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쿠팡의 안하무인과 벤처업계의 침묵

2026-02-26 13:00:03 게재

“미국 하원의 의견청취로까지 이어진 상황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쿠팡의 모기업인 미국 쿠팡Inc가 25일 내놓은 입장문이다. 해롤드 로저스 한국법인 임시대표가 미국 하원 법사위원회에서 약 7시간 동안 비공개 증언을 마친 뒤다.

단어집에서 ‘유감’을 찾아봤다. ‘못마땅하고 섭섭한 느낌이 있다’는 의미다. 외교적 표현으로는 ‘어떤 국가나 단체의 대표자가 다른 국가·단체 대표자의 그릇된 말과 행동에 대해 항의하며 올바른 방향으로 바꾸어 주기를 요청할 때 쓰는 말’이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쿠팡은 한국정부의 대응이 못마땅해 항의하고 있는 셈이다. 3370만명의 한국국민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미안함은 찾아볼 수 없다.

쿠팡은 ‘한미 간 가교역할’과 ‘한미 안보동맹 강화’도 거론했다. 랍 포터 쿠팡Inc 글로벌 대외협력최고책임자(CGAO)는 처음으로 “건설적인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트럼프 최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정부를 뒷배로 은근히 협박하는 모양새다. 쿠팡은 미국기업이니 건들지 말라는 것으로 읽힌다. 방자하고 교만하다.

쿠팡은 2011년 벤처기업 인증을 받으며 정책혜택을 받기 시작했다. 법인세 취득세 재산세를 감면 받았다. 쿠팡이 초기에 유치한 벤처캐피털(VC) 투자금 중 상당 부분은 정부가 조성한 모태펀드에서 출자한 자금이다. 한국 국민의 세금은 쿠팡이 죽음의 계곡을 넘게 해준 ‘키다리 아저씨’였다. 2021년 3월 쿠팡이 미국증권시장에 입성하자 온 국민이 축하한 이유다. 벤처업계는 물론 정치권까지 ‘한국벤처가 낳은 혁신의 성공’으로 칭송했다.

덩치가 커지자 은혜를 잊었다. 김범석 의장은 기업가정신을 버렸다. 물류직원 과로사에도, 심야배송 중 사망사고에도 법의 잣대만을 들이댔다. 3370만명의 한국국민 개인정보 유출에는 배은망덕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쿠팡 태도는 시장독과점과 무관치 않다는 평가도 있다. 새벽배송에 익숙한 한국 국민들이 ‘탈팡’하지 못할 것이라는 자신감이라는 것이다.

국민과 달리 벤처업계는 쿠팡사태에 침묵하고 있다. ‘성공한 혁신’으로 치켜세우던 벤처업계였다. 물론 벤처기업인들 상당수가 쿠팡과 김 의장 태도를 지적한다. 하지만 개인적 불만 수준이다. 배달의민족 카카오 네이버 등이 사회갈등을 야기시켰을 때도 벤처업계는 침묵했다. 일부에서는 신기술 규제 타령만 늘어놓았다.

지금까지 보여준 쿠팡과 김범석 의장의 모습은 ‘오만’ 그 자체다. 혁신 아이콘도 기업가정신을 버리고 덩치만 커지면 재벌이 된다는 사실을 쿠팡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기업가정신 사라진 혁신은 탐욕의 기술일 뿐이다.

벤처 1세대를 중심으로 한 벤처리더들은 계속 침묵할 것인가.

김형수 산업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