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관계 141년 비사 | ⑩ 사진을 통해 본 조선 외교관의 이미지

화성돈(華盛頓/워싱턴 D.C.)에서 경험한 신문화

2023-09-22 11:18:55 게재
한종수 한국 헤리티지연구소 학술이사

초대 주미 전권공사 박정양은 청나라로부터 파견을 허락받은 1887년 11월부터 병을 핑계로 귀국해 고종에게 복명(復命)한 1889년 9월까지 미국 수도 화성돈(華盛頓, 워싱턴D.C.)에서 활동한 기록을 '미행일기'(美行日記)에 남긴다. 이 책에는 그가 조선의 '자주외교'와 '부국강병'을 위해 어떻게 활동하고, 무엇을 고민했는지 상세하게 담겨있다.

필자는 '미행일기' 기록 중 1888년 1월부터 약 11개월 동안 조선 외교관이 미국에서 경험한 신문화를 몇차례에 나눠 소개하고자 한다.

1888년 1월 19일, 조선은 미국 워싱턴D.C. O가(街) 1513번지(1513 O Street)에 에 상주공관인 주미조선공사관(皮瑞屋)을 개설해 운영을 시작한다. 서양에 최초로 개설한 조선공사관이다. 이틀 전 1월 17일 주미공사 박정양을 비롯한 11명의 조선 외교관들이 백악관을 방문해 클리블랜드 대통령을 예방하고 고종의 국서를 봉정한 이후의 일이다.

미국 대통령을 예방하는 주미공사 박정양 일행(1888.1.17.)


당시 백악관 방문 사진은 남아있지 않지만, 주간지 '하퍼 위클리'(Harper's Weekly, 1888년 1월 28일자)에 모세르(J.H. Moser)가 그린 삽화가 있다. 당시 상황을 기록한 박정양의 '미행일기'와 삽화를 비교해 보면 참찬관 이완용이 고종의 국서(國書)를 받들고 맨 앞에 서 있고 주미공사 박정양이 바로 뒤에, 그 옆에는 뉴욕영사 프레이저(Everett Frazar)가 서 있다. 또한 사모(紗帽)와 흑단령(黑團領) 차림의 서기관 이하영과 이상재, 번역관 이채연, 협수(挾袖) 차림의 수행원 강진희와 이헌용, 미국인 참찬관 알렌(Horace N. Allen)이 함께 참석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삽화가 모세르(J.H. Moser)의 눈에 비친 조선공사 박정양 일행은 중국풍의 옷을 입고 모자를 쓴 사람들로 그려졌다.

이후 1월 30일과 2월 23일 2차례, 조선 공사 박정양은 관원들과 하인 모두를 거느리고 워싱턴의 유명 사진관을 방문한다. '미행일기'에는 스튜디오 이름이나 위치 등 상세한 정보가 없어 어디서, 어떤 사진을 촬영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그런데 필자가 2014년경 워싱턴 D.C.에서 박정양 공사의 손녀(차남 박승철의 차녀)가 소장한 사진을 실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시 조부(박정양)가 어느 스튜디오에서 촬영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미국에 부임한 조선 외교관 단체 사진(1888년)


사진 왼쪽 아래에 스튜디오 이름과 오른쪽 아래에는 스튜디오 주소가 적혀있었다. 확인 결과 백악관 주변에 위치한 유명한 사진관인 '라이스'(Rice)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사진이었다. 외교 참사관 미국인 호러스 알렌(Horace N. Allen)이 어떤 이유로 사진 촬영에 빠졌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를 제외한 10명의 조선 외교관이 한자리에 모여 미국 워싱턴D.C.에서 촬영한 유일한 단체사진으로 남아있다. 라이스 스튜디오는 라이스(Moses P. Rice와 Amos I. Rice )형제가 공동 운영한 곳으로 백악관 동편 '1217 AND 1219 PENNA. AVENUE'에 위치했다. 그곳은 공사관 일행이 1월 9일 워싱턴D.C.에 도착하자마자 처음 묵었던 에빗하우스호텔과 가깝기도 하다.

사진 촬영 당일을 상상해보면 조선 외교관 일행 10명은 공사관에서부터 조선 관복(官服)을 입고 사모와 갓을 쓰고 스튜디오까지 약 2㎞, 30분가량 걸어갔을 것이다. 아마도 워싱턴D.C. 외교 공관 거리와 백악관 인근을 지나는 시민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받으며 걷지 않았을까 싶다.

박정양은 1월 30일자 '미행일기'와 그의 관직 기록을 정리한 '종환일기'(從宦日記)에 당시 복장(服裝)에 관련한 부연 설명을 남겼다.

"우리나라(조선) 사람이 미국에 온 것은 일찍이 1883년에 판서 민영익이 (보빙사) 전권대신으로 와서 다만 답례로 방문하고 돌아간 뒤로 다시 사신의 행차가 없었다. 그러므로 미국 수도의 신사와 숙녀들이 우리의 거동 행렬(行列)과 의복(衣服)을 보고 처음 보는 것이라면서 매번 문밖에 나가면 관중(觀衆)이 길을 가리고 각처의 사진관 업자들이 서로 번갈아 사진을 찍겠다고 여러 차례 요청하였다. 대개 사진을 널리 전하여 인민의 안목을 새롭게 하려는 것이다."

1888년 당시 미국에 약 30여만명 이상의 중국인들이 체류하고 있어 동양 사람이면 의례 중국 사람으로 알았다고 한다. 의복 또한 미국인들의 눈에는 중국 복식과 비슷해 보여 동양 사람이 지나가면 어린아이들은 중국 사람으로 알고 "촤이나-촤이나"라고 불렀다.

조지 워싱턴 생가를 방문한 초대공사 박정양 일행(1888년 4월 26일)


워싱턴D.C.에서 촬영한 사진 외에도 초대 주미공사 박정양이 공사관원들과 알렌 가족들과 함께 1888년 4월 26일 미국 건국의 아버지이자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생가인 버지니아 마운트 버넌(Mount Vernon)를 방문해 촬영한 사진이 2022년 발견됐다.

갓을 쓴 인물들 중 왼쪽에서 두 번째가 박정양으로, 무관 이종하(李種夏)와 수행원인 화가 강진희(姜璡熙)가 양옆에 있다. 오른쪽에는 서기관 이하영(李夏榮)이 현지인 가족들 사이에 서 있다. 사진에서 보듯 이들의 방문은 현지인들의 많은 관심과 환영을 받았다. 사진에는 참찬관 이완용과 번역관 이채연은 없다. 이 둘은 당시 '영약삼단'을 어긴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 조선으로 떠나 사진에는 빠졌다. 조선 공사 일행이 미국 건국의 아버지인 워싱턴 생가에 방문한 사진으로 외출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 색다르다.

■ 참고자료
《하퍼 위클리》(1888.1.28.)
박정양 저, 한철호 역,『미행일기』, 국외소재문화재재단(2015)
이상재,「상투에 갓 쓰고 미국(米國)에 공사(公使)갓든 이약이, 벙어리 외교(外交), 그레도 평판(評判)은 조왓다」,『별건곤』창간호(1926)
한종수, 「주미 조선공사관 개설과 '자주외교' 상징물 연구-공문서 및 사진자료 분석을 중심으로-」,『역사민속학』 44(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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