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승부' K-오리지널 제작 '쩐의 전쟁'

2021-03-29 11:18:59 게재

넷플릭스가 콘텐츠 중요성 일깨워 … 토종업체 "우리도 콘텐츠 잘 만들 수 있다"

티빙(CJ 계열) 4000억원, 넷플릭스 5500억원, KT 4000억원, 웨이브(SK텔레콤 계열) 1조원. 최근 며칠간 국내외 기업들이 국내 콘텐츠 시장에 투자하겠다고 밝힌 금액이다. 투자기간이 다르고 변동 가능성도 있지만 앞으로 몇 년간 국내 콘텐츠 시장에는 연간 1조원 이상이 투자될 가능성이 높다. 계획대로 투자가 이뤄지면 국내 미디어 시장에 K콘텐츠 제작전쟁이 벌어지게 된다.

◆미디어 경쟁, M&A 찍고 콘텐츠 투자로 = 최근 몇년간 국내 미디어시장은 유료방송가입자(이용자) 확보를 위한 인수합병(M&A)이 주요한 관심사였다.

LG유플러스가 LG헬로비전(CJ헬로)을 인수했고, SK브로드밴드는 티브로드를 합병했다. KT는 KT스카이라이프를 통해 현대HCN 인수를 진행 중이다. 미디어사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키우려는 통신업계를 중심으로 그야말로 숨가쁘게 M&A 전쟁이 벌어졌다.

하지만 최근 화제는 단연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기업을 중심으로 한 콘텐츠 제작투자다.

우선 케이블 M&A를 통해 몸집을 키운 통신업계는 올해들어 급속하게 콘텐츠 투자로 눈을 돌리고 있다.

지난 23일 KT 스튜디오지니 윤용필(왼쪽), 김철연 공동대표가 KT 스튜디오지니의 콘텐츠 사업 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KT 제공


지난 23일 KT는 2023년까지 4000억원 이상을 투자해 K-드라마 등 오리지널 콘텐츠 100개를 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앞서 KT는 콘텐츠 제작·유통 전문기업 KT스튜디오지니를 설립했다. KT는 자체제작 오리지널 콘텐츠를 올레tv, KT스카이라이프, OTT 시즌, 현대HCN 등 자체 플랫폼으로 서비스해 국내 1위 종합 미디어 콘텐츠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계획이다.

구현모 KT 대표는 "미디어는 KT가 누구보다 잘 할 수 있는 사업영역"이라며 "KT그룹 역량을 미디어 콘텐츠로 집결해 K콘텐츠 중심의 글로벌시장 판도변화에 속도를 내겠다"고 말했다.

26일에는 SK텔레콤과 지상파방송사가 합작해 설립한 OTT 웨이브가 대규모 콘텐츠 투자를 발표했다. 콘텐츠웨이브는 오는 2025년까지 총 1조원 규모의 투자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웨이브 대주주인 SK텔레콤은 25일 이사회를 열고 1000억원의 추가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웨이브는 기존 확보된 자금을 비롯해 향후 추가 투자 유치, 콘텐츠 수익 재투자 등을 통해 1조원 규모의 투자금을 마련할 예정이다.

웨이브는 전문성 강화를 위해 콘텐츠전략본부를 신설하고 최고콘텐츠책임자(CCO) 영입을 추진 중이다. 또 올 상반기 내 오리지널 콘텐츠 기획·개발을 전문으로 하는 스튜디오를 설립할 예정이다.

이태현 콘텐츠웨이브 대표는 "오리지널 투자를 통해 방송·제작사들과 협력을 확대하고, 경쟁력있는 중소제작사 발굴에 힘쓸 것"이라며 "K-콘텐츠와 K-OTT플랫폼의 동반성장 생태계를 만들어 가는데 웨이브가 선도적으로 나서겠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CJENM 계열 OTT 티빙은 최근 네이버를 우군으로 끌어들여 2023년까지 4000억원을 콘텐츠·OTT 경쟁력 강화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지난해 12월 OTT 쿠팡플레이를 선보인 쿠팡과 토종 OTT 왓챠도 콘텐츠 투자확대를 준비하고 있다.

여기에 국내 양대 인터넷플랫폼 회사인 네이버와 카카오도 오리지널 콘텐츠 투자 확대를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콘텐츠 있으면 시청자 잡는다 = 잇따른 국내 미디어 기업들의 콘텐츠 투자 발표는 넷플릭스를 통해 좋은 콘텐츠만 있으면 시청자를 붙잡을 수 있고, 이를 통해 미디어플랫폼 성장을 이뤄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내 통신회사를 비롯한 미디어플랫폼 사업자들은 독자적인 콘텐츠 제작 보다는 방송사 등과의 협력을 통해 콘텐츠를 확보해 왔다. 하지만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 급성장을 지켜보면서 미디어플랫폼 경쟁력이 독자 콘텐츠 확보에 달려 있다는 것으로 깨닫게 된 것이다.

이런 가운데 국내 미디어시장은 OTT 중심으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

2020년 방송시장경쟁상황평가에 따르면 2019년 말 기준 OTT 이용률이 1년 만에 14.3%p 증가한 66.3%로 늘었다. OTT 이용 증가로 유료방송 주문형비디오(VoD) 매출이 사상 처음으로 전년보다 줄었다.

국내 OTT 시장은 지난해 7801억원 규모로, 2018년(5136억원)보다 1.5배 이상 커졌다. 올해 1조원 돌파 가능성이 높다.

모바일 빅데이터 플랫폼업체인 아이지에이웍스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넷플릭스의 월 사용자 수는 1001만명에 달했다. 웨이브(395만명) 티빙(265만명) U+모바일tv(213만명) 시즌(168만명) 등 국내 OTT 사용자 합보다 많다. 이러다 보니 국내 영화제작사가 영화관이 아닌 넷플릭스를 통해 영화를 개봉하는 일까지 있었다.

넷플릭스는 지난 2016년 국내 진출 이후 5년간 약 7억달러(약 7926억원)를 투자해 80여편의 K콘텐츠를 제작했다. 최근에는한국에서 콘텐츠 제작에 올해 55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넷플릭스에 이어 디즈니플러스 HBO맥스 애플TV+ 아마존프라임비디오 등과 같은 글로벌 업체들의 국내시장 진출도 국내 미디어플랫폼 업체들이 콘텐츠 투자에 나서는 이유다. 기존과 같은 대응으로는 글로벌 업체들에게 안방을 다 내주고 시장에서 물러나야할 상황인 것이다.

◆토종플랫폼 합종연횡 필요성 = 업계와 전문가들은 국내 업체들이 넷플릭스 등 글로벌 업체들에 맞서기 위해서는 현재와 같은 각개약진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토종플랫폼끼리 합종연횡을 통해 규모와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재 국내에는 케이블TV와 IPTV 등 유료방송 외에 10여개의 OTT 서비스가 존재한다. 나름대로의 차별성을 갖고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지만 방대한 콘텐츠와 막대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 글로벌 플랫폼에 맞서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김성철 고려대 교수는 26일 진행된 '디지털미디어 콘텐츠 진흥포럼'에서 "대승적인 합종연횡과 공동투자로 국가대표 기업 2~3개를 육성해야 한다"며 "이렇게 키워낸 기업들이 국내시장에서 넷플릭스와 경쟁할 수 있는 투자자와 유통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 또 "우리나라 콘텐츠는 아시아 국가들에서 인기가 높다"며 "아시아로 진출해 최소 1억5000만명 시장규모를 달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료방송업계 관계자도 "올해는 국내 미디어플랫폼 성장에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글로벌 미디어플랫폼과의 효율적인 경쟁을 위해서는 국내 사업자가의 규모있는 협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고성수 기자 ssg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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