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직원 사망, 사과·위로금 지급"

2022-03-07 11:29:22 게재

남양연구소 조직문화 개선위

"질판위 판정 뒤집기 어렵다"

사측 "충실히 이행, 개선 노력"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 현대디자인센터 이 모 책임연구원의 극단적 선택에 대해 조사해온 '남양연구소 조직문화개선위원회'(개선위)가 현대차에 유가족에게 사과와 보상 등을 권고했다. 현대차는 "권고사항을 겸허한 자세로 충실히 이행"을 약속했다.

4일 유성재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위원장으로 이정식 전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 박형욱 단국대 의과대학 교수 등 외부 전문가로 꾸려진 개선위는 한달간의 조사를 통해 이 같이 권고하고 연구소 직원들에게 이메일로 관련 내용을 공지했다.

2018년부터 투싼 신차 디자인을 준비해온 이씨는 2020년 9월 자택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지난 1월 뒤늦게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이씨는 당시 정신과에서 조울증, 심한 우울증,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고 6개월 간 휴직 중인 상태였다.

이를 계기로 연구소 내부에서 조직문화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현대차는 개선위를 꾸려 조사를 의뢰했다.

지난달 4일 근로복지공단 '경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질판위)는 지난해 7월 유족들이 낸 유족급여 등 청구에 대해 '개인적 요인'으로 정신질환이 발병했다며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개선위는 1월 28일부터 질판위 자료·진료기록 등 약 1500쪽의 서류를 검토하고 10여명의 관련자 면담, 고인의 PC와 휴대전화에 대한 포렌식 분석, 3800여명 익명 설문조사, 34명 심층인터뷰 실시하고, 10차례에 걸친 위원회 회의를 열어 보고서를 작성했다.

개선위는 이러한 질판위의 판단을 뒤집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다만 이씨의 업무상 스트레스에 대해 "디자인센터의 업무 특성이 스트레스를 가중시킬 수 있는 환경"이라고 판단했다. 또 "가해자로 지목된 상사(이상엽 디자인센터장)가 고인에게 폭언을 했다는 관련자들의 진술은 확보하지 못했지만 다른 구성원에게 부적절한 발언을 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개선위는 현대차에는 △연구소 기관장인 현 박정국 현대차·기아 연구개발본부장의 사과 △도의적 책임에 따라 위로금 제공 △이상엽 디자인센터장 등 조직운영 책임자에 대한 회사의 적절한 조치 등을 권고했다.

개선위는 "현 연구개발본부장이 유가족과 연구소 임직원에게 고인의 사망에 관해 연구소가 충분히 배려하지 못한 점, 연구소 직장 문화 중 기록되지 않은 과로, 성과주의와 경쟁 등에서 비롯된 업무상 스트레스, 일부 센터장 등 보직자에 의한 괴롭힘과 인권 감수성 부족 등의 문제점이 적지 않다는 점에 대해 사과할 것"을 권고했다.

또한 개선위는 "고인의 정신질환 발병이나 자살과 관련해 현대차에 인과관계를 인정할 만한 법적 책임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직장문화의 일부 문제점 등과 관련해 도의적 책임이 있다는 점에서 고인의 어린 자녀를 위해 신탁제도를 활용한 위로금을 제공하고, 유족이 희망하는 경우 위로금을 지급하는 민사상 합의를 하되 고인의 사망 관련 행정소송 제기에는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할 것"을 권고했다.

아울러 개선위는 "이 디자인센터장과 실장·팀장들에 대해 개선위 보고서를 토대로 한 '리더십 개선' 특별교육을 실시하고, 이 센터장과 과로·스트레스·괴롭힘 등 조직 운영 책임이 있는 일부 실장·팀장들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개선위에 참여한 이정식 위원은 "건강한 조직문화가 지속가능경영, 글로벌 경쟁력의 핵심이 되고 있다"면서 "지속적인 변화관리는 최고경영자의 확고한 의지와 조직 구성원들의 비전 공유 및 적극적인 참여로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대차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조사를 위해 외부전문가로 구성된 개선위의 실태 조사 결과를 엄중히 받아들이고, 관련 권고사항을 겸허한 자세로 충실히 이행하겠다"며 "권고사항을 토대로 조직문화 개선을 위한 지속적이고 진정성 있는 노력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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