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관계 141년 비사 | ④ 미국 사절단 보빙사(報聘使)의 활동

조선 국제박람회 개최 의지를 밝히다

2023-06-23 11:10:35 게재
한종수 한국 헤리티지연구소 학술이사

'보빙사'(報聘使)는 1883년 푸트 미국공사의 조선 부임에 맞춰 답례의 의미이자 형식으로 그해 7월 미국에 파견한 사절단을 일컫는다. 조선은 일찍이 태종 때부터 조일수호조약 체결 이전인 1876년 2월까지는 18회에 걸쳐 '통신사'(通信使)를 파견했고, 이후 1882년까지 3회에 걸쳐 수신사(修信使)와 조사시찰단(朝士視察團)이란 이름으로 일본에 파견한 바 있다.

당시 조선의 보빙사 파견을 추진하던 푸트 공사는 미국 프레드릭 프릴링하이젠(Frederick T. Frelinghuysen) 국무장관에게 보낸 보고문에 보빙사 일행의 영접에 만전을 다해달라고 당부한다. "그들은 미국의 관습·우편제도·공립학교제도 등을 배우려고 열망하고 있으며, 특히 미국의 국방제도와 병기공장을 시찰하고자 합니다. 다른 동양 여러 나라와 마찬가지로 조선은 다수 외국인 고문관(顧問官)을 필요로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에 참여 여부는 이들 보빙사가 미국에 가서 받은 인상, 그리고 그들의 방미보고서 여하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현재로서는 그들은 우리나라와 우리 미국의 제도에 대하여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보빙사에 대한 그들의 기대를 짐작할 수 있다.

전권대신 민영익 23세, 부대신 홍영식 27세, 종사관 서광범 26세, 수원 유길준 27세, 변수 22세 등 보빙사의 주요 인물은 20대 젊은 청년이었다. 이들은 미국의 산업시설, 언론사, 정부부처 등을 시찰하며 선진문물과 개화사상 등을 경험하고 견문을 넓혔지만, 아쉽게도 1년 후 갑신정변 실패로 죽거나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해 타국에서 숨을 거두게 된다.

보스턴박람회 참관 후 개혁의지 다짐

보빙사의 미국 시찰 지역 중 보스턴은 한미 과학기술교류의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둘 수 있다. 보빙사는 외국 박람회와 아메리카 박람회를 순방, 전시품을 관람한 후 미국의 산업발전에 감탄했다. 특히 광산 채굴도구, 농기구 및 면직기 등에 큰 관심을 표명했는데, 당시 조선에게 절실히 필요한 상품이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보빙사가 가지고 간 조선토산품 몇가지를 출품했는데, 이는 최초의 외국 박람회 출품이었다.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외국특산물 전시회를 참관한 조선 보빙사 일행(New York NY Daily Graphic, 1883 May-Oct Grayscale)


당시 '보스턴 모닝저널'(1883. 9. 20)은 이를 크게 보도했다. "조선 보빙사는 보스턴에 있는 동안 외국 박람회를 참관했다. 이 박람회에는 조선이 정식으로 출품·전시한 상품은 없다. 그러나 몇가지 표본상품과 천연자원품이 출품되었다. (중략) 저녁에는 외국 박람회에 참석, 외국 박람회 직원의 영접을 받았고, 그들의 안내로 전시장을 관람하면서 몇 가지 매력을 끄는 전시품을 보고 관심과 호기심을 보였다."

보빙사는 외국박람회에 두번째로 방문해 고려기 및 조선의 도자기·화병·주전자 등을 출품한다. 비록 출품수는 몇점 안됐지만, 외국박람회에 최초로 토산품과 도자기 등을 출품했다는 건 '박람회'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보여준다. 훗날 1893년 시카고 콜롬비아 박람회(1893 Chicago Columbia Exposition)에 참여해 독자적인 '조선전시관'을 개설·운영함으로써 '은자(隱者)의 나라'에서 '개방의 나라'로 변화 의지를 보였다는 의미가 있다.

사실 보빙사는 보스턴에서 박람회를 관람하고 큰 문화적 충격을 느꼈다. 좀처럼 감정을 표명하지 않던 보빙사가 구미 여러 나라의 실용적인 발명품과 제조상품의 우수성을 보고 경탄을 연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빙사 전권대신 민영익은 박람회 참관에서 큰 자극을 받아 귀국하면 조선의 수도, 한양에서 근대화운동의 일환으로 국제산업박람회를 개최하겠다는 발표를 하기도 한다.

개항한 지 얼마 안된 조선이 국제박람회를 개최한다는 것은 미국 현지에서 빅뉴스였다. '뉴욕헤럴드'(1883. 10. 15)는 "민영익은 조선에서 외국박람회를 개최하는 문제를 가지고 국무부 당국과 교섭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조치는 조선에게 가장 중요한 행사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조선에서 외국박람회를 개최하면 조선민들에게 외국제 상품을 보여주는 호기가 될 것이며, 이를 계기로 대외교역을 촉진하며, 아직도 뿌리 깊게 남아있는 조선인의 '대외편견'(prejudice)의 관념을 타파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박람회 개최는 조선의 대외교섭을 발전시키는 조치이므로 조선은 조선에 대한 미국인의 관심을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또 묄렌도르프의 국제박람회(International Exhibition) 개최를 요청한 서한 전문을 소개하고 미국정부가 이에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는 소식도 전한다. 이어 워싱턴시 상공회의소에 출품 의뢰했다고 적고 있다.

한편 '뉴욕타임스'(1883. 10. 23)는 국제박람회 개최에 대해 상당히 희망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최근 조선왕국으로서 재미있는 사건은 이처럼 먼 나라에서 국제적 대산업전시회를 개최하겠다고 제의했다는 사실이다. 더욱 우리의 주목을 끄는 놀라운 사실은 이처럼 원시상태로부터 겨우 문명사회에로 눈을 돌리고 있는 이때, 이들 백성들에게 관심을 끌 만한 상품, 이를테면 광산 개발기계, 농기구, 그리고 기타 상품 등을 한국으로 보내달라고 미국정부에 요청했다는 것이다. 일찍이 미국정부는 일본을 개항시켰듯이 최초로 조선과도 우호통상조약을 체결했다. 조선인은 미국에 대해 친밀한 우의를 표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정부로서도 조선의 수도 한양에서 개최될 산업박람회(industrial fair)에 미국 상품을 출품하도록 장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현명한 처사라고 보는 바이다."

그러나 조선에서의 국제박람회 개최구상은 국내의 정치적 불안, 즉 갑신정변(1884)으로 말미암아 좌절되고 말았다.

조선 개혁 방향의 갈등 '갑신정변'

보빙사는 두 그룹으로 나뉘어 귀국한다. 전권대신 민영익은 서광범, 변수, 해군무관 포크(G. C. Foulk)와 함께 1883년 11월 19일 트렌턴호에 탑승한다. 뉴욕항을 출항, 대서양을 횡단해 영국 런던에 도착한다. 민영익 일행은 런던, 파리, 카이로, 로마 등을 방문한 후 수에즈운하를 거쳐 인도양을 횡단하고 싱가포르, 홍콩 등을 거친다. 한국인 최초의 세계일주를 무사히 마치고 1884년 6월 2일 제물포항에 도착해 고종에게 복명(復命)한다. 한편 부대신 홍영식 일행인 고영철, 최경석, 현흥택, 미국인 외교서기관 로우엘, 중국인 우리탕 등은 태평양을 횡단해 일본을 거쳐 1883년 12월 21일 귀국 복명한다.

세계일주 내내 전권대신 민영익은 유교서적을 탐독했다. 반면 서광범과 변수는 포크가 백과사전을 번역해 설명하면 열심히 노트하고, 서양 각국을 시찰한 내용을 토론하는 등 선진문명 수용에 대단한 열의를 보였다. 이는 두 그룹의 젊은 관료들 사이에 적대적 충돌을 암시하는 불길한 조짐이기도 했다.

민영익은 개화 의지를 가지고 미국으로 출발했지만, 미국을 떠나 유럽 각국으로 6개월간 세계일주를 하면서 중국(청)에 의존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러한 행동에 서광범은 민영익이 조선에 도착하면 장차 구미 각국에서 견문한 개화사상을 버리고 중국(청)에 의존적인 사대사상으로 후퇴할 것으로 전망한다.

민영익은 6월 3일 푸트 미국 공사를 방문해 그동안 미국정부의 환대에 대해 공식 감사인사를 전하며 아더 대통령의 특별 배려로 세계일주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구미 선진문물을 직접 견문한 소감을 솔직하게 피력한다. "나는 암흑세계에서 태어나 광명세계로 들어갔다가 이제 또다시 암흑세계로 되돌아왔다. 나는 아직 내 진로를 분명히 취할 수 없는데, 곧 앞으로 나의 거취를 밝히게 될 것을 희망한다."

그로부터 반년 후 1883년 갑신정변이 일어난다. 그러나 개화사상은 꽃 피우지 못한다.


■ 참고자료
Boston Mornig Journal(1883.9.20.)
New York Herald(1883.10.15.)
New York Times(1883.10.23.)
New York NY Daily Graphic(1883 May-Oct Grayscale)
김원모, 『상투쟁이 견미사절 한글국서 제정 上』(2019.9.)

["한미관계 141년 비사" 연재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