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안 되는 게 없는 중국, 그래도 안 되는 한국

2026-02-26 13:00:04 게재

“중국과 한국의 기술격차가 최근 2년 새 80% 더 벌어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최근 내놓은 보고서의 골자다. 2차 전지, 차세대통신, 첨단모빌리티와 로봇, 인공지능(AI), 반도체, 자율주행시스템 등 50개 국가전략기술을 대상으로 한 평가 결과다. 2022년 미국의 86.5%였던 중국의 기술수준이 2024년 91.3%로 높아지는 동안 한국은 81.7%에서 82.7%로 제자리걸음을 한 탓이다.

AI와 로봇 분야의 기술 격차가 특히 심각하다. AI 분야에서 중국(미국의 93.0%)은 한국(80.6%)에 12.4%p 앞섰고, 로봇은 중국이 90%, 한국은 81%였다. 한국이 앞서 온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마저 중국 91.5%, 한국 91.2%로 우위를 내줬다.

중국의 ‘기술굴기(技術屈起)’ 질주에 거침이 없다. 미국 의회 자문기구인 신흥바이오기술국가안보위원회(NSCEB)는 더 충격적인 보고서를 최근 발표했다. 지난해 중국은 59건의 혁신 신약을 발표, 29건에 그친 미국을 배 이상 앞서며 세계 1위로 올라섰다는 내용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나오는 신약 후보물질도 30% 이상을 중국 바이오기업이 차지할 정도로 원천기술력에서도 세계 최고수준이 됐다.

한국이 ‘바이오 강국’을 국가과제의 하나로 선언한 지 오래지만 중국과는 더 이상 비교대상이 못된다. 중국의 지난해 제약·바이오 분야 기술수출 금액이 1467억8400만달러(약 214조3100억원)에 이른 데 비해 한국은 150억3362만달러로 중국의 10.2%에 불과했다.

중국 '기술굴기' 이어 바이오도 대약진

중국이 단기간에 ‘바이오 대약진’을 이뤄낸 비결이 뭘까. 체계적이고 대대적인 투자 못지않게 과감한 규제혁파가 꼽힌다. 중국은 지난해 9월 신약 개발과 관련, 임상 1·2상에 대해 신청부터 승인까지 걸리는 기간을 60일에서 30일로 단축시켰다. 이 기간 내 별도의 통보가 없으면 자동 승인으로 간주하는 장치까지 마련했다.

아무리 빨라도 평균 120일 이상 걸리는 한국은 속도경쟁에서부터 밀려날 수밖에 없다. 상장 관련 규제도 풀었다. 핵심기술과 연구개발 투자가 뚜렷한 기업에 대해서는 실적 요건 없이 즉시 상장을 허용, 안정적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길을 터줬다.

바이오만 그런 게 아니다. 중국이 단기간 내 세계 최정상 수준에 올라선 산업들에는 기업이 마음껏 기술을 개발하고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멍석’을 넓게 깔아줬다는 공통점이 있다. 세계 시장 점유율을 90%까지 차지했던 절대1위 산업 드론(무인비행장치)을 비롯해 전기자동차, 휴머노이드 로봇, 자율주행 등 대부분 산업에서 중국 기업들은 규제 걱정 없이 기술개발에 전념하고 있다. 전파법과 항공법 등 관련법령이 한국과 중국에 똑같이 있지만 적용관점이 다르다. ‘전례가 없거나 부작용이 우려되므로 안된다’는 한국, ‘일단 시도해보자’는 중국의 차이는 너무나 크다.

정치적으로 공산당이 철권통치하는 사회주의 독재체제를 고수하고 있지만 중국은 신산업에 관한 한 미국 못지않게 기업들에 자유와 자율을 허용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제조업뿐 아니라 원격진료와 줄기세포 치료, 공유경제 등 서비스산업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기존 사업자 보호와 생명윤리 등을 이유로 규제 빗장을 걸고 있는 이들 분야에 대해 중국은 ‘일단 허용, 문제 노출 시 보완’의 원칙을 일관되게 밀어붙이고 있다. ‘타다(승차공유 플랫폼) 금지 사태’ 같은 걸 중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유다.

이런 차이가 쌓여 불과 10~20년 만에 한국과 중국 산업계의 경쟁력과 국제 위상이 하늘과 땅 차이로 벌어졌다. 뒤늦게나마 이런 문제의 심각성을 직시한 이재명정부가 규제혁파와 이를 통한 성장잠재력 확충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내걸고 나섰다. 이 대통령은 기업인들과의 자리를 자주 가지면서 “정부는 기업인들이 기업 활동을 하는 데 장애가 최소화되도록 정말 총력을 다할 생각”이라는 다짐을 내놓고 있다. 대기업 총수들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는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첨병은 기업”이라며 국내 투자와 고용을 가로막는 규제를 과감하게 철폐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절호의 국정 대혁신 기회’ 놓치지 말아야

문제는 실천이다. 대통령 말과 달리 정부여당이 내놓는 산업·환경·노동정책 기조는 아직도 큰 변화를 찾아보기 어렵다. ‘노동권 보호’ 원리주의에 갇혀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반도체 등 첨단산업의 연구개발시간까지 발을 묶고 있는 것을 비롯해 기업들의 거듭된 호소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제시한 것 등이 대표적이다.

양대 노동조합단체 등 핵심 지지세력 설득이 쉽지 않겠지만 역대 최고수준의 국정 지지율과 국회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한 지금의 정부 여당이 아니라면 해낼 수 없는 ‘절호의 국정 대혁신 기회’라는 인식전환이 시급하다. “이념이 밥 먹여주느냐”는 이 대통령의 단골 레토릭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옮기자. ‘천지개벽’을 이뤄낸 중국을 언제까지 바라보기만 할 건가.

경제사회연구원 이사 전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