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판결 살펴보니

장애인 등 약자·소수자 인권보호 눈길

2023-08-24 11:07:44 게재

백남기 사건·투렛증후군·연애인 초상권 인정

사법농단 법관 무죄, 여성차별 판결엔 비판도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23일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의 주요 판결 사례를 소개했다. 국회 청문회를 앞두고 이 후보자가 '보수 성향'이란 세간의 평가를 의식한 듯 주로 장애인 등 약자의 인권 보호와 관련된 판례들을 소개했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이 후보자는 서울고법 행정2부 재판장 시절 스스로 조절하기 힘든 단순하고 반복적인 동작(틱·Tic)을 2가지 이상하는 '투렛증후군' 환자를 법적 장애인으로 인정해줘야 한다는 첫 법원 판결을 만들었다. 투렛증후군은 그전까지 관련 법령의 장애 종류에 포함되지 않아 장애인으로 등록할 수 없었다.
신임 대법원장 후보자인 이균용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김명수 대법원장을 만나기 위해 2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들어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재구 기자


1심은 "한정된 재원을 가진 국가가 장애인의 생활안정의 필요성과 그 재정의 허용한도를 감안해 일정한 종류와 기준에 해당하는 장애인을 장애인복지법의 적용 대상으로 삼아 우선적으로 보호하도록 한 것이 평등원칙에 위반된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기존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봤다.

하지만 이 부장판사는 "장애인복지법 시행령에 틱 장애는 그 정도의 경중을 묻지 않고 이를 규정하지 않아 장애인으로 등록할 수 있는 방법이 원천적으로 차단돼 있다. 합리적인 이유 없이 장애인으로서 불합리한 차별을 받고 있다고 인정된다"며 "이는 헌법의 평등규정에 위반돼 위법하다고 볼 수 있다"라고 판결했다.

서울고법 형사7부 재판장으로 근무할 때 고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 당시 지휘·감독을 소홀히 한 혐의로 기소된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에 대해서는 1심 무죄를 뒤집고 벌금형을 선고했다.

1심은 구 전 청장이 총괄책임자로 살수차 운영지침에 허가권자로 명시돼 있지만 권한을 현장 지휘관 등에 위임하고 있고, 이 때문에 구체적인 지휘감독 의무를 원칙적으로 부담한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이 부장판사는 항소심에서 "집회·시위는 과격하고 폭력적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과잉살수가 방치돼 사망사건이 발생했다"며 "(경찰이) 적절한 대응으로 시민들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했지만 적정 수준을 초과해 법적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라고 구 전 청장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이 후보자는 2019년 서울고법 형사7부 재판장을 맡아 서울 강서구 화곡동 어린이집에서 영아를 학대해 숨지게 한 보육교사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6년을 선고했다. 보육교사는 2018년 7월 생후 11개월 원생을 이불로 뒤집어씌워 껴안거나 몸으로 누르는 방식으로 질식사하게 한 혐의(아동학대치사)로 기소됐다. 비슷한 방법으로 총 8명의 영아를 학대한 혐의도 받았다.

당시 이 부장판사는 "사건의 결과가 매우 중대하고 피해자들이 많다"며 "사망한 아동의 부모와 합의가 됐더라도 1심의 형이 가볍다"고 판단해 1심보다 형량을 늘렸다.

방조 등 혐의로 함께 기소된 어린이집 원장이자 보육교사의 쌍둥이 언니에게는 1심의 집행유예 판결을 깨고 징역 3년 6개월 실형을 선고하면서 법정에서 구속했다.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어린이집에서 발생하는 아동학대 사고의 심각성과 중대성을 재확인하고 유사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가 경각심을 갖고 국가 차원의 후속 대책을 세우도록 하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였던 지난 2013년에는 배우 신은경씨와 병원 간 민사 분쟁에서 '퍼블리시티권(초상사용권)'을 인정하는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당시 이 후보자는 "사람의 성명과 초상 등은 개인 인격에 대한 상징으로 이를 함부로 이용당하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며 "퍼블리시티권도 이러한 인격권에서 유래하는 것"이라고 했다.

엄벌만을 강조한 것은 아니다. 이 후보자는 부산지법 울산지원 단독판사로 재직하던 1995년 단체협약을 위반하고 쟁의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기소된 직원들의 1심 재판에서 처벌 조항에 위헌 소지가 있다며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헌법재판소는 이 부장판사의 제청을 받아들여 이듬해 3월 "단체협약에 위임한 형사처벌의 근거는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된다"며 해당 노동조합법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처벌조항이 남용되는 것을 방지해 건전한 노사관계 형성에 기여했다"고 밝혔다.

반면 이 후보자의 '사법농단' 사건과 YMCA 여성 회원 관련 판결은 진보성향 단체들로부터 비판받고 있다.

이 부장판사는 서울고법 형사8부 근무 당시 정운호 게이트와 관련해 법원에 접수된 영장청구서와 수사기록을 법원행정처에 누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사법농단' 현직 판사들(신광렬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 조의연·성창호 전 영장전담 부장판사)에게 1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이 부장판사는 "피고인들이 정운호 게이트 사건 수사를 저지하려 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다른 판사들이 형사수석부장인 신광렬 부장판사에게 보고한 것으로 공모했다 인정할 수 없어 공모를 전제로 하는 공소사실 자체를 무죄로 판단한다"라고 판시했다. 지난해 7월 대법관으로 임명 제청됐을 때 이 판결이 도마에 올랐다.

또 이 후보자가 2007년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13부 재판장을 맡았을 때 서울기독교청년회 여성 회원들이 여성 회원에게는 총회 의결권을 주지 않는 관행에 반발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내부에서 자율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그러나 항소심과 대법원은 "용인될 수 없는 성차별"이라며 1심을 뒤집고 여성 회원들의 손을 들어줬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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