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진단
반도체학과만으로는 부족하다
교육부의 첫번째 의무는 '산업인재 공급'이라는 새로운 정의와 함께 반도체학과 설립에 대한 논의가 넘쳐난다. 산업계는 연간 3000여명의 반도체 전문인력이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이대로 가면 수년 내에 3만여명의 반도체 인력이 부족해 우리나라의 산업발전을 심각하게 저해할 것이라는 암울한 예언까지 나온다.
이에 맞춰 교육부는 반도체 관련 학과 신설과 입학정원 확대를 한시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중이고, 거기에 맞춰 대학들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수도권 대학들은 그동안 강하게 묶여 있던 입학정원을 늘릴 절호의 기회라며 반색하고, 지역 대학들은 반도체 인력만큼은 지역에서 키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대학 알리미 서비스를 통해 제공되는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대학에 반도체라는 이름이 포함된 학과는 30여개나 된다. 그리고 이들 학과의 입학정원을 합하면 거의 1400명에 달한다. 대략만 따져도 연간 1000여명이 넘는 청년들이 반도체 전공으로 배출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반도체 전공 학과들 중 일부는 계약학과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계약학과에 입학한 학생들은 일정 수준 이상의 졸업요건만 갖추면 채용이 보장된다. 당연히 대학 안에서는 인기 있는 학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삼성전자는 성균관대 연세대 포항공대 카이스트에 각각 반도체 관련 계약학과를 운영중이다. SK하이닉스는 고려대와 서강대 한양대에 계약학과를 두고 있다. 이렇게 두 기업과 함께 운영하는 계약학과 신입생수만해도 360여명에 달한다.
앞서 언급한 1400여명의 대학 졸업자 외에 반도체 관련 전문인력을 키우는 연합전공과 대학원까지 합치면 연간 배출되는 반도체 전공인력은 줄잡아 2000여명 정도가 된다. 여기에 새롭게 반도체 인력양성에 뛰어드는 학교들도 생기고 있다. 경북대는 연간 400여명이 넘는 반도체 전문가를 키워 낼 수 있는 반도체 전문대학원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 전국의 대학들이 계획하는 반도체 전공 정원을 모두 합치면 연간 3000여명의 반도체 전공 인력이 배출될 날이 멀지 않았다.
반도체 인력, 수요 공급 차이가 나는 이유
그런데 반도체 생산공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반도체공학 전공자 외에 다양한 분야의 전공자가 필요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전기 전자 컴퓨터공학은 물론, 화학 신소재공학 광학 물리학 전공자도 필요하다. 따라서 어디까지가 반도체 관련 전공인지를 정의하는 것 자체가 모호하다. 만약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개별 공정에 관련된 전공을 모두 합쳐 반도체산업으로 유입될 수 있는 총 대학 졸업자수를 산출하면 대략 2만명을 훌쩍 넘어 갈 것이다.
이를 반도체기업들의 연간 채용규모에 비교해보면 대학에서 배출되는 인력의 절대수가 결코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어쩌면 산업계가 주장하는 연간 3000여명의 반도체 인력 부족은 단순한 졸업생수의 부족이 아닐 수 있다. 그럼 왜 부족하다는 것일까?
우선 반도체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력과 대학이 배출하는 인력이 서로 맞지 않을 수 있다. 기업은 반도체산업의 전반과 미래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슈퍼 박사급 전문가도 필요하지만, 특정 영역에 집중된 지식을 가진 전문가, 특정 생산공정만 책임지는 엔지니어, 반도체 생산 장비의 안정적 운영을 맡아 줄 기술자도 필요로 한다.
한마디로 기업에는 다양한 영역에서 일 할 다양한 수준의 인력이 골고루 필요하다. 반면 대학에서 배출하는 반도체 전문 인력은 비슷한 커리큘럼에 비슷한 수준의 교과목을 통해 길러진다. 그러니 대학에서 배출하는 반도체 관련 학과 졸업생 총수는 충분해도 세부분야별로 기업이 원하는 수요를 다 맞추기는 힘들 것이다.
더 나아가 기업 입장에서 고용이 시급한 일자리수와 취업을 하고자 하는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수가 다른 것도 고려해야 한다. 청년들이 선호하는 직업의 형태와 직장의 위치, 그리고 원하는 연봉을 기업들이 모두 만족시켜 줄 수 없다는 점도 수급불균형의 원인이 된다.
따라서 이러한 미스매치의 해결이 선행되지 않는 한 아무리 반도체 관련 전공자를 늘려도 기업에는 항상 일할 사람이 부족할 것이고, 청년들은 늘 일자리가 부족할 것이다.
현재의 반도체기술 한계 봉착할 수도
우리나라가 먹고살기 위해 반도체산업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예전에는 수학부터 배우고, 물리학 화학을 공부하고, 그 다음 전기회로를배우면서 반도체 전문가로 커나갔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업계에서 당장 써먹을 수 있는 반도체 전문지식까지 습득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요구된다. 따라서 산업현장과 현실세계에 딱 들어맞는 맞춤형 교육이 필요하고, 그래서 공과대학에 반도체 생산기술에 특화된 반도체학과가 생기는 것은 반길 일이다. 수요에 맞게 입학정원 확대도 필요하다. 또 수도권과 지역 대학이 함께 골고루 인재들을 양성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정책도 마련돼야 할 것이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기술은 계속 진화할 수도 있지만 때론 한계에 부딪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산업도 거기에 맞춰 변화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산업은 진화하는 생물과도 같고, 기술에 따라 관련 산업들의 흥망성쇠가 잇따른다.
나노기술이 떠오르니 나노기술학과가, 빅데이터가 중요해지니 빅데이터학과가, 그리고 인공지능이 각광을 받으니 인공지능학과가 곳곳에 설립되었다. 이들 모두 해당 전공인력이 부족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대학들은 앞다퉈 학과를 만들거나 학과 이름을 바꾸고 새로운 전공과정을 만들어왔다. 심지어는 대학교수의 전공마저도 시대에 따라 달라져야만 하는 웃지 못할 상황도 발생한다. 기계공학의 대가였던 교수가 어제는 빅데이터 인공지능 전문가로 탈바꿈하고, 오늘은 반도체 전문가로 변신하기도 한다.
지금 반도체업계의 최대의 화두는 단연 3나노 공정의 성공여부다. 어찌해서 성공한다고 치자. 그러나 그 다음의 1나노미터급 이하의 선폭을 갖는 반도체 생산은 원리적으로 불가능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나노미터 이하로 내려가면 원자레벨에서 벌어지는 양자역학적인 효과들로 더 이상 우리가 알고 있는 실리콘의 물성이 그대로 유지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현재의 반도체 구동전압을 그대로 유지한 채 계속 집적을 해나가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어쩌면 우리가 수십 년간 목도해 온 '무어의 법칙'이 깨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반도체기술의 발전이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의 반도체와 전혀 다른 새로운 물질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새로운 소재를 연구하는 곳이 바로 신소재공학과 화학과 물리학과다. 공과대학이 현실세계 산업에 초점을 맞춘 기술 개발과 직업교육에 방점을 둔다면, 자연과학대학 또는 이과대학은 기초과학 탐구와 현실과는 동떨어졌더라도 먼 미래에 사용할 원천기술 연구에 방점을 두고 있다고 보면 된다.
대학은 현재와 미래 함께 준비해야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공학이란 한쪽 날개만으로도 잘 날아오를 수 있었던 것은 기초과학 분야 지식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산업에 집중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도체를 국가의 명운이 달린 산업으로 인식하고 제대로 육성하고자 한다면 현재의 기술 한계를 뛰어넘을 준비도 함께 해야 한다. 그 길이 신물질에 기반한 반도체가 될지 아니면 전자공학을 넘어 빛을 이용한 포토닉스가 될지, 양자소재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대학을 직업교육의 장으로만 여겨져서는 안된다. 미래를 생각한다면 대학이 다시 학문의 전당으로서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