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환의 유럽 톺아보기

1776년의 기적, 와트·스미스·기번의 창조와 미국 독립

2026-02-26 13:00:04 게재

와트가 엔진(신기술)을 만들었고, 스미스가 부강한 국가규칙(경제론)을 썼으며, 기번은 규칙을 어긴 국가가 어떻게 몰락했는지(역사관)를 기록했다.

250년 전 1776년 2월 17일 스코틀랜드 출신들인 역사학자 에드워드 기번이 ‘로마제국 흥망사’를 출간했고, 3월 8일 제임스 와트가 상업적인 ‘증기기관’ 상용화를, 하루 뒤인 9일 계몽주의를 이끈 도덕철학자 아담 스미스가 ‘국가의 번영(The Wealth of Nations)’, 즉 국부론을 세상에 선보였다. 그리고 7월 4일 미국은 독립혁명에 성공했다.

산업혁명과 민주주의 사상의 발상지

스미스와 기번은 유럽 여행을 하면서 런던의 ‘더 클럽’이나 파리의 ‘살롱’에서 만나 포도주를 마시며 “인류가 빈곤과 전제 정치에서 벗어나 풍요와 자유로 나아갈 방안”을 고민한 진정한 도반(道伴)이었다. 이들은 또 프랑스에서 루소, 벤저민 프랭클린 등과도 지적 대화도 나누었다. 와트와 스미스는 글래스고대학에서 함께 근무하면서 지적 교류를 했다. 이들은 새로운 세계 방향을 제시했다.

스코틀랜드의 작은 마을 티프턴의 지역 신문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가 되었다”고 기사를 썼다. 와트의 동업자 매튜 볼턴은 지역 탄광 터널에서 많은 양의 물을 펌핑할 수 있는 장치를 가동했다. 3월 8일 스코틀랜드의 발명가 제임스 와트가 설계한 증기기관이 마침내 실용적인 용도에 활용되었다. 아담 스미스가 글래스고대학에서 와트의 실험을 도와주었다. 칼 마르크스 작가 뒤에 엥겔스, 즉 천사가 있듯이.

하루 뒤인 3월 9일 또 다른 혁명적인 작품이 런던에서 출간되었다. 와트의 친구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을 썼고 이를 윌리엄 스트라한 출판사가 출판했다. 국부론은 봉건시대를 끝내고 부유하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아주 새로운 사상을 담고 있었다. 당시 지배적이었던 중상주의와 봉건제도를 비판하고 새 경제질서를 제안했다. 봉건국가들은 ‘금과 은을 쌓는 것이 부’라고 믿었지만 스미스는 ‘국민 연간 노동으로 생산되는 총생산물(GNP)’이 진정한 국부로 정의했다.

스미스는 “핀 공장 사례로 작업 분업이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킨다”고 설명했다. 이는 산업혁명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또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하지만 ‘보이지 않은 손’에 이끌려 의도하지 않았던 목적을 달성한다”면서 사회전체 이익을 증진시킨다는 사상도 나왔다.

그는 “정육점 양조업자 제빵사가 자비심이 아닌 자신의 이익을 고려한다”고 저작에 썼다.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함으로서 더 효과적으로 사회의 이익을 증진시킬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나아가 유흥과 오락도 사람들의 근면함을 촉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스미스의 전기작가 게르하르트 스트레밍거는 “사람들의 의도보다 이익이 더 나은 생산성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항상 이성적으로 자기 이익을 위해 행동하지 않더라도 일반적 이익을 촉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스미스는 또 분업을 통한 전문성을 강조했다. 나아가 관세에 의해 가능한 한 적은 영향을 받는 자유무역을 주창했다. 특히 정부는 시장에 불필요한 간섭을 하지 말아야 하고, 국방 사법 치안 등 최소한의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미스는 세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먼저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로 이후 리카도 마르크스 케인스 등 경제학자들은 그의 이론 위에서 자신의 사상을 펼쳤다. 나아가 보호무역을 비판하고 제조업 부흥과 자유무역의 이점을 강조해 인류가 가난을 극복하고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앞서 2월 17일 또 다른 세계적인 작품이 출간되었다. 스코틀란드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이 저술한 ‘로마제국의 쇠퇴와 몰락’이라는 강력한 제목의 책 한권이 세상에 나왔다. 기번은 편협한 기독교의 부상을 로마 제국의 종말과 번영의 상실의 핵심원인으로 간주했다. 그 또 인구소멸, 과도한 정부·세금과 경제기반의 붕괴가 제국 몰락의 요인으로 분석했다. 초저출산의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경고다.

친구인 스미스는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당대 유럽 최고의 저작”이라 극찬했다. 기번은 또 스미스의 ‘국부론’을 “자유무역은 국가번영의 열쇠를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국부생성과 제국쇠망이라는 한 쌍의 문제의식이 두 천재를 통해 연결되었다. 또 스미스는 “사람들의 자유 이성 행복에 반대하는 가장 끔찍한 협회”가 로마교회라고 비판하면서 기번과 같이 계몽주의와 과학을 강조했다.

특히 스미스는 당시 신흥국인 미국이 “지구상에서 가장 크고 강력한 국가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놀라울 정도의 선견지명이었다. 그는 “앵글로색슨 세계의 초점이 대서양의 반대편으로 바뀔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구증가를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또 영국에게 ‘식민지 권리를 포기하고, 해로운 무역 장벽으로 발전을 막지 말 것’을 권고했다.

천부인권 사상 담은 미국 독립선언문

몇달 후 7월 4일 와트 스미스 기번 세 사람의 위대한 업적을 뛰어 넘는 역사적인 대사건이 신대륙 필라델피아에서 일어났다. 펜실베이니아주 ‘인디펜던스 홀’ 주의사당에서 미국 독립선언문이 최종 승인되었다. 인류사의 거대한 전환점으로 영국 왕관을 물리치고 보편적 인간 자유의 권리를 전파한 텍스트가 나온 것이다. 토마스 제퍼슨 대통령이 초고를 작성한 이 문서는 현대 서구 민주주의의 시작이었다.

서문인 첫번째 문장은 담대함을 보여주었다. “모든 인간들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창조주로부터 생명 자유 행복 추구라는 양도할 수 없는 특정 권리를 부여 받았다.”

천부인권 사상을 담고 있다. 이어 국가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주권재민 사상과 영국 왕을 27 가지 폭정을 열거 고발하면서 국가독립을 선언한 것이다.

일각에서 250년 전 새로운 세상을 열어간 이러한 주요 사건들이 서로 독립적으로 일어났다고 보았다. 하지만 세 천재의 업적과 미국 독립과 실제적으로 지적 역사적 연관 관계를 설명하는 학자도 있다.

오스트리아 철학자이자 스미스의 전기작가 스트레밍거는 “제퍼슨이 독립선언에서 ‘생명 자유 행복추구권’을 도입했을 때, 스코틀랜드 계몽주의가 보이지 않게 그를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미국 독립선언문 초안을 수정 보완한 벤저민 프랭클린은 국부론을 출간한 스코틀랜드 출판사 스트라한의 개인 친구였다. 또 제퍼슨 대통령은 이전에 파리 주재 대사로 프랑스·영국 지식인들과 교류했다.

계몽주의 사상은 프랑스혁명보다 13년 앞선 미국 독립선언문에 녹여져 있었다. 미국 독립선언문은 스코틀랜드 두 사상가의 저술과 유사한 지적 기반을 두었다는 지적이다. 새로운 정치경제적 사상과 과학기술적·물적 혁신이 맞물려 돌아갈 때, 권위주의와 보호주의가 판을 칠 때 새로운 혁명과 번영이 일어났다.

미국 독립혁명 당시 돈 문제가 트리거 역할을 담당했다. 1976년 1월 미국 독립 불씨에 기름을 부은 결정적인 저작물 토머스 페인의 ‘상식’에 “대표 없는 곳에 과세도 없다”는 슬로건이 나왔다. 차 등에 대한 영국 관세는 자유무역을 위한 봉기로 연결되었다.

미국의 시작 '자유무역' 무너뜨린 트럼프

미국의 시작은 자유무역을 위한 봉기에서 출발했으나 아이러니하게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폭탄을 퍼붓고 있다.

와트의 발명 이후 250년 동안 세차례 산업혁명이 있었지만, 스미스가 기대한 자유무역과 상호협력이 영원한 평화로 이어지지 않고 전체주의, 전쟁과 침공, 불평등과 포퓰리즘이 심화되고 있다. 국가번영과 쇠망, 개인 자유와 자유무역이 화두인 두 고전을 뛰어넘어 새문명을 창조할 새 명작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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