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보험 들었더니 "나몰라라"
2022-11-30 11:15:13 게재
국내 중견기업 외국 유명보험사와 7년째 분쟁
30일 관련업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일진제강 미국 법인이 다국적보험사인 율러 허미스(Euller Hermes)를 상대로 6년 넘게 소송을 하고 있다.
발단은 2015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진제강은 미국 텍사스 주에 있는 석유 및 가스 탐사&개발 기업 3곳에 유정용 강관을 판매했다. 일진은 해당 업체들이 제품 가격을 지불하지 못할 것을 대비해 현지 보험사를 통해 40만달러를 지불하고 상업신용보험(Business Credit Insurance)에 가입했다. 상업신용보험은 주로 기업들이 물건을 외상 거래한 뒤 부실 발생 등을 이유로 손실이 발생해 지급 불능이나 불이행 등의 사고가 발생하면 보험사가 대신 지급하고, 해당 업체(채무자)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것을 말한다. 한국에서는 외상매출채권보험이나 보증보험이 익숙한 개념이다.
율러 허미스는 알리안츠 계열의 보험사로 세계 최대 규모의 무역신용보험사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유가 하락 등 문제가 발생하면서 시작됐다. 납품한 지 1년여가 지나지 않아 관련 기업의 재정적 문제가 발생했다. 당시 일진의 미수금은 2727만달러에 달하자 보험금 지급을 요구했다. 하지만 율러 허비스는 보험금 지급청구 접수 자체를 거부하는 등 현재까지 일진측이 주장하는 보험금 지급을 하지 않고 있다. 일진은 보험사고가 발생한 만큼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율러 허미스는 약관 해석상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고, 물건을 사간 기업들이 파산 등으로 지급불능인 경우가 아니라면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결국 2016년 6월 일진은 미국 텍사스주의 헤리스 카운티 지방법원에 율러 허미스와 보험판매인을 상대로 미지급 보험금과 손해배상 등 630만달러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일진은 율러 허미스가 계약을 위반했을 뿐 아니라 보험 판매인이 불완전 판매를 하는 등 텍사스주의 보험법도 위반해 손해와 소송비용 등을 요구했다. 손해보다 청구액이 줄어든 것은 일진의 자체적인 노력 덕분이다. 일진은 현지에서 매출채권 회수에 직접 나섰지만 아직까지 미수금 470만달러가 남아 있다.
일진측 변호사는 "자신들이 약관을 해석해 파산인 경우에만 지급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 거래처 3곳 중 1곳이 파산했는데 율러 허미스는 파산업체에 해당하는 보험금마저 지급하지 않고 있다"며 "스스로 논리 모순에 빠져 있는데 그동안 화해나 법원의 조정과정에서 이견차가 좁혀지지 않는 등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일진 관계자는 "약관상 지급해야 할 보험금이 맞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지급을 거부한다면 보험을 가입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율러 스미스 한국지사인 율러 스미스 코리아 관계자는 "본사 등에 문의해 상황을 파악 중"이라고 말했다.
법무법인 바른의 송태섭 변호사는 "영미계의 보험제도는 한국과 크게 달라 보험사의 면책조항이 과도하게 많은 게 특징"이라며 "면책조항의 해석을 놓고 가입자와 판매사가 다른 해석을 내놔 분쟁으로 이어지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보험사 보험 계약 전 법률 자문을 거치는 등 위험을 예방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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