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경제, 신용으로 성장하던 추세서 탈피

2021-06-23 11:50:02 게재

블룸버그통신 “구조적 변화로 신용집중 산업 역할 줄어 ... 경제성장-신용 탈동조화”


블룸버그통신 최근 보도에 따르면 중국 제조기업 대표인 루종핑에게 은행 등 금융권의 신규대출 제의가 쏟아지고 있다. 루 대표는 “나와 같은 민간 중소기업에게도 마침내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말했다.

‘솽퉁일용품’ 대표로, 스타벅스와 같은 소매점에 음료빨대를 납품하는 그는 “수많은 금융기관들이 연락해 ‘투자하길 원한다’ ‘우리가 보다 빨리 성장하도록 돕고 싶다’고 말한다”며 “금융환경이 이처럼 좋았던 적은 없다”고 말했다.

중국정부는 과도한 신용확장에 제동을 걸고 있다. 일각에선 정부의 신용긴축이 경기흐름에 부정적 영향, 즉 경착륙을 유발할 잠재적 리스크가 있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블룸버그는 “루 대표의 경험은 신용긴축이 꼭 경제성장이나 원자재 수요 둔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며 “중국 경제성장과 신용확대의 상관도가 과거보다 희미해졌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해외 수요는 올해 중국경제에 핵심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중국의 수출호황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국내적으로는 보다 많은 자본이 루와 같은 민간기업으로 흘러들고 있다. 반면 신용의 힘이 덜 필요한 서비스와 기술기업들이 중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커지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전통적으로 과도한 부채에 의존하던 중국 부동산업계도 사업모델을 바꾸면서 신용과 투자 연관성이 엷어졌다고 주장한다.

중국경제를 분석하는 외부 전문가들은 ‘크레디트 임펄스’(credit impulse)를 눈여겨본다. ‘신용자극지수’로도 불리는 이 지표는 신용공급 증가분을 명목 국내총생산(GDP) 증가분으로 나눈 값이다. 중국의 경우 사회총융자에 지방정부 채권발행액을 합쳐 신용공급 규모를 본다.

중국 부동산 개발기업이나 제조기업, 지방정부는 투자를 위해 새로운 신용을 끌어들인다. 이로써 고용과 산업재·원자재 수입 수요를 늘린다. 중국의 수입량과 품목은 호주 GDP부터 신흥국 통화 체력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과 연관이 있다. 한마디로 글로벌 산업 경기를 쥐락펴락한다. 중국의 크레디트 임펄스가 하락하면 미국채 수익률은 상승하고 S&P500지수는 하락한다.

크레디트 임펄스는 지난해 11월 말 정점(32.1%)에 올랐다가 하락하고 있다. 지난달 말 기준 25.6%까지 내려갔다. 중국이 코로나19 팬데믹 부양책을 긴축하려 하면서다. 이 대목을 보면서 많은 전문가들이 중국경제의 둔화를 예상한다. 하지만 블룸버그는 꼭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며 몇가지 대목을 짚었다.

민간부문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지난해 시중은행에 지급하는 유동성을 크게 늘렸다. 특히 민간 중소기업 대출용도로 한정한 자금이 크게 늘었다. 중국정부의 공식데이터와 독립적 민간기관의 데이터를 보면 실제 민간 중소기업에 흘러들어가는 신용의 비중이 크게 상승했음을 알 수 있다.

민간기업으로 흘러들어가는 금융은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중국 민간기업들이 같은 업계에서 경쟁하는 국영기업들보다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간기업의 투자는 결국 중국경제 생산성을 더 많이 높일 수 있다.

중국 장강경영대학원이 국내 약 300개의 민간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기업경기지수를 보면, 지난해 10월 50을 넘은 이후 지난달 말 기준 48.1로 소폭 감소했다. 50을 넘는 경우 기업들이 자금융통 조건이 좋아질 것으로 예상하는 것이고, 그 이하일 경우 나빠질 것으로 예상한다는 의미다. 2015년부터 지난해 하반기까지 50을 넘은 적은 없었다. 현재 민간기업들이 자금융통 상황의 호전을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비스와 기술

지난 10년 동안 중국경제의 무게중심은 중공업·투자에서 서비스·기술로 전환됐다. 이는 이른바 ‘신경제’로 거론되는 부문이다. 중국 GDP에서 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10년 전 45%에서 지난해 55%로 늘었다.

고정자본 투자엔 보통 신용이 동원된다. 하지만 서비스기업들은 고정자본 투자 필요성이 덜하다. 또 다른 국가들처럼 중국 기업들도 코로나19 팬데믹을 맞아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했다. 보다 많은 서비스가 온라인으로 이뤄지고 있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중국경제에서 디지털기술과 관련된 부문은 2017년 GDP의 33%에서 2020년 40%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상승했다.

중국건설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리쿠이는 “중국경제 성장 사이클에서 신용확대 영향력은 지난 몇년 새 줄었다. 신용에 크게 의존하는 건설업이 더 이상 수요증가의 핵심원천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리쿠이는 “신용 집중도의 감소는 중국 원자재 수요에 변화가 있을 것임을 의미한다. 철강 등 건설과 관련된 원자재 수요는 완만히 상승할 것인데 반해 제조업 업그레이드와 녹색경제와 관련된 구리 등 원자재 수요는 더 강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익과 주식발행

중국 기업들은 신용관련 지표에 잡히지 않는 요인 덕분에 성장할 수도 있다. 주식발행이나 유보이익을 활용하는 것이다. 영국 회계컨설팅기업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증시상장으로 기업들이 끌어모은 자금은 전년 대비 두배 늘었다.

2020년 중국 상장사들 중 헬스케어와 신재생에너지, 반도체 등 신경제에 속한 기업들이 구경제에 속하는 광산 인프라, 자재, 부동산 기업들보다 매출 감소폭이 적었다. 신경제 기업의 이윤율 역시 상승했다. 프랑스 은행 나티시스에 따르면 2020년 상장된 신경제 기업들의 자본지출은 전년 대비 16% 늘었다. 반면 구경제 기업들의 자본지출은 1% 느는 데 그쳤다.

중국 기술 거대기업들은 이 흐름을 보여준다. 중국 기술기업들은 지난해 벌어들인 이익을 사업확장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나티시스 이코노미스트인 게리 응은 “신경제 기업들은 구경제 기업들에 비해 더 빨리 성장하는 반면 레버리지 비율은 더 낮다. 때문에 자본지출을 늘릴 여지가 더 크다”며 “신경제 기업들은 중국의 장기 생산성을 늘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신경제 비중이 커지면서 중국 잠재성장률 하락이 지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벤처투자 역시 지난해 하반기부터 급격히 늘었다. 자율주행 스타트업 ‘픽스무빙’의 창업자인 안젤로 유는 “우리 같은 초기 스타트업들은 은행대출을 받기가 매우 어렵다”며 “하지만 지난해 벤처투자자들로부터 수백만달러의 자금을 모았다”고 말했다.

부동산과 저축

부동산 투자는 중국경제 성장의 주요 동력이다. 부동산업계는 전통적으로 공사채 발행 등 채권금융에 의존했다. 중국정부는 2017년부터 부동산 시장을 규제했다. 부동산에 돈이 몰리면 생산성 높은 다른 분야의 활력이 둔화된다는 우려 때문이다. 또 과도한 부채에 의존하는 부동산 업계 특성상 금융리스크를 야기할 수도 있다.

이에 맞춰 중국 부동산 기업들은 아파트 선분양 비중을 크게 늘리며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중국 국립통계국에 따르면 부동산 개발기업들이 선분양으로 모은 자본은 2013년 3조위안(약 525조원)에서 2021년 4월 말 8조위안(약 1400조원)으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 은행대출을 통한 자본은 2조위안에서 3조위안으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스스로 조달한 자금은 4조위안에서 7조위안으로, 모기지를 통한 자본 조달은 1조위안에서 3조위안으로 늘었다.

거시경제 리서치기업인 ‘앱솔루트 스트래티지 리서치’ 중국 이코노미스트인 애덤 울프는 “신용확대와 주택시장 성장의 연관성은 이미 무너졌다”며 “중국경제에서 신용이 가장 집중된 부동산이 신용수급 출렁임에 덜 민감해졌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중국정부는 올해에도 부동산 개발기업들에 대한 신용을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 조치가 아파트 판매 등에 큰 충격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지출할 기회를 잃었던 중국 주택 소비자들이 넉넉한 현금 실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에 거액을 쓸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

지방정부 역시 지난해 못 쓴 채권발행 자금을 넉넉히 갖고 있다. 인프라 건설 프로젝트에 지출할 여력을 갖고 있다. 영국 컨설팅기업 ‘판데온 거시경제연구소’의 중국 이코노미스트인 프레야 비미쉬는 “중국 가계가 향후 몇달 동안 저축의 일부를 지출한다면, 올해 중국 GDP 성장률에 주목할 만한 상승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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