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창현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신토불이 극복하는게 국제사법"

2022-07-06 14:37:54 게재

기존에는 추상적 원칙만 … 투자유치에 긍정적

국제사법 전면 개정을 놓고 법무법인 태평양 이창현 변호사(사법연수원 31기, 사진) 변호사는 "신토불이를 고집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글로벌화된 시대에 한국 법원, 한국 법률에만 의존할 경우 국내 기업이나 개인이 해외 기업 및 개인과 법률 분쟁이 발생했을 때 경쟁력이 저하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는 "국제사법의 관할과 준거법 문제는 법적 분쟁이 발생했을 때 큰 그림으로서의 전략을 어떻게 수립하느냐의 문제"라면서 "분쟁이 발생할 경우 어느나라 법원에서 소송을 할지(관할), 어느나라 법률로 분쟁을 할지(적용 법률, 준거법)에 따라 승소 확률, 소송 비용, 시간, 집행 가능성, 절차 등이 달라지는데 한국 기업들이 이러한 전략적 사고가 미국, 영국 등에 비해 인식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고려대를 졸업한 뒤 서울중앙지방법원과 서울남부지법, 창원지법 등을 거쳐 부산지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지난해 태평양에 합류한 국제거래 전문가다. 판사로 재직 중에는 고대 법무대학원에서 국제거래법학과 석사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국제거래법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제거래 전담부에서도 재판을 맡았고, 대법원 국제규범연구태스크포스(TF)와 UN 국제무역상거래위원회에 참여하고, 영국 런던정경대학에서 국제상거래법
(International Business Law)을 공부하기도 했다. 국제사법은 기업은 물론 일반 변호사나 판사들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 이 변호사에게 국제사법 전면개정에 대한 의의와 앞으로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이번 개정안의 가장 주목할 점은

기존 국제사법에서 관할에 관한 조항은 1개였는데 굉장히 추상적인 원칙만 선언한 상태였다. 이번에 35개 조항을 추가하면서 새로 법률을 만든 수준이다.

종전에는 '한국과 실질적 관련성이 있는 경우'에만 한국법원의 관할권이 인정된다는 원칙뿐이었다. 결국 법원의 재량과 판단에 너무 많이 의존했지만 소송당사자로서는 예측 가능성이 떨어졌다. 또한 대개 각국 법률은 자국의 관할을 넓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다보니 과잉관할이라는 비판도 이어졌다. 이러한 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견해들이 많았지만 입법이 무산되다가 이제서야 시행된다.

종전에는 외국에서 벌어지는 분쟁인데도 한국에 영업소가 있다면 한국에 관할권이 있다고 봤다. 이게 과잉관할의 예이다. 하지만 새로운 법 시행으로 영업소와 관련이 있는 분쟁에 대해서만 한국 관할을 인정했다. 과잉관할로 비판받는 것들을 구체화시켜 줄였다.

국수주의 경향이 강한 나라들은 과잉관할 많이 한다. 장기적으로는 좋지 않다. 국내기업은 물론 한국에서 활동하는 외국기업에게도 예측 가능성이 제고되는 것이 좋다. 이는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으로 향후 투자유치 등에서 긍정적이다.

■특이한 국제사법 소송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나

국내 기업간 기술분쟁임에도 미국에서 소송이 이뤄졌다. 한국기업이 미국에서 소송을 하면 돈과 시간이 엄청나게 많이 든다.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고 좋은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왜 미국에서 소송이 이뤄졌냐면 해당국가의 법률 때문이다. 미국은 모든 증거를 공개해야 하는 디스커버리 제도가 있다. 이러한 것을 모두 고려해 소송 전략을 수립한다. 어디에 소송을 제기하고 어떤 법을 적용받는지, 그에 대한 중요성을 기업들이 잘 인식해야 한다. 국내기업들이 글로벌기업으로 발돋움한 상태라 소송 결과가 국내에만 한정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국내기업간의 분쟁이 해외에서 이루어지기도 하고 외국기업과의 분쟁이 국내에서 이뤄지기도 한다.

■계약단계에서 관할 법원을 명시하기도 하는데

맞다. 최근 기업들은 어느 법원에서, 어느 법을 적용해 분쟁해결 할지에 관한 조항을 대부분 삽입한다. 하지만 계약서대로 모든 게 이뤄지지 않는다. 바게닝파워 즉, 갑을 관계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영국기업이 영국법원에서 해결하자고 계약서에 집어 넣으면 한국기업의 을은 '큰 일이 생기겠어'라며 도장을 찍는다. 간혹 '울며 겨자먹기'로 계약서에 사인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분쟁이 발생할 경우 현지 법원에서 소송이 이뤄지면 지극히 불리해진다. 이럴 경우 관할합의 등의 효력을 다투면서 한국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기도 한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지만 한국법원에서 관할이 인정되기도 한다.

실제 소송에서는 본안실체 다툼에 앞서서 관할이나 준거법 다투는 본안전 항변이 많이 다투어진다. 한쪽이 유리하면 한쪽이 불리하기 때문에. 상대방은 여기 관할이 없다거나 이런 걸 다투기도 한다.

■기업 계약 외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예를 들어 노동사건이 있다. 한국은 주당 52시간 규정을 두고 있는데, 한국 회사에서 외국에 파견 나가있는 직원들, 한국 회사가 해외에 제3국 노동자를 고용했을 경우 등 노동사건에도 관련이 있다. 어느나라 법을 적용하는지가 문제될 수 있다. 이외에 상속이나 이혼 등 가사사건 등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다른 국가에서 소송이 진행중이라면

우선주의를 살펴봐야 한다. 주로 대륙법계에서는 소송이 먼저 제기된 나라가 관할권을 가지도록 한다. 그런데 악용하는 경우도 있다. 예컨데 소송속도가 느리기로 유명한 데가 이태리다. 자신이 피소될 것을 우려한 기업이 이태리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다. 그럼 피해자쪽에서는 다른 국가의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고 이태리 법원 판결을 무작정 기다려야만 한다. 국제사법을 악용하는 전략으로 흔히 '어뢰소송'이라고 한다.

이번에 개정한 국제사법에는 이러한 악용을 막기 위한 장치들이 있다. 관할권 악용사례도 막고, 한국법원에 관할이 인정되더라도, 국제적 형평·타당성을 따져 관할권 행사를 자제할 수 있다. 예컨대 한국법원에 관할권은 있지만 당사자나 사건과의 관련성이 외국에 더 많은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해당국가 법원에서 소송하는게 맞다고 판단하는 경우다.

■외국 기업과 소송을 많이 하는 한국 기업들이 주목해야 할 조항은

지식재산권 관련 조항, 영업소 관할 조항이 중요하다. 이외에 11, 12, 41조 등에 주목해야 한다.

■국가간 서로 관할을 주장할 경우 해결책이 있는가

현실적으로 관할이라는 것이 예측 가능성과 구체적 가능성 두가지 큰 이면이 있는데, 관할을 정하는데 있어서는 예측 가능성과 구체적 타당성이라는 두 가지 큰 이념이 있는데 양자를 어떻게 조화시키는가가 중요하다. 실제로 그렇다 보니 많이 법리가 발전돼 있지 않으면 관할을 악용하는 사례를 막기 어렵다.

예를 들어 A국에서는 관할이 있다고 하고, B국에서는 A국에서의 소송금지를 명령하기도 한다. 전쟁과 같은 양상이 펼쳐지기도 한다. 최근 독일-미국, 프랑스-미국, 중국-독일 이렇게 소송전이 벌어진 적이 있다. 어려운 문제다. 심지어 영국이나 미국 법원으로부터 소송금지 명령을 위반 시 벌금 또는 우리로 치면 일종의 감치재판까지 당할 수 있다. 법원을 모독했다는 이유에서다. 현재로서는 딱히 답이 없고, 어느 선에서 서로 타협하기도 한다.

일례로 한국의 유명 기업이 중국 기업으로부터 소송을 당해 패했다. 승소한 중국 기업이 미국에서 한국 기업을 상대로 강제집행을 하려고 했고, 한국 기업은 미국법원에 집행금지 명령을 신청했다. 미국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주면서 중국 기업이 집행을 하지 못하고 합의로 끝난 적이 있다.

■국제사법 개정과 관련해 한국 기업들의 움직임은 어떠한가

한국기업들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종전에는 한국법원에 관할이 인정되는지 여부가 불확실하여 소제기를 주저하다가 지금은 적극적으로 나서는 기업도 있다. 최근에도 해외에서 지식재산권 침해를 당한 기업이 한국에서 소송이 가능한지 여부를 물어오기도 했다. 국제사법이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함에 따라 피해를 입었던 기업들이 예전보다 적극적으로 피해에 대응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으로 해석된다.

오승완 안성열 기자 osw@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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