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체자 117만명…연체채권 매각해도 금융사에 책임 부여한다
장기 연체자 매년 30만명 가량 발생
당국, 재매각 책임 지워 불법추심 차단
채무조정 활성화, 기계적 시효연장 막아
지난해말 금융권의 연체 채무자가 117만명을 넘어섰다. 90일 이상 장기 연체 신규 발생이 지난해 30만명에 육박하면서 금융당국이 개인 연체채권 관리 강화에 나서기로 했다. 불법 채권 추심을 막기 위해 연체 채권을 매각한 이후에도 금융회사들에 책임을 부여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26일 금융위원회는 신용회복위원회 광진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 교육장에서 ‘포용적 금융 대전환’ 2차 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연체자 보호와 신속한 재기 지원을 위한 개인 연체채권 관리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해말 단기(5~89일) 연체자는 23만7000명, 장기(90일 이상) 연체자는 93만6000명으로 전체 연체 채무자는 117만3000명으로 나타났다. 단기 연체자는 전년(31만1000명) 대비 7만4000명 감소한데 비해 장기 연체자는 전년(88만3000명) 대비 5만3000명 증가했다. 장기 연체자는 2017년 94만3000명 이후 가장 많았다. 신규 장기 연체자는 지난해 29만1000명 증가하는 등 매년 30만명 안팎으로 발생하고 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현재 우리 금융권은 곤란에 처한 차주에게 일거에 원리금 상환을 요구하고 연체채권 매각을 통해 고객보호 책임에서 손쉽게 벗어나며, 회수 가능성이 없는 경우에도 소멸시효를 기계적으로 연장해 장기연체자를 양산하는 등 어려움에 처한 분들의 빠른 재기 보다는 회수 극대화 중심의 과거 관행을 답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장은 “이러한 관행의 근본적 개혁 없이는 우리 금융이 고객의 신뢰를 바탕으로 장기적인 발전을 이루기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채권 매각시 재매각 관련 의무도 부과 = 금융당국은 연체채권을 매각한 이후에도 은행 등 원채권자의 고객보호 책임을 강화하기로 했다. 상각·대손처리를 마친 연체채권은 주로 저축은행과 대부업(매입 채권추심업체) 등 추심 전문업체에 매각된다. 한번 매각된 채권은 부실채권시장에서 재매각을 거치면서 더 영세한 추심업체로 넘어가는 손바뀜이 발생한다.
연체채권이 매각되면 채무자는 강도 높은 추심과 신용하락위험 등 불이익을 받게 되지만 원채권 금융회사는 고객책임에서 벗어나게 된다.
금융당국은 채권 양수인의 불법행위에 대한 점검 및 발견 즉시 감독당국 보고의무를 원채권 금융기관에 부여하고 신용회복위원회 신속 채무조정 중인 채권을 매각 제한 채권으로 규정하기로 했다.
또 채권 재매각 관련 책임도 부여하기로 했다. 채권 매각시 매각 조건으로 재매각 관련 사항 포함을 의무화하는 내용이다. 채권 재매각 가능 여부 및 범위, 재매각시 승계되는 채무자 보호 조건 등을 채권 매매계약서에 구체적으로 명시하도록 하는 것이다. 특히 적절한 추심업체로 재매각이 이뤄지도록 채권 매매계약서에 관련 판단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의무를 부과하기로 했다. 재매각 조건을 위반할 경우 양도인의 양수인에 대한 차회 채권 매각을 제한하는 패널티 부과도 추진된다. 미국은 2014년부터 채권 매각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채권매각시 원채권자의 책임 등을 규정하고 있다. 독일도 금융기관의 채권 양·수도시 관련 내용을 감독기관에 보고하는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금융회사별 채무조정 실적 평가, 원금 감면시 손실로 인정 = 초기 연체자에 대한 금융회사의 자체 채무조정도 활성화하기로 했다. 개인채무자보호법 시행으로 채무조정 요청권이 도입됐지만 실적은 미흡한 상황이다.
금융당국은 금융회사들이 기한 이익 상실 전 채무자에게 채무조정 요청권의 별도 안내 의무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은행에 대해 우선 시행하고 금융업권 전체로 확대할 예정이다. 또 채무조정 내부기준을 구체화하고 업권별 모범사례의 배포·확산을 유도하기로 했다.
금융회사별로 채무조정 실적에 대한 사후평가 시스템도 마련된다. 신용회복위원회 및 개별 협회 홈페이지를 통해 실적을 공시하고, 현재 마련 중인 은행권 포용금융 종합평가체계에 자체 채무조정 실적을 평가지표로 반영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와함께 자체 채무조정 과정에서 원금 감면시 감면부분을 손실로 인정하는 법인세법 시행령 개정도 재정경제부 협조를 통해 진행한다.
영국은 금융회사가 채무자의 상환곤란 여부를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필요한 경우 선제적인 채무조정을 제안할 의무가 있다. 독일은 사적 채무조정을 법원 개인파산 신청의 필수 전치 절차로 운영하는 3단계 채무조정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소멸시효 연장 쉽게 못하게 차단 = 금융회사들이 연체 채권의 소멸시효를 기계적으로 연장해온 관행에 대해서도 칼을 빼들었다.
현재 금융회사들은 채권의 시효완성과 상관없이 상각 시점부터 바로 손비로 인식하고 있다. 채권자는 상각을 통해 이미 세제 혜택을 받았기 때문에 소멸시효를 완성시킬 실익이 부재하다는 게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금융회사 연체채권에 대해 시효완성(잔여기간 도래시 채권 포기)을 조건으로 손비를 인정해주기로 했다. 손비 인정 후 최초 소멸시효 기간 도래시 시효이익을 포기하도록 하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금융권 건전성 관리 부담을 고려해 우선 은행·보험은 5000만원 이하, 저축은행·상호금융·여신금융전문회사는 3000만원 이하 연체채권에 적용할 것”이라며 “제도 안착 추이를 봐가며 추후 업권별 적용기준 상향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와함께 현재 금융회사가 채무자의 상환 가능성에 대한 고려 없이 관행적으로 소멸시효를 연장함에 따라 시효 완성이 지연되고 있다고 보고, 앞으로는 채권의 회수 가능성 등을 따져 소멸시효 연장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판단 근거와 절차를 마련하기로 했다. 소멸시효 완성을 원칙으로 하되, 예외적으로 연장하는 기준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지난 12년간 금융회사에 손쉬운 독촉과 시효 연장을 가능하게 했던 소송촉진특례법상 공시송달 특례에 대해서도 법무부와 함께 조속한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공시송달 특례는 금융회사(채권자)가 소송할 때 채무자에게 서류가 제대로 안 가도 법원 게시판이나 관보에 올려두면 전달한 걸로 간주하자는 제도다. 소멸시효를 쉽게 연장할 수 있는 이 같은 특례를 없애겠다는 것이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