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트럭시위, 미국·프랑스 예의주시

2022-02-14 11:18:09 게재

FT "백신반대 시위, 반정부 양상 확대 … 각국 정부, 극우·음모론 지지자들 면밀 감시"

캐나다 트럭운전사들이 수도 오타와를 점령한 지 2주가 됐다. 20여곳의 도로가 막혔다. 수천명의 오타와 시민이 피해를 입을까 두려움에 떨고 있다.

자신의 트럭을 몰고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서 오타와시까지 4500km를 왔다는 25세 트럭운전사 놀런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지금은 정부의 압제에 맞서 싸울 때"라고 강경하게 말했다. 지난 11일 동안 트럭에서 쪽잠을 자며 시위에 참가했다는 놀란은 "얼마나 오래 걸리든 계속 여기에 남아 시위에 참여하겠다"고 덧붙였다.

캐나다 의회 앞 대로를 가득 메운 '자유 호송대' 트럭들과 시위 인파 사진 EPA=연합뉴스

놀란이 참여한 시위대는 스스로를 '자유호송대'(Freedom Convoy)로 칭한다. 시위대엔 트럭운전사들과 코로나19 봉쇄반대 지지자들이 뒤섞였다. 자유호송대는 오타와시 중심가와 캐나다-미국 국경 일부를 막아선 상태다.

이들의 시위는 지난달 시작됐다. 발화점이 된 건 국경을 넘나드는 트럭운전사들에게 코로나19 백신접종을 의무화하면서다. 이들은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정부가 개인의 자유를 무참히 짓밟았다"며 분개했다. 이후 시위는 백신반대와 극우정치, 음모론이 뒤섞이면서 광범위한 반정부 양상으로 확산됐다.

현재 캐나다 의회 앞 거리 곳곳엔 트럭과 승용차 등 약 500대의 차량이 늘어서 있다. 차량이 모인 곳에선 석유 냄새가 짙게 풍긴다. 시위대가 추위를 피하기 위해 등유 난방을 하기 때문이다. 의회 건물 밖 길게 뻗은 대로에는 간이식당으로 쓰이는 텐트와 핫도그가 잔뜩 올려진 테이블 등이 놓여 있다. 일주일 전엔 이동식 사우나까지 있었다.

중도좌파 성향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는 시위대의 주요 타깃이다. 트뤼도 총리는 시위대 때문에 오타와 공관을 떠난 상태. 그는 "시위대가 캐나다 경제와 민주주의, 시민들의 일상생활을 봉쇄하려 노력하고 있다"며 "이젠 시위를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FT는 "현재의 시위는 단기간에 끝날 가능성도 있다. 캐나다 트럭운전사를 공식 대표하는 노조는 시위 참가자들을 비난하고 있다"며 "하지만 캐나다 시위가 프랑스와 미국 등 전세계로 퍼져나갈 가능성이 크다. 특히 미국 정치권에선 캐나다 시위의 추이를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고 전했다.

오타와 시위는 지난 2년 간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각국 정부의 각종 제한 조치가 시민들의 인내심을 넘어섰다는 의미일 수 있다. 몇달 전부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과 벨기에 브뤼셀에서도 정부의 제한조치에 반대하는 폭력시위가 등장한 바 있다.

자녀의 백신접종 여부를 정부가 아닌, 부모가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캐나다 시민단체 '패밀리 포 초이스'의 공동 창립자인 캐서린 캐루더스는 시위에 나선 트럭운전사들을 '지구를 살릴 소금'이라고 추켜세웠다. 그는 "트럭운전사들이 직접 행동에 나선 것을 보면서 무력감과 좌절감에 시달리던 캐나다인들은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됐다. 무언가 바뀌어야 하고 실제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이다. 그들과 함께 맞서야 한다"고 말했다.

시위에 따른 피해 누적

시위 발생 2주가 지나면서 피해가 커지기 시작했다. 지난주 초 트럭운전사들은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와 캐나다 온타리오주 윈저를 잇는 앰배서더다리를 봉쇄했다. 미-캐나다 무역의 1/4이 이곳을 지난다.

다리 봉쇄로 하루 평균 약 3억캐나다달러(약 2825억원)의 교역이 지연되고 있다. 도요타와 포드 등 자동차업체들은 생산에 차질이 빚어진다고 호소했다. 오타와시 경찰청에 따르면 시위대들은 오타와국제공항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막고 집단으로 괴전화를 걸어 경찰의 긴급대응 시스템을 와해시키려 하기도 했다. 캐나다 교통부장관 오마르 앨가브라는 "공급망을 막으려는 시위대들이 시민과 노동자들에게 매우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시위 초기만 해도 한발 물러서 있었다. 자칫 경찰의 개입으로 폭력시위가 될 우려가 컸기 때문. 이로 인해 오타와 시민 상당수가 시위로 인한 피해에 직면해 고립감을 느꼈다. 일부 시민은 '시위대가 집 문앞에 대소변을 보는 통에 곤욕을 치렀다' '마스크를 착용했다는 이유로 욕설을 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오타와 최대 쇼핑몰을 비롯한 수십곳의 기업들이 문을 닫았다. 깃발을 휘날리며 마스크를 벗은 시위대들이 잠시나마 쇼핑몰을 점거하기도 했다.

오타와 시경은 지난주 시위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경범죄 혐의로 25명을 체포했다. 지난주 금요일 온타리오 주지사인 더그 포드는 긴급사태를 선언하고 도로와 교량을 막는 시위 참가자들에게 최대 10만캐나다달러 벌금과 1년 징역을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시위대는 캐나다 사회의 동조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5세 이상 캐나다인들의 82%가 백신접종을 완료했다. 전세계 최고 수준이다. 최근 애버커스 데이터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오타와 시민 87%가 시위대의 해산을 원한다고 답했다.

캐나다 1만5000여명의 트럭운전사들을 대변하는 노조 '팀스터스 캐나다'는 시위대를 비난했다. 이 단체 대표인 프랑수아 라포트는 최근 성명서에서 "자유호송단은 물론 우파 정치인들이 부추기는 비열한 증오는 팀스터스 캐나다와 회원들이 중시하는 가치를 반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시위대는 "우리들의 불만은 트뤼도 총리에게 쏠려 있다"고 말한다. 트뤼도 총리는 지난해 9월 총선 과정에서 백신 미접종 시위대가 던진 돌에 맞기도 했다.

캐나다정부는 특정 직업군에 백신의무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에 불응했던 경찰관과 소방관, 트럭운전사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이들 중 일부가 이번 시위에 참여했다.

코로나19 제한조치 대부분은 지방정부가 책임진다. 온타리오주와 퀘벡주를 포함한 많은 지자체는 식당이나 영화관, 술집에 출입할 때 백신접종 증명서를 의무적으로 제시토록 했다. 서스캐처원주와 앨버타주 등 서부지역 지자체들은 현재 제한조치를 완화하기 시작했다.

온타리오주 킹스턴 소재 캐나다 왕립사관학교 정치학 교수인 스테파니 쉬나드는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최전선에 나선 노동자들이나 재택근무 처지가 안되는 노동자들은 다른 계층보다 더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며 "이같은 분노의 감정이 트럭운전사 시위에 불을 댕긴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극우파들은 이런 분노를 자극해 시위를 조직하고 공급망을 방해하는 구실로 삼았다"고 덧붙였다.

정치적 기득권층도 시위에 대한 입장에서 균열을 드러냈다. 지난주 초 트뤼도 총리가 소속된 자유당의 평의원인 조엘 라이트바운드는 "총리가 백신 미접종자들과 봉쇄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이들에게 비난이 쏟아지도록 유도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캐나다에서 평의원이 당의 리더를 상대로 비판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는 점에서 라이트바운드 의원의 발언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야당인 보수당은 최근 당수를 몰아냈다. 우파 성향의 보수당을 지나치게 중도로 전환했다는 이유에서다. 보수당은 시위 초반 트럭운전사들을 지지했다. 하지만 시위가 계속 이어지면서 일부 의원들은 시위의 과격화 전환을 우려해 방침을 바꿨다. 임시 지도자로 나선 캔디스 버겐은 지난주 목요일 시위대에 도로와 교량 봉쇄를 풀라고 요청했다.

여러 나라로 확산 움직임

미국과의 국경에서 시위가 벌어지면서 이미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위축된 공급망에 추가적인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 하지만 바이든행정부의 우려는 다른 데 있다. 미국의 트럭운전사들이 뉴욕이나 워싱턴 D.C에서 비슷한 시위를 조직하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다.

미국 국토안보부는 지난주 법집행 기관들에 '우리나라의 트럭운전사들도 호송단을 계획할 수 있다'며 주의와 관심을 촉구했다. 국토안보부는 "캘리포니아에서 시작해 워싱턴 D.C에서 끝나는 트럭 시위대가 조직될 수 있다"며 "그럴 경우 로스엔젤레스에서 열릴 슈퍼볼과 3월 1일 조 바이든 대통령의 연두교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극우파의 온라인 활동을 추적하는 전문가와 정부 관계자들은 큐어넌 음모이론 운동에 관련된 사람들, 전직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미국에서 비슷한 시위를 주도할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캐나다 자유호송단 시위에 대해 트럼프 전 대통령이나 공화당 상원 의원 테드 크루즈, 플로리다 주지사 론 드산티스 등 정치인은 물론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도 지지의 뜻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미국 내 상황은 캐나다와 다르다는 분석도 나온다.

온라인 가짜정보를 추적하는 단체 '로지컬리'(Logically)의 전략운용 부대표인 브라이언 머피는 "미국과 캐나다의 음모론 단체들이 지난 수주 동안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공유한 건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미국에서 트럭운전사들은 캐나다에 비해 훨씬 느슨하고 헐거운 집단이다. 캐나다와 달리 정치 개입의 역사도 없다. 미국에서 비슷한 시위가 벌어지려면 시위를 조직하거나 확대시킬 여러 지도자들이 필요한데, 현재 주도적으로 나서는 이들이 없다"고 말했다.

큐어넌 음모이론을 추적하는 팟캐스트 진행자 마이크 레인스는 "미국 내 음모론 신봉자들과 우파 사기꾼들이 미국에서도 호송단이 등장할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다"며 "하지만 모두가 누가 먼저 시작할지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당국이 캐나다 시위와 비슷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을 매우 잘 인지하고 있다는 점을 , 그리고 시위가 일어나기 전 이를 막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을 그들 역시 알고 있다"며 "워싱턴 D.C 인근에서 비슷한 시위가 일어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말했다.

레인스는 "시위가 벌어질 가능성이 더 큰 지역은 미국-멕시코 국경일 것"이라며 "이곳은 경찰력을 배치하기가 훨씬 어렵고, 따라서 이곳에서 시위가 벌어진다면 11월 중간선거 전 정치적 논쟁의 초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프랑스에선 지난 주말 자동차와 트럭 등을 앞세운 시위대가 수도인 파리를 향했다. 페이스북과 텔레그램 등을 통해 조직된 프랑스 시위대 역시 정부의 코로나19 백신 의무화에 반대하는 사람들로 구성됐다는 분석이다. 파리 시당국은 "시위대들은 금요일부터 다음주 월요일까지 파리 진입이 불허될 것"이라며 "공공의 질서를 깨뜨릴 위험요소가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캐나다 시위 당분간 계속될 듯

오타와 시위대 일부에선 과거 독일 나치당의 상징 문양과 미국 남북전쟁 당시 쓰던 남부연합기 등 극우적 요소도 종종 등장하고 있다. 또 반언론 감정도 거세다. 시위 조직자들은 주류 언론사들의 기자를 배제하고 우파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기자를 중심으로 시위 관련 기자회견에 참석시키고 있다.

외부세력의 개입이나 자금지원 우려도 있다. 캐나다 공공안전부 장관인 마르코 멘디치노는 "트럭운전사 시위에 외부 세력이 개입하고 지원하는 것에 대해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기부사이트인 '고펀드미'(GoFundMe)에 따르면 '자유 호송대 2022'라는 기부란을 통해 약 1000만캐나다달러(약 95억원)가 모금됐다. 이 중 일부 기부금은 미국 내 동조자들로부터 나온 것으로 추측된다. 고펀드미 측은 시위가 불법 점거로 변질됐다고 판단한다며 해당 기부란을 폐쇄했다.

3주차로 접어드는 캐나다 트럭운전사 시위는 당분간 계속 진행될 전망이다. 시위 조직인 중 한 명인 톰 마라조는 FT에 "나는 집에 가고 싶다. 하지만 이런 시위가 필요없을 때까지, 우리의 목표가 이뤄질 때까지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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