰 충격이 있었지만 이제 민주주의 회복 국면에 들어섰다는 신호다.
그렇지만 민주주의 제도를 채택하고 있고 이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미국에서 시작된 변화는 한 국가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같은 기준 위에 서 있는 한국에도 언제든 반복될 수 있는 현실이다. 필요한 것은 경고를 해석하는 일이 아니라, 그 경고가 현실이 되기 전에 끊임없이 점검하는 일이다.
BK21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