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원 교수의 전공 파격 | 농기계공학도의 ‘불운 로드’ 인공지능·자율주행에 닿다
2023-04-20 18:09:28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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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공학도가 제어계측을 배운 이유는?
어릴 때부터 항공기를 좋아했습니다. 모형 항공기 경진대회에도 계속 참가했죠. 항공 관련 학과 진학을 꿈꿨지만, 원하는 대학의 학과에 진학하지 못하고 농업기계학과에 입학했습니다. 대학 1학년 때 우연히 서울대에서 마이크로 마우스(미로에서 출구를 찾아가는 일종의 로봇 쥐) 경진대회를 구경했습니다. 미로를 빠르게 주행하는 마이크로 마우스를 처음 보고, 가슴이 엄청 두근거렸습니다. 당시 기계공학 관련 학과에 진학했지만, 실제 무엇을 배우는지는 잘 몰랐어요. 제가 고등학교를 다닌 80년대엔 진로 체험이 거의 없었거든요. 장난감 같은 것을 만들고 부수는 것이 좋아 기계공학과에 온 학생들이 대부분이었을 겁니다. 다양한 세부 전공을 전혀 몰랐고 알 기회도 없었죠. 그러다 마이크로 마우스를 본 순간 ‘로봇을 만들어야겠다’는 진로를 정했습니다. 당시 마이크로 마우스는 제어계측학과나 컴퓨터공학과에서 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전공 외에 타 학과의 전기전자, 프로그래밍 관련 수업까지 수강했죠. 돌이켜보니 요즘 강조하는 융합 교육을 스스로 한 셈이네요. 당시 독특했던 수강 이력은 제게 아주 큰 선물을 주었습니다. 기계공학과 제어계측을 함께할 수 있다는 점은 저만의 경쟁력이 됐거든요. 기계 동작을 가능케 하면서 지능까지 넣을 수 있는 만큼,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할 수 있는 바탕이 되어줬고요. 대학 졸업 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정밀공학과에서 석사 과정을 시작했습니다. 로보틱스 쪽으로 계속 연구하고 싶었는데, 아뿔싸! 세부 전공을 정하는 사다리 타기에서 1지망은 탈락했죠. 결국 자동화 장치의 대가인 조형석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신경회로망을 배웠습니다. 당시엔 오픈소스가 없어 관련 논문을 읽고 프로그래밍으로 일일이 구현해 실험을 하며 어렵게 공부해야 했죠. 다행히 대학 때 익힌 프로그래밍 실력이 신경회로망의 빠른 구현에 도움이 됐고, 결국 ‘파이프 용접 공정에서 카메라로 획득한 영상 속 용접 상태를 인공지능을 이용해 판별’하는 연구로 학위를 받았습니다. 1991년에 인공지능을 산업에 활용한 셈입니다.‘데모 귀신’, 실패에서 완벽을 배우다
박사 과정에서는 더 다양한 경험을 했습니다. 삼성전자와 함께 PCB 납땜 검사 장비를 개발했죠. 전자기판 제품을 영상으로 촬영, 납땜이 제대로 됐는지 확인하는 장비였죠. 선행 연구를 한 선배들이 있었음에도 운전을 할 줄 안다는 이유로 연구팀 비전(Vision)에 발탁됐습니다. 카메라 영상으로 물체의 좌표를 알아내는 일을 담당했죠. 당시 영상물 처리는 매우 고가였는데, 이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병렬 처리 컴퓨터를 기업의 지원을 받아 확보해 전용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이때 익힌 영상처리 기술은 향후 로봇과 자율주행 기술에 있어 제 강력한 무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국산 엑스레이 검사 장비를 개발, 기업의 신제품 개발에 공헌한 연구개발자에게 주는 장영실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로봇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어 선배들의 로봇 실험을 도우며 관련 기술도 익혔습니다. 그러다 1996년 KAIST에서 처음으로 로봇 축구 대회를 열면서, 드디어 로봇팀에 합류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제가 속한 팀 ‘쌘돌이(날쌘돌이)’가 처음으로 해외팀과의 대결에서 승리해 언론의 주목도 받았죠. 덕분에 한국원자력연구소와 함께 원자로 탐사용 수중 로봇을 개발하게 됐습니다. 원자로 해체 시 방사선 오염도를 측정하는 로봇으로, 수밀폐, 방사선 차폐 그리고 로봇의 자세 제어 기술 확보가 핵심이었죠. 시범 로봇 촬영을 위한 수중 카메라까지 직접 만들었기에 자신하며 샘플 로봇을 원자로에 넣었어요. 한데 수심 2m에 근접하자 로봇이 멈췄습니다. 방사선 때문에 카메라는 물론 로봇의 모터 제어기까지 다 고장 났죠. 이후 로봇에 들어가는 전자 관련 부품에 새롭게 방사선 차폐 기술을 적용해 최종 실험은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이후엔 선박 제조 공정에서 선박 바닥 면을 만들 때 용접을 대신하는 로봇을 만들었습니다. 유독 가스가 발생하는 위험한 작업 환경에서 사람 대신 일하는 용도였죠. 역시나 실험 환경에서는 잘 작동했지만 조선소에 투입한 순간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엄청난 전자파로 인해 로봇을 관리하는 고가의 시스템 PC가 고장 났죠. 이때부터 주변에서 ‘데모 귀신’이라고 불렀습니다. 잘 작동하다가도 시범(demonstration)을 보이면 귀신이 붙은 것처럼 고장이 난다면서요. 두 번째엔 성공했지만, 왜 자꾸 처음엔 실패할까 고민이 됐어요. 꼼꼼히 과정을 복기해보니 0.01%의 부족함 혹은 실수가 원인이었더군요. 공학도에게 ‘완벽한’ 과정과 작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후 저는 영상 처리와 인공지능 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인공지능 신경회로망을 개발해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로봇, 영상 처리, 인공지능 등 현재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을 미리 경험한 셈입니다.벤처 연구원→교수, 새로운 길 연 나만의 키는?
박사학위 취득 후 벤처 기업을 택했습니다. 같이 연구했던 대기업에 취업할 수 있었고 복지·급여 등의 장점도 많았지만, 전공을 살리면서 새로운 일에 계속 도전하고 싶어 ‘미래산업’이라는 기업의 연구소를 선택했죠. 한데, 구조조정으로 팀이 없어지고 대학으로 이직했습니다. 사실 교수라는 직업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계속 도전을 하면서 후학도 양성할 수 있다는 점이 새로운 길을 결심하게 했죠. 수도권 대학, 비수도권 대학을 놓고 고민했는데, 중하위권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의 역량을 키워 산업계에서 필요한 ‘허리 인재’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한 충청권 대학의 자동차공학과에서 교수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로봇과 인공지능을 주로 연구해온 제가 자동차공학과 교수가 된 배경에는 박사 학위를 받기까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을 섭렵한 점과 더불어 취미 생활의 역할도 적지 않았습니다. 학업 스트레스를 해소하려 자동차 경주 선수로 활동했거든요. 운전의 재미도 컸지만, 내가 배운 기계공학이 어떻게 자동차에 적용되는지 직접 실험하고, 자동차 개조도 직접 하고 싶어 선택한 취미였어요. 실제 자동차에 센서를 달아 계측·분석하며 일과 취미를 연동, 자기 발전을 계속하기도 했죠. 맨 처음 말했듯 제가 현재 몸담은 모빌리티 분야는 숨겨진 역량을 발굴해 성장시키며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처음으로 돌아가자면 저는 가장 원했던 길은 아쉽게 비껴가고 첫 시연에서는 실패를 거듭한 ‘불운’한 사람이지만, 동시에 운 좋게 좋은 팀에 합류하거나 어렵고 새로운 기술을 앞장서 배울 기회를 얻은 ‘행운’ 가득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불운과 행운 사이,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을 찾아내고’ ‘최선을 다해 즐기고 몰입한’ 덕분에 저는 농기계공학과 학생에서 ‘인공지능·자율주행 전문가’라는 현재에 다다를 수 있었죠. 즉, 학생들은 지금 혹은 눈앞의 일로 앞으로의 많은 시간을 미리 결론짓지 마세요. 자신의 가능성도 섣불리 단정하지 않길 바랍니다. 특히 지금 세상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로 빠르게 변하고 있답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아는 대학 교육과 직업 역시 크게 달라질 겁니다. 학생들 누구나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변화를 읽는 눈을 키우고 자신의 새로운 능력과 가치를 찾는다면 기회를 잡을 수 있죠. 앞으로 지면을 통해 이를 도우려고 합니다. 세상을 바꾸는 신기술, 그리고 그에 맞춰 바뀌(어야 하)는 대학 교육과 산업·직업에 대해 제가 몸담고 있는 자동차 분야를 중심으로 함께 살펴봅시다.
내일교육 기자 naeiledu@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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