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관계 141년 비사│⑬ 재외공관 중 유일하게 매입해 운영한 주미조선공사관
대미외교 중시한 고종의 의지 반영
1882년 조미수호조약을 체결한 후 미국은 이듬해인 1883년 정동에 미국공사관을 개설해 운영했으나, 조선은 중국(청)의 압력으로 1888년 1월에서야 초대전권공사 박정양, 참찬관 이완용, 서기관 이하영 이상재, 번역관 이채연, 외교 참찬관 알렌 등 11명을 워싱턴 DC에 파견해 공사관을 개설하고 본격적인 업무를 개시한다. 그 공사관은 집주인 피셔(Fisher)의 이름을 따서 '피서옥(皮瑞屋, Fisher's house)'이라 불렀다.
하지만 청이 미국 파견 허락 조건으로 요구했던 '영약삼단'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자 이홍장과 위안스카이는 고종에게 박정양을 소환토록 종용한다. 결국 고종은 박정양 공사 소환 명령을 내린다. 명분상으로는 심신쇠약을 이유로 박정양은 11월 19일 서기관 이상재와 귀국했다. 이에 앞서 4월 21일 참찬관 이완용이 병을 이유로 번역관 이채연과 이헌용 허용업과 함께 먼저 귀국해 화성돈(워싱턴DC)을 비운 상황이었다.
공사관에 남은 외교관 중 서열이 제일 높은 서기관 이하영이 1888년 11월 16일자로 임시서리공사로 임명된다. 임명 후 3개월이 채 되지 않은 1889년 2월 13일 주미조선공사관(1897년 이후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을 피서옥에서 1500 13번가 아이오와서클(Iowa Circle, 현 로건서클)에 있는 건물로 옮겨 임대형식으로 사용하게 된다.
1970년대부터 공사관 건물이 현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미국 동포사회 및 학계, 언론인들의 노력으로 2012년 10월 18일 대한민국(문화재청) 정부가 이 건물을 매입했고 이후 활발한 조사·연구 및 복원 노력을 진행했다.
당시 학계에서는 주미조선공사관의 개설 및 운영 시점을 매매등기(Deed)가 완료된 1891년 12월 1일을 기준으로 삼았다. 하지만 필자가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소(The National Archives)가 소장한 '미 국무부 문서'(1889.2.15)와 연세대학교 박물관이 소장한 '공사관 외부 사진'(1889.5.8), '워싱턴포스트'(1889.1.27) 내용을 확인한 결과, 주미조선공사관은 1889년 2월 13일부터 해당 공사관 건물을 임대해 사용하고 있었다.
사진에 드러난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들
<사진1>은 서리공사 이하영이 1889년 2월 13일자로 미 국무부장관 토마스 F. 베이야드에게 통지한 공문인데, 피서옥에서 새롭게 이전한 주미조선공사관 주소가 1500 13번가 Northwest로 돼 있다. 이는 미 국무부가 주미조선공사관의 주소를 확인한 공식문서다. 1889년 2월 13일부터 주미조선공사관으로 옮겨 개설·운영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최초의 공식문서인 셈이다.
<사진2>는 연세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현재까지 알려진 주미조선공사관 외부 사진 중 가장 오래됐다. 특히 사진 앞면 왼편 상단에 '개국 사백구십팔년 사월초구일'이라고 적어 촬영시기를 정확히 확인할 수 있다. 조선이 개국한 1392년 이후 498년 되는 1889년 4월 9일(양력 1889.5.8)에 외부 모습을 촬영한 가장 오래된 사진이다.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면 공사관 현관 계단에 좌로부터 참찬관(사진 뒷면에는 참무관으로 표시함) 이완용, 서리전권공사 이하영, 서기관 이채연, 참찬관 미국인 알렌 등 4명이 찍은 기념사진으로 보인다. 그날 공사관 앞에서 4명의 외교관이 기념촬영을 한 이유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당시 서리공사 이하영이 1889년 5월 8일자로 미 국무부에 군복과 군 장비를 주문해 미 국무부장관 블레인(J. G. Blaine)으로부터 승낙을 받은 것과 동일한 날짜라는 것을 고려하면 그 '기쁜 소식'을 기념해 촬영한 사진으로 필자는 추정한다.
건물의 외관을 자세히 살펴보면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다. 건물 옥상에는 국기게양대가 세워져 있고 사진에 '국긔'라 적어놨다. 또한 현지 고용인으로 추정되는 흑인 한 사람이 국기게양대 옆에 서 있는 모습도 보인다. 당시 공사관에서 현지 인력을 고용했던 기록으로 보아 잡일을 하는 사람으로 사진을 찍을 당시 태극기를 막 게양했거나, 아니면 하강할 시간이 돼 옥상에 올라간 상황이 아닌가 추정한다.
기념사진 뒷면에는 촬영 시기를 '大朝鮮開國 四百九十八年 四月初九日'이라고 한문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주목할 점은 청국의 연호(年號)를 쓰지 않고 '대조선개국'이라는 독자적인 개국 연호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선은 미국과 수호조약을 체결하는 시점부터 '대조선국' 연호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 사진에서도 '대조선국'이라는 연호를 사용해 조선이 '자주독립국'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아래에는 외교관들의 직위와 이름들을 적은 한자가 보이는데, 사진 앞면의 인물들이 뒷면에 비쳐 보이는 순서대로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앞면 '국긔'라고 적은 건물 옥상을 뒷면에는 '國旗'로 표기했다. 이제까지 주미조선공사관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시점을 등기 완료 시점인 1891년 12월 1일로 오해하면서 위 사진에서 적혀있는 연도는 그동안 '모순'된 표기로 간주됐다.
그런데 1889년 2월 13일부터 임대로 사용하던 공사관 건물을 이완용 서리공사의 뒤를 이은 이채연 서리공사(임기 1890.9.~1893.6) 시기에 공사관 건물을 매입하기로 하고 절차에 나선다. 이채연 공사가 매입 절차 진행 중 미 국무부에 보낸 공식문서에 따르면 상주공관 매입에 관한 고종의 의지가 드러난다.
… 공사관 매입협정이 타결되었으며, 새로 매입할 대조선국 공사관 건물은 '1500 13th Street. Northwest'에 위치하고 있으며, 본 건물은 대군주(고종)가 파견한 전권공사의 상주공사관인 동시에 앞으로 대조선국 정부의 소유재산(the property of the Government of Korea)이 될 것입니다. 본 공사관 건물 구입을 계기로 조미 양국간의 유대관계가 더욱 긴밀해질 것입니다. 이는 상호 신뢰의 표상(表象)이며, 우리(조선) 정부의 안정공고의 표징(表徵)이 될 것입니다. 우리(조선) 정부가 이 나라 수도에 상주공사관을 유지하겠다는 소망은 바로 이에 기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귀하는 국무장관 권한으로 본 공사관 건물에 대한 과세(課稅)를 함에 있어서 미국 국내 법안에 의거, 다른 외국공사관과 동일하게 취급해 주기를 바랍니다.
미국과의 우의 밝히기 위해 공관 매입
미국 언론에도 관련 내용이 기사화됐는데 '뉴욕타임스'(1891.2.4)에 따르면 미국 수도 워싱턴DC에 조선정부가 상주공관을 매입하는 목적을 "상주 공사관의 필요성과 미국정부와 미국민에게 우의를 밝히기 위함"이라고 적시했다.
조선정부는 주미조선공사관 외에도 주일본공사관 주청국공사관 주영국공사관 주러시아공사관 주프랑스공사관 등 재외공관을 개설해 운영했지만 유독 주미조선공사관만 상주공관을 매입해 개설·운영했다는 사실은 당시 고종이 대미외교를 얼마나 중시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 참고자료
1. 미국 의회도서관
2. 국립문서기록보관소
3. 연세대학교 박물관
4. Washington Post(1889.1.27.)
5. The New York Times(1891.2.4.)
6. 박정양 저 한철호 역, 《미행일기》, 국외소재문화재재단(2015)
7. 한종수 「주미 조선공사관 개설과 '자주외교' 상징물 연구-공문서 및 사진자료 분석을 중심으로-」, 『역사민속학』 44(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