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활성화 긴급 과제 │② 증권사 법인지급결제 허용

자본시장법 통과됐지만 은행권 반발로 14년째 제자리걸음

2021-11-03 11:25:34 게재

저축은행도 가능한 급여통장, 증권사 왜 못 만드나

개인·법인 고객편의 확대 위해 업권 차별 금지해야

증권사에 법인지급결제를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전 국민 주식투자시대가 도래한 현재, 개인투자자들과 법인 고객 편의를 확대하기 위해서라도 업권 차별을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은 3375억원의 지급 결제망 진입비용을 냈고, 많은 증권사들이 자기자본 확충 등을 통해 자금 지급 여력이 탄탄해진 만큼 법인지급결제 업무를 막을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증권사의 법인지급결제 는 지난 2007년 자본시장통합법(현 자본시장법) 제정안에서 이미 통과된 사안이다. 하지만 은행권의 강한 반발로 14년째 제자리 걸음이다.


◆증권사·고객 이중으로 일처리 = 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증권사들은 개인소액결제만 가능하고 법인자금의 지급결제 업무는 할 수 없다. 개인이 증권사에 종합자산관리계좌(CMA)와 같은 월급통장을 개별적으로 만들 수 있지만 회사는 직원들의 급여 통장을 증권사에 일괄 개설하지 못한다. 수출 대금도 증권사 통장에 개설할 수 없다. 기업이 직원의 급여 통장을 증권사에 일괄 개설하거나 협력업체 대금결제계좌를 만들 수 없다는 얘기다.

증권사의 법인 고객은 업무 처리를 위해 은행의 가상계좌를 이용해야 한다. 법인이 IPO(기업공개) 수요예측에 참가할 경우에도 가상계좌나 당좌계좌를 통해 자금을 입금하고 증권사는 일일이 수작업으로 계좌 입출금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또 개인은 증권사에 CMA와 같은 월급통장을 개별적으로 만들 수는 있지만 회사에서 일반 통장으로 받은 급여를 다시 이체해야 한다. 증권사도 고객도 일 처리를 이중으로 진행해야 하는 것이다.

증권사의 지급결제관련 논의는 2006년에 처음 시작됐다. 당시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는 자본시장법에 증권사의 지급결제 업무를 허용하는 조항(40조4항)을 포함했다. 하지만 2007년 자본시장법이 국회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은행권이 반발하면서 국회는 개인에 한해서만 증권사의 자금이체 업무를 허용하기로 하고, 법인에 대한 지급결제는 금융결제원 규약 상 금지조치를 결정했다.

증권사는 금융시장 상황에 따라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 만큼 유동성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라는 점이 큰 이유였다. 당시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위원회)는 "증권사의 법인 대상 허용은 차후 고려하겠다"며 논의를 일단락했다. 이때 증권사들은 은행권에서 요구한 지급 결제망 이용에 대한 참가금 3375억원을 지불했다.

◆유동성 리스크 해소됐는데 = 2017년에는 황영기 전 금융투자협회장이 법인지급결제 허용을 강력히 요구했지만 불발된 바 있다. 황 전 회장은 당시 '기울어진 운동장'을 언급하며 강하게 불만을 표출했고 은행연합회와 논쟁이 붙기도 했다.

하지만 증권사의 법인지급결제는 아직까지 불가능한 상황이다. 대부분의 증권사보다 자기자본이 적은 저축은행이 기업 급여계좌나, 협력업체 대금 계좌 개설을 할 수 있는 것과 비교하면 업권 간 차별이 심각하다.

올해 6월 말 기준 자기자본 4조원 이상 초대형 증권사는 8개사에 달한다. 미래에셋증권·NH투자증권·한국투자증권·삼성증권·KB증권·하나금융투자·신한금융투자·메리츠증권 등 초대형 증권사의 자기자본은 총 46조7583억원으로 증권사의 법인지급결제 허용 요구가 불발된 지난 2017년 6월 말 32조8693억원보다 42%(13조8889억원) 증가했다.

대형 증권사 한 관계자는 "은행은 이미 펀드와 일임형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보험도 판매하며 겸업을 하고 있고 저축은행도 법인지급결제를 할 수 있다는 점과 비교하면 문제가 크다"며 "특히 증권사들이 자기자본 확충 등을 통해 자금 지급 여력도 탄탄해지고 유동성 리스크가 해소됐음에도 불구하고 법인지급결제를 막는 것은 심각한 차별"이라고 비판했다.

금융당국이 논의를 중단한 점에 대한 불만도 크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증권사의 법인지급결제는 조만간 고려하겠다고 하고서는 차일피일 미루다 14년이 지났다"며 "자본시장활성화를 위해 지금이라도 금융당국이 조정에 나서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IB 경쟁력 제고 … 자산관리 시너지= 법인지급결제 업무는 증권사뿐 만 아니라 투자자 및 법인 고객 편의를 위해서도 시급히 허용돼야 할 문제다.

특히 지급결제는 IB업무 영위에 기본적인 사항이기 때문에 해외 IB와의 경쟁을 위해서 증권사에 반드시 필요하다. 법인고객군이 큰 증권사들은 고객 편의를 위해서도 법인결제업무 허용이 절실하다는 입장이다. 증권사에 법인결제가 허용된다면 기업의 월급통장들을 증권사가 확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장점으로 부각된다.

비대면 자산관리 서비스에 적극 나서고 있는 금투업계의 사업 시너지 확대로 이어질 전망이다. 법인의 기업공개(IPO) 수요예측 참가 시 업무 처리도 간편해진다. 또 기업의 급여통장을 증권사가 확보하게 되면 신규 고객을 늘릴 수 있고 퇴직연금 등 자산관리(WM) 서비스와도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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