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돈봉투' 수사, 한나라당 전철 밟나

2023-07-11 11:07:02 게재

국회 체포동의 부결 후 한달째 수수 의원 특정 못해

한나라당 수사 때도 박희태 처벌됐지만 용처 못밝혀

검찰 "최적 방법 강구, 교차검증 특정 후 필요 조치"

"범죄 생중계 같은 녹음 파일들이 있는 사건이고 진술들만 있는 사건이 아닙니다."

지난달 12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국회에 나와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에 연루된 윤관석, 이성만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를 요청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한 장관은 '이정근 녹취록'을 근거로 돈봉투를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두 민주당 의원의 성까지 거론했다. "범죄사실에 부합하는 일정표, 국회 출입 기록도 있다"고도 했다.

한 장관의 발언은 검찰이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돈봉투가 건네진 정황을 상당부분 파악한 것으로 해석됐다. 당시 두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이후 검찰도 "국회 체포동의안 부결과 관계없이 전당대회 금품살포 및 수수와 관련된 수사를 엄정하게 진행해 사안의 전모를 명확히 규명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한 달 가까이 지나도록 돈봉투 수수 의심을 받는 의원들에 대한 검찰 조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11일 "돈봉투를 받은 의원들을 특정하기 위한 자료수집과 관련자 조사 등을 이어가고 있다"며 "아직 의원 소환을 조율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실제 민주당 돈봉투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반부패수사2부(김영철 부장검사)는 전날 국회사무처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이날 검찰은 현직 국회의원 여러 명과 송영길 전 대표의 의원 시절 보좌진 등의 국회 출입 기록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사무처에 대한 압수수색은 이번이 두 번째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5일 국회사무처 압수수색을 통해 29개 의원실의 국회 출입기록 자료를 확보한 바 있다. 이후 검찰은 국회 보좌관 등 10여명의 기록을 추가로 요청했으나 국회사무처가 응하지 않자 다시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 집행했다.

검찰은 그동안 돈봉투 수수 의원을 특정하기 위해 국회 출입 내역 등 교차검증을 해왔지만 여전히 확인해야 할 사항들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돈봉투 수수 의원 특정이 늦어지면서 일각에선 '2008년 한나라당 돈봉투' 수사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한나라당 돈봉투 사건은 2011년 당시 고승덕 한나라당 의원이 한 컬럼에서 "전당대회가 열리기 며칠 전 필자에게 봉투가 배달됐는데 상당한 돈이 담겨 있었다"고 폭로하면서 불거졌다. 한나라당의 의뢰로 수사에 나선 검찰은 47일 만에 박희태 국회의장과 김효재 전 청와대 수석을 불구속 기소했고, 두 사람은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박 의장이 2008년 전당대회 직전 1억9000만원을 현금화한 사실을 확인하고도 고 의원이 폭로한 300만원 이외에 돈봉투가 건네진 의원들에 대해선 밝혀내지 못했다.

검찰은 수사가 지연되고 있다는 지적에 반박했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늦어진다는 부분에 동의할 수 없다"며 "사안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 최적의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돈봉투 수수자 특정에 대해선 관련 증거와 진술로 윤곽이 나왔고 국회 출입자료 등 객관적 자료를 교차검증해 하나하나 특정하고 있다"면서 "이 과정이 마무리되면 필요한 조치를 진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검찰은 지난 3일 구속된 송 전 대표의 전직 보좌관 박용수씨 등을 상대로 전당대회 당시 추가 불법자금 유입 여부와 사용처, 증거인멸 의혹, 송 전 대표 지시·보고 여부 등에 대한 수사를 병행하고 있다.

9일에는 송 전 대표의 외곽후원조직으로 알려진 '평화와 먹고사는 문제 연구소'(먹사연) 사무국장 김 모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지난해 11월 PC하드디스크를 교체한 경위와 송 전 대표의 관여 여부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 전 대표측 변호인은 "검찰이 객관적인 물증을 내놓지 못하고 자백만 강요하는 중세시대의 규문주의적 수사로 인권을 유린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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