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페소 버리고 달러 택할까

2023-06-13 11:35:34 게재

블룸버그 "대선 인기주자, 달러 공식통화 공약"

아르헨티나 페소화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1980년대 '아우스트랄'이라는 새로운 통화로 일시적으로 퇴장했다. 1991년 '1달러=1페소' 고정환율제로 몇년간 행복을 누렸지만 오래지 않아 가치가 급락했다. 최근 페소화는 신흥시장 중 실적이 가장 나쁜 통화로 분류되는 굴욕을 겪고 있다.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BBW) 최신호에 따르면 올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아르헨티나의 한 경제학자가 페소화의 불행을 완전히 끝내겠다고 선언했다. 하원의원이기도 한 하비에르 밀레이는 "페소화는 사하라 사막의 얼음처럼 녹아내리고 있다"는 말을 즐겨 사용하며 "세자릿수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아르헨티나는 공식적으로 달러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페소화는 지난해에만 달러 대비 가치가 절반으로 떨어졌다.

오는 10월 밀레이가 대통령에 당선돼 공약을 이행한다면 아르헨티나는 달러화를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경제국이 될 전망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아르헨티나의 국내총생산은 달러화를 채택한 7개 주권국가 중 가장 큰 에콰도르의 약 5배에 달한다.

달러화는 절박한 상황에 처한 국가가 택하는 최후의 해결책이다. 아르헨티나의 5월 인플레이션은 109% 치솟았고, 중앙은행 기준금리는 97%에 달한다. 블룸버그가 설문조사한 경제학자들은 올해 아르헨티나가 경기침체를 맞을 것으로 예상했다. 현실화한다면 5년 만에 맞는 경기침체다.

현재 아르헨티나에선 집주인은 물론 변호사, 악기 판매자, 결혼식장 등 모든 경제주체들이 달러를 지불수단으로 요구하고 있다. 밀레이 후보를 등에 업고 의원직에 출마한 경제학자이자 금융학 교수인 디아나 몬디노는 "달러화는 이미 일어나고 있다"며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달러로 저축하고 달러로 점점 더 많은 거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밀레이 후보는 에밀리오 오캄포가 추진한 달러화 계획을 공개적으로 지지한다. 오캄포는 아르헨티나 저명한 가문의 후손으로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하고 1990년대 뉴욕의 살로몬 브라더스에서 투자은행가로 일했다. 달러화에 대한 오캄포의 저서는 지난해 부에노스아이레스 서점들에서 매진됐다.

하지만 대중들은 회의적이다. 최근 아르헨티나 국민 약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두 건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60% 이상 응답자가 달러화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달러화에 대한 아르헨티나인의 피로감은 트라우마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90년대 초 아르헨티나가 초인플레이션에 시달릴 때, 당시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의 경제자문을 맡은 경제학자들은 대담한 해결책을 제안했다. 페소와 달러를 1:1로 고정하자는 것이었다. 초기 큰 성공을 거뒀다. 인플레이션이 사라지고 경제성장이 회복되면서 아르헨티나는 신흥시장의 인기국가로 부상했다. 메넴정부는 투자심리가 호전된 틈을 타 국채발행을 늘리며 고질적인 예산적자를 메웠다.

아르헨티나의 행운은 1990년대 후반 약발이 다했다. 곡물 수출가격 하락과 신흥시장 자금유출 파고가 겹치면서 아르헨티나는 깊은 불황에 빠졌다. 아르헨티나는 IMF 구제금융을 받았지만, 이후 대통령들은 경제를 되살리는 데 고전했다. 에두아르도 두할데 대통령은 취임한 지 15일이 안된 2002년 초, 페소와 달러의 연결고리를 끊었다.

세계에서 가장 열성적인 달러화 지지자 중 한 명인 미국 존스홉킨스대 응용경제학 교수인 스티븐 행크는 1990년대부터 메넴정부에 달러화로 전환할 것을 조언한 인물이다. 그는 여전히 달러화가 최선의 길이라고 확신한다. 그는 블룸버그와의 이메일에서 "이제 아르헨티나중앙은행과 페소를 좀벌레로 만들어 박물관에 넣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밀레이 후보는 이에 화답하며 "대통령에 당선되면 중앙은행을 날려버릴 것"이라고 말한다.

아르헨티나의 몇몇 경제학자들은 달러화가 통화정책에 대한 주권을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에 사실상 양도하는 것이라며 달러화에 반대한다. 달러강세가 아르헨티나의 수입수요를 촉진하는 동시에 수출가격을 상승시켜 잠재적으로 국제수지 위기의 발판이 될 수 있다는 게 단점 중 하나다.

다른 전문가들은 아르헨티나정부가 페소화 약세와 인플레이션의 근본 원인인 만성적인 예산적자를 줄이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중앙은행 관리는 "달러화는 뚱뚱한 사람에게 제대로 된 식단을 처방하는 것이 아니라, 구속복을 입히는 격"이라고 말했다.

아르헨티나 경제학자 루치아노 라스피나는 지난 4월 27일 트윗에서 "목줄을 바꾸는 게 아니라 개가 되는 것을 그만둬야 한다"며 달러화 반대 진영에 동조했다. 아르헨티나 정치권은 자칭 자유주의자인 밀레이가 여론조사에서 상승세를 타는 것을 긴장된 마음으로 주시하고 있다.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호라시오 로드리게스 라레타 시장은 지난 4월 TV 인터뷰에서 "오캄포의 달러화 계획은 환율통제를 해제할 때보다 훨씬 더 큰 평가절하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BBW는 "밀레이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집권 연립정부가 의회에서 다수의석을 확보할 가능성은 적다. 이는 달러화 도입을 위한 커다란 장애물"이라고 전했다. 아르헨티나 역사에 관한 책을 집필하기 위해 금융계를 떠난 오캄포는 "밀레이 선거캠프에 소속돼 있지 않으며 그를 위해 일하지도 않았다"며 "아르헨티나의 문제는 매우 복잡하며, 우리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복잡한 금융공학을 설계하고 있다. 좋든 나쁘든 아르헨티나는 달러화를 도입하게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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