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신뢰할 수 있는 글로벌 공급망 허브, 대한민국

2022-03-23 11:05:28 게재
이경호 산업통상자원부 소재부품장비협력관

조선 후기 거상 임상옥은 약 200년 전 청나라와의 인삼 무역권을 독점하고, 천재적인 수완을 발휘해 당대 최고의 부자 자리에 앉은 인물이다. 북경상인들은 인삼 가격을 낮추기 위해 임상옥을 상대로 불매동맹을 맺었는데, 북경에서 귀국하기 전에 물건을 모두 팔아야만 하는 임상옥이 인삼을 헐값으로 내다 팔 것을 노린 수작이었다.

하지만 임상옥은 귀국 하루 전날, 북경상인들이 보는 앞에서 인삼 포대를 쌓아놓고 불을 질러버렸다. 인삼 가격은 그 자리에서 제값의 10배나 껑충 뛰었고 임상옥은 은과 비단을 산더미같이 싣고 금의환향했다.

인삼 불태워 북경상인 담합 깬 임상옥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여러 국가들의 처지는 안타깝게도 임상옥보다 북경상인들에 가깝다. 요즘으로 치자면 인삼은 조선이 공급망을 독점하고 있고, 중국에서 대체가 어려운 핵심 소재였던 것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청나라 상인들은 조선의 독점적 지위에 대항해보려 했지만 공급망 위협이 눈앞에서 현실화되자 담합은 순식간에 와해되고 웃돈을 얹어서라도 인삼을 구매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실 지금의 현실은 과거 북경상인의 처지보다도 가혹하다. 웃돈을 얹어서라도 상품을 구할 수 있으면 다행이다. 우리나라도 차량용 부품 수급문제로 현대차 공장이 10일 이상 멈춰서기도 했다.

비용 절감과 효율성 극대화가 최고의 미덕이었던 글로벌 공급망이 현재는 특정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낮추는 등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미국은 반도체 배터리 백신 등 첨단제품의 공급망에서 특정 국가를 노골적으로 배제하는 등 안보 관점에서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을 추진중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손꼽히게 제조업 비중과 무역의존도가 높다.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은 면밀하게 관리해야 할 위험요소다. 하지만 한편으론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 전세계는 지금 신뢰할 수 있는 공급처를 찾아 나서고 있는데 우리는 여기에 강점이 있다.

글로벌 GDP 85%의 세계시장 확보 강점

우선 반도체·배터리 등 첨단산업을 주도하는 핵심기업을 구심점으로 국내·외 소부장 기업과 탄탄한 공급망이 형성되어 있다. 또한 전세계 59개국과 22건의 FTA를 체결해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글로벌 GDP의 85%에 해당하는 세계시장을 확보하고 있다.

중국 아세안과 인접해 있으면서 태평양을 향해 열려 있는 지정학적 위치도 다른 나라가 갖지 못하는 강점이다. 미중 패권경쟁 격화에 따라 대한민국은 지정학적 요충지로 다시 주목받는다.

마지막으로 산업계의 공감을 바탕으로 탄소중립을 모범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탄소중립에 동참하지 않는 기업과 제품은 글로벌 공급망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높은데 우리는 리스크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이쯤에서 임상옥을 다시 떠올려 본다. 임상옥은 '장사는 이윤을 남기는게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국제무역에서 신뢰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가진 강점을 잘 살려 대한민국이 미래 글로벌 공급망 허브 국가로 발돋움하고, '신뢰할 수 있는 대한민국' 프리미엄을 등에 업고 우리 기업이 글로벌 공급망을 선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