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청정에너지 원천, 물이 사라진다

2022-10-28 10:57:42 게재

미국 서부, 독일, 중국 등 역대급 폭염·가뭄 … 수력발전 가동률 크게 낮아져

중국 양쯔강을 막아선 싼샤댐은 영국의 대표 축구장 웸블리스타디움 7개를 가득 채울 수 있는 콘크리트와 미국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8개를 지을 수 있는 철근을 사용해 만들어졌다. 전세계 최대 규모 수력발전댐이다. 싼샤댐 수력발전 터빈으로 생산한 전력은 필리핀 전역에 전기를 공급할 만큼 대용량이다. 하지만 올해 여름 싼샤댐은 기괴할 정도로 조용했다고 한다.

블룸버그통신은 27일 "8월말 싼샤댐 상하 양쪽의 물소리는 고요했다. 발전터빈에서 콸콸 쏟아지는 거센 물줄기도, 댐 배수로 근처에서 올라오는 물안개도 없었다"고 전했다. 타는 듯한 날씨로 인한 상류의 지독한 가뭄으로 저수지 수위는 최저치로 낮아졌다. 싼샤댐의 발전용량도 극도로 저하됐다.
지난 8월 24일 중국 남서부 충칭을 지나는 양쯔강 지류 자링강이 가뭄으로 바닥을 드러냈다. 사진 AFP=연합뉴스


블룸버그는 "중국 싼샤댐의 물 걱정은 지구온난화로 악화되는 전세계 수력발전 위기를 상징한다"며 "미국 캘리포니아부터 독일, 중국에 이르기까지 역대급 폭염과 가뭄으로 저수지 수위가 크게 낮아졌다"고 전했다.

올해 1~9월 유럽의 수력발전량은 75테라와트시 감소했다. 이는 그리스의 연간 총소비전력보다 많은 양이다. 지난달 중국 전역의 수력발전량은 30% 감소했다. 미국은 9~10월 수력발전량이 6년래 최저치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동안 수력발전은 안정적인 동시에 즉각 전력생산이 가능한 녹색에너지원으로 인식됐다. 수력발전댐은 전세계 최대 청정에너지원이다. 하지만 빈도와 강도가 높아진 기상이변으로 수력발전의 기후변화 대처 효율성이 하락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에너지컨설팅 기업 우드맥킨지의 컨설턴트 시웬쉬엔은 "기상이변 주기는 전력시스템을 설계하는 데 있어 심각한 경고"라며 "한때 드문일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보다 자주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수력발전만큼 유연하고 광범하게 이용가능한 신재생에너지 대안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전세계적으로 수력발전은 원자력보다, 풍력·태양광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전력을 생산한다. 노르웨이와 브라질의 경우 수력발전댐이 총생산전력의 절반 이상을 생산한다. 전력망 사업자들은 수력발전을 공급조절이 가능한 원천으로 활용한다. 석탄이나 가스처럼 필요할 때 거의 즉시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물이 없을 땐 이야기가 달라진다.

S&P글로벌 커머디티인사이츠의 전력·신재생에너지 이사인 저우시저우는 "기후변화로 악화되는 가뭄 때문에 수력발전 저수지들의 이용가능성, 공급조절 가능성이 줄어들고 중국 서남부, 미국 서부와 같은 지역의 수력발전용량이 크게 낮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1200년만의 최악 가뭄

올해 미국 서부는 1200년만의 최악 가뭄을 맞았다. 바싹 마른 저수지 때문에 캘리포니아주에 대한 전력공급이 예년의 절반에 그쳤다. 주 전역의 도시들이 돌아가면서 단전조치를 시행하는 방안을 고려할 정도였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올해 9월 미국 전역의 수력발전량은 17.06테라와트시로 줄었다. 2016년 9월 이래 가장 낮은 수치다. 10월엔 이보다 더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기후변화 싱크탱크 엠버에 따르면 유럽의 9월 수력발전량은 2015년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때문에 발전기업들은 석탄과 가스에 더 의존하게 됐다. 우크라이나사태로 촉발된 공급망 충격으로 유럽대륙이 겨울철 전력난을 피하기 위해 아껴둔 에너지 재고를 쓸 수밖에 없었다.

브라질의 경우 총전력생산량의 60% 이상을 수력발전이 차지한다. 지난해 가뭄으로 브라질은 전력배급제 위기에 몰렸다. 전력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이웃하는 우르과이와 아르헨티나에서 전기를 수입하거나 값비싼 화석연료를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

수력발전댐 운영기업들은 수자원과 관련해 상호충돌하는 이해관계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대규모 댐은 농가에는 관개용수를, 도시민들에겐 상수를 공급한다. 또 선박운항을 위한 수로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싼샤댐의 주요 목적은 주기적으로 마을과 농지를 휩쓰는 양쯔강의 연례적인 범람을 통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올해 여름 극심한 가뭄으로 강으로 흘러드는 수량이 줄어들자 싼샤댐은 중국 중부 최대 도시 충칭시로 향하는 선박수로를 유지하기 위해 물을 담아둘 수밖에 없었다.

세계 최대 인공호수인 미국 미드호는 콜로라도강에 후버댐을 건설하면서 생겼다. 라스베이거스 지역 급수의 90%를 담당하고 LA와 같은 도시들에 상수를, 수십만에이커의 농지에 관개용수를 제공한다. 올 여름 미드호 수위가 너무 낮아져 강바닥에서 변사자의 뼈들이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중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댐을 보유하고 있다. 독일 국토 규모와 비슷한 쓰촨성에 60년래 최악의 가뭄이 닥쳤다. 폭염으로 에어컨 수요가 치솟던 8월, 쓰촨성 수력발전량은 50% 줄었다. 쓰촨성 당국은 거의 2주 동안 성내 공장들 상당수에 공급하던 전력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애플과 테슬라를 포함한 각종 제조기업들이 타격을 입었다.

글로벌 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의 애널리스트 리쇼우는 "폭염과 같은 기상이변이 발생하면 두가지 상황이 동시에 발생한다. 전력공급이 줄어드는 동시에 전력수요가 늘어난다. 이는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말했다.

8월 말 쓰촨성 가뭄이 끝난 뒤에도 파급력은 지속되고 있다. 이웃하는 윈난성은 현재 전기를 아끼기 위해 알루미늄 용광로의 가동시간을 줄이고 있다. 더 건조한 겨울철이 오기 전 저수지에 물을 채워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홍콩 소재 에너지컨설팅기업 란타우그룹의 애널리스트 데이비드 피쉬먼은 "올해와 같은 심각한 가뭄이 자주 일어난다면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며 "저수지에 물을 채워 수력발전을 재개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크게 늘어난다"고 말했다.

수력발전의 약점 보완

기상이변으로 수력발전의 안정성이 위협 받는 상황에서 각국은 여러가지 대안을 모색할 수 있다. 원자력이나 배터리저장 기술에 투자할 수 있다. 저수지 수면에 부유식 태양전지판을 설치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해가 떴을 때 전력을 생산하는 동시에 저수지 물의 증발 속도를 둔화시킬 수 있다. 국제수력발전협회 에너지정책 이사 시에레이는 "수력발전을 태양광과 결합시키면 효과가 좋다"며 "중국정부는 수력발전의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 그같은 전략을 채택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상이변은 모든 청정에너지 원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산불 연기와 먼지폭풍은 태양광 패널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겨울철 기온하락은 풍력발전 터빈을 얼어붙게 한다. 유럽의 가뭄으로 냉각을 위해 강물에 의존하는 원자력발전의 전력생산량이 감소했다.

지구 온난화로 수력발전 댐의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많은 국가들 내에서 수력발전 신규 건설사업에 대한 저항이 커지고 있다. 댐은 종종 생태계 교란의 주범으로 지목된다. 습지를 없애고 수생동식물의 멸종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거대한 댐이 들어서 저수지가 생기면 주변 사람들은 살던 곳을 떠나야 한다. 싼샤댐의 경우 130만명 이상이 고향을 떠났다.

블룸버그는 "이같은 상황은 장기적으로 수력발전이 청정에너지로서 주도적인 역할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전했다. 에너지전문 시장조사기관 블룸버그NEF에 따르면 현재부터 2050년까지 글로벌 수력발전 용량은 18% 증가하는 반면 태양광은 8배 이상, 풍력은 3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수력발전 향후 활로는 한때 틈새시장으로 여겼던 양수발전으로의 전환일 수 있다. 수력발전 전력생산이 과잉일 때 하류에 있는 물을 상류로 끌어올려 저수지의 수위를 높인 뒤, 전력수요가 치솟을 때 물을 내려보내 필요전력을 얻는 방식이다. 이 기술은 간헐적으로 전력을 생산하는 풍력, 태양광과 짝을 이뤄 24시간 내내 탄소제로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중국은 2025년까지 270기가와트 용량의 양수발전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같은 기간 전통의 수력발전 증설용량은 60기가와트에 그친다.

국제수력발전협회는 "양수발전은 선순환 구조로 운영되기에 가뭄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린피스의 리쇼우는 "수력발전업계의 고군분투는 화석연료를 대체하려는 신재생에너지 네트워크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게 매우 어려운 과제임을 시사한다. 특히 1인당 전력소비량이 크게 늘어나는 개발도상국의 경우 더욱 벅찬 과제"라며 "동시에 극심한 기상이변은 지구온도 상승을 낮추기 위한 노력을 더욱 가속화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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