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알의 소리' 탄생한 그곳에 함석헌공원
용산구 옛집터 인근에 기념공원 조성
역사 바로세우기·지역사 기록 성과
"이 할아버지가 누군지 알아?" "부자에요?" "그럼.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정신이 아주 맑고 훌륭한 분이셨어."
서울 용산구 산천동 가로쉼터. 성장현 용산구청장이 야외 놀이공간을 찾은 샘물어린이집 아이들에 함석헌 선생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린이 놀이공간은 기존 산천동 가로쉼터에 함석헌공원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용산구가 함석헌 선생 탄생 120주년을 맞아 원효로4가 옛 집터 가까이 함석헌 기념공원을 조성했다. 전에는 운동기구 몇 개만 놓여있던, 방치되다시피 했던 482㎡ 가로쉼터에 선생을 기리는 기념공간과 어린이 놀이공간을 배치했다.
전통 기와 모양 담장을 둘러 차도와 구분했고 선생이 살아온 자취와 활동 등을 엿볼 수 있는 동판을 붙였다. 기존에 있던 정자는 '씨알의 소리' 쉼터로 탈바꿈했다. 잔디밭에 화강석 의자까지 두루 선생을 기억하며 쉬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 '사는 길이 결코 발 끝에 있지 않고 저 먼 앞에 있다…'는 '너 자신을 혁명하라' 는 문장비도 눈에 띈다.
함석헌 선생은 1956년 원효로4가 70번지에 사택을 마련하면서 용산과 인연을 맺었다. 1970년 4.19 10돌을 맞아 진보적 평론지 '씨알의 소리'를 창간했는데 책을 펴낸 출판사 '씨알의 소리사' 주소지가 그의 자택이다.
용산구는 성장현 구청장이 재임했던 민선 2기부터 자택 매입을 시도했다. 성 구청장은 "살아있는 근현대사 유산으로 활용하고자 했는데 선생이 '살 곳이 없다'고 하셔서 미루다 구청장이 바뀌면서 중단됐다"며 "지금 같았으면 자택을 매입하고 돌아가실 때까지 사시라고 했을 텐데 아쉽다"고 말했다. 민선 5기 다시 구청장으로 돌아왔지만 선생의 집은 연립주택으로 바뀌어있었다.
올해 초 원효로1·2동 일대 지역사 기록화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선생을 기억하는 이웃들의 생생한 구술을 확보하고 그의 업적을 재확인했다. 이후 함석헌기념사업회와 함께 기념공간 조성 방안을 논의하고 공원을 마련했다. 성 구청장은 "선생의 사상을 연구하는 참배객들이 전국에서 찾아와 옛 집터를 둘러보고 가는데 잠시 쉬면서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이라도 제공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가까이 공공 어린이집이 있어 아이들이 뛰어놀면서 자연스레 선생의 뜻을 배울 수 있도록 놀이공간도 함께 배치했다. 공원 조성과 함께 옛 집터 인근 도로에 '함석헌길' 명예도로명도 붙였다.
함석헌 기념공원은 용산구에서 오랫동안 진행하고 있는 역사 바로 세우기 일환이자 지역사 기록화 작업 결실이다. 구는 2011년 효창공원 의열사 7위 선열 숭모제를 시작으로 2015년 유관순 열사 추모비 건립, 2017년 안중근 의사 추모행사, 2020년 이봉창 의사 역사울림관 개관 등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동시에 매년 두개동씩 동네의 숨은 역사를 찾고 주민들 구술을 받아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보광동에서 일제강점기 군 기지 건설로 삶의 터전을 잃은 둔지미마을 사람들이 이주했던 사연을 담았고 지난해 효창동에서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철도국 직원들 관사촌 흔적을 기록했다. 올해는 원효1·2동과 용문동 기록을 정리한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근현대 역사인물로서 선생의 일대기를 재조명하고 역사 바로 세우기 사업을 한단계 진화시킬 것"이라며 "책에 나와있지 않은 지역 역사가 개발사업으로 모두 사라지기 전에 기록한 뒤 용산역사박물관에 보관, 후대가 알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