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으로 나무 잘라 산소용접기로 모닥불”

2022-11-05 20:22:45 게재

봉화 아연광산 광부 2명 221시간 만에 생환

물 10ℓ 나눠 마시고 믹스커피 30개로 연명

“동료가 살아 돌아왔다” - 매몰 221시간 만인 지난 4일 오후 11시쯤 광부 2명이 살아있다는 소식에 구조에 나섰던 동료들이 얼싸안고 기쁨을 나누고 있다. 사진 경북소방본부 제공


경북 봉화군 광산 매몰사고로 고립됐던 노동자 조장 박 모(62)씨와 보조작업자 박 모(56)씨가 기적처럼 살아 돌아왔다.

윤영돈 경북 봉화소방서장은 5일 오전 언론브리핑에서 “4일 오후 11시 3분쯤 매몰됐던 노동자 2명이 비교적 건강한 상태로 구조됐다”며 “안동병원으로 이송해 치료 중”이라고 밝혔다.

윤 서장에 따르면 이들이 구조된 장소는 사고 발생 장소로부터 약 30m 떨어진 원형 공간이었다. 갱도들이 모이는 인터체인지 형태의 둥근 공간이다. 매몰 노동자들은 진입로 쪽에서 토사가 밀려들자 이곳으로 대피했다.

두 노동자의 구조는 매몰사고 발생 후 221시간 만이고 광산업체가 늑장 신고했을 때로부터는 8일 14시간 29분 만이다. 광산업체는 지난달 27일 오전 8시 34분 신고했다.

이들 두 광산 노동자는 지난달 26일 오후 6시쯤 경북 봉화군 소천면의 성안엠엔피코리아 소유 아연채굴광산 지하 46m 지점 갱도에서 작업 중 토사붕괴로 고립됐다. 당시 작업 노동자는 7명이었는데, 2명은 자력으로 대피했고 3명은 업체에 의해 구조됐다. 매몰된 2명은 지하 190m 갱도에서 작업 중이었다.

구조된 두 노동자는 구조대원의 부축을 받았으나 수직갱도에서 걸어 나올 수 있을 정도로 건강상태가 양호했다. 조장 박씨는 제2수직갱도 앞 컨테이너 휴게실에서 아내와 아들 등 가족들과 만나 “며칠 안 된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있느냐”고 말하는 등 의식상태도 좋았다. 조장 박 모(62)씨의 장남 박근형(42)씨는 5일 내일신문과 통화에서 “아버지께서 오랜 시간동안 캄캄한 곳에 갇혀있어 시간 감각이 조금 없었지만 건강상태는 양호했다”고 말했다. 박근형씨는 지난 2일 사고현장에서 내일신문과 만나 “아버지는 20년 이상 광부생활을 했고 광산 내부사정을 잘 알고 있는데다 평소 성격도 꼼꼼하고 건강해 무사히 잘 대피해 계실 것”이라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실제 매몰된 노동자들은 오랜 경험을 살려 차분히 대처한 덕분에 캄캄한 지하 190m 갱도에서 9일을 버텨냈다. 박근형씨를 통해 전해들은 갱도 안에서의 생존 과정은 말 그대로 극적이었다.

구조당국에 따르면 지하갱도의 평균 온도는 영상 13~15℃ 정도로 건강한 사람도 정상적인 체온을 유지하기 힘든 곳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매몰된 노동자들은 대피공간에 있던 톱으로 나무를 잘라 산소용접기로 불을 붙여 모닥불을 피워 체온을 유지했다. 또 어깨를 맞대어 체온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사고발생 후 3일 동안 가지고 들어간 10ℓ 정도의 생수를 동료 작업자와 나눠 마셨고, 믹스커피 30봉은 끓여서 조금씩 나눠 먹었다. 생수가 떨어진 후에는 갱도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아 마셨다

이들은 또 괭이로 탈출구를 직접 파기도 하고, 사다리를 이용해 수직갱도 쪽으로 탈출을 시도하는 등 생존을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갱도가 모두 폐석으로 꽉 차 있어 자력 탈출은 실패했다.

한편 이들의 치료를 맡은 방종효 안동병원 신장내과 과장은 “두 사람 모두 정신적, 육체적으로 회복 속도가 굉장히 빠르고 5일 점심부터는 소량의 죽도 먹었다”며 “며칠 내로 퇴원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세호 기자 seh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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