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중공업 특수선사업부 가보니
"함정건조 어려워지는 미국도 우리 기술 관심"
현중, 군함·잠수함 도크 공개 … "1등 조선, 1등 함정"
수출 더해 독자생존 가능한 매출 2조원 돌파 시도
지난 20일 HD현대중공업이 특수선사업부를 언론에 공개했다. 50여곳 언론사가 현장취재에 응했다. 현대중공업의 한 직원은 30년 가까이 일했지만 기자들에게 특수선사업부를 공개한 것은 사실상 처음이라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은 절실해 보였다. 현중은 올해 울산급 5, 6번함 수주전에서 한화오션에 밀려 탈락했다. 6월 국제해양방위산업전(MADEX·마덱스) 전시장에서 "우리가 수주하지 못 하는 일은 상상도 안하고 있다"던 현대였다.
쫓기는 곳은 국내 뿐 아니다. 한화오션은 그룹의 방산역량과 결합해 해외수주전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새로운 흐름을 만들겠다는 각오는 현대중공업 특수선사업부에 가득했다. 주원호 특수선사업본부장(부사장)은 "세계에서 이지스구축함을 건조하는 나라는 미국 일본 한국 뿐"이라며 "함정산업 측면에서도 세계에 내세울만한 것이고 우리 수출경쟁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알리지 않았는데 적극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미 해군이 감탄한 정조대왕함 =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7월 윤석열 대통령 내외가 참석한 가운데 진수식을 가진 정조대왕함에 기자들을 안내했다. 정조대왕함은 국가전략자산인 '이지스구축함 배치Ⅱ' 1번함이다. 2019년 수주한 후 2021년 착공, 내년 말 해군에 인도될 예정이다. 진수식까지 마친 지금은 시험평가 중이다.
함정은 건조기간 못지않게 시험평가 기간이 길다. 건조는 1년 반 정도, 시험평가는 2년 정도다. 실전 투입됐을 때 정상적인 운영이 가능할지 꼼꼼히 점검하는 것이다.
현중 관계자는 "미 해군 7함대 사령관이 정조대왕함을 보고 '멋지다'고 감탄했다"고 소개했다. 미국은 이지스구축함 체계를 개발했고, 자국에서 건조도 하고 있다.
현중은 정조대왕함이 지금까지 나온 이지스함과 다른 몇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우선, 해군의 첫 번째 구축함시리즈인 세종대왕급(배치 1)보다 규모가 커졌고, 대잠수함 방어·공격능력이 보완됐다.
정조대왕함은 앞선 구축함들보다 선체 길이가 4m 긴 170m다. 용량이 큰 '통합소나 체계'와 '하이브리드 전기추진체계 엔진' 등을 탑재했다.
'통합소나체계'는 기존 고주파 기반 소나체계에 비해 탐지거리를 획기적으로 늘린 저주파 기반으로 변경한 것이다. 추진체계는 가스터빈 엔진 4대에 전기 추진체계 2대를 탑재해 일반 항해 때는 연료를 절감할 수 있다.
하이브리드 추진체계를 갖추면서 소음이 획기적으로 줄고, 스텔스 선체에 '장거리 대잠어뢰 홍상어'를 탑재해 대잠 방어·공격 능력이 높아졌다. 해상작전헬기 격납고도 두 개로 늘었다.
정조대왕함은 해상에서 적의 탄도탄을 탐지 추적, 요격까지 할 수 있는 '해상기반 기동형 3축 체계의 핵심전력' 역량을 갖췄다. 한국에선 최초다. 7~12㎞ 고고도에서 탄도미사일 탄도까지 식별할 수 있다.
국내 기술로 개발한 함대지유도탄과 성능이 향상된 신형 해상유도무기, 한국형수직발사체계 등도 처음 탑재해 육·해·공 대응능력이 향상됐다.
여기에 함정 디자인도 뛰어나다. 적을 위압할 기세가 된다면 모양도 아름답고 멋지게 디자인하겠다며 함수부문 디자인에 신경을 썼다. 정조대왕이 수원화성의 군사적 능력과 디자인을 조화시킨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주 본부장은 "군함도 세계 1등 조선소에서 만들면 다르다는 평을 들을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다기능·복합전투 요구 담당하는 전투체계통합팀 = 현중은 정조대왕함이 한 척의 배가 아니라 해상의 합동부대라고 강조했다. 함정 한 척이 다기능·복합전투체계의 집결체라 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무기체계를 탑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잠·대함·대공·대지 능력까지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무기체계와 이를 운용하는 전투체계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이는 '체계통합'은 함정의 건조 설계단계에서부터 구현해야 한다. 국내 기술로 개발된 무장·운영체계에 미국에서 도입한 이지스 전투체계도 통합해야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현중은 이지스구축함 1번함인 세종대왕함을 건조할 때부터 기술인력 30여명이 참여하는 전투체계통합팀(ITT)을 운영했다. 미 해군과 록히드마틴으로부터 세종대왕함 이지스 전투체계를 도입할 때 한국정부가 주목했던 핵심기술 중 하나는 이지스 전투체계를 함정 플랫폼에 통합시키는 능력이었다. 미 해군도 전투체계 제작사와 조선소 인원이 주축이 되는 ITT 조직을 권고했다.
이지스구축함은 90여 종목에 달하는 엄격한 인수 시험절차를 진행한다. 이 전체 과정은 ITT 인력이 수행한다.
세종대왕함 건조 당시 현중은 다기능위상배열 레이더를 선체에 부착하는 기술을 자체 설계해 완성했다. 이전의 회전형 레이더와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이었고, 미국측 실무자는 자신들의 설계도를 활용할 것을 제안했지만 독자기술로 설계해 성공한 것이다. 현중은 "이 과정을 거쳐 우리는 이지스구축함에 대한 독자적인 설계 기술을 보유하게 됐고, 한국형 이지스구축함의 개발까지 추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현중 ITT는 사업 계약단계부터 연구개발 기본설계 상세설계 건조 탑재 검사 시험 등 전 과정에 참여한다. 미국의 ITT가 장비 탑재 후 가동에 들어간 후 역할을 수행하는 것과 차이다. 현중은 "전투체계 전 분야에 대한 통합 업무능력을 갖춘 한국 ITT는 축적된 경험과 사업 이해도, 기술력을 바탕으로 이지스구축함 건조사업에 참여하는 한미 기술진을 선도하는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중 ITT는 미 해군, 록히드마틴, 한국 해군, 방위사업청, 국방과학연구소 및 국내 방산기업들과 함께 함정의 주요한 기술적 문제를 사전에 해결하고 함상 시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지원하고 있다.
현중은 미래 방산을 위해 '유무인복합체계' 개발에도 집중하고 있다. 미래형 함정은 선체, 추진체계, 무장 및 센서체계, 스텔스 및 방호체계 등에서 많은 변화가 예상되고, 이런 변화는 조선사에 큰 도전과제다.
현중은 지난 6월 부산에서 열린 마덱스에서 무인항공기(UAV), 무인수상정(USV), 무인잠수정(UUV) 등을 활용해 해상·수중·공중에서 무인정찰임무 등을 수행할 수 있는 무인전력지휘통제함 개념을 공개한 바 있다.
◆'평화를 지키는 힘' 해외로 수출 = 현중의 조선기술과 체계통합능력은 '평화를 지키는 힘'으로 해외로 수출되고 있다.
22일 현중 울산조선소에서 한국과 필리핀 양국의 해군 및 방산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3200톤급 필리핀 초계함 1번함 기공식이 열렸다.
이 초계함은 길이 118.4m, 폭 14.9m, 순항 속도 15노트(28km/h), 항속 거리 4500해리(8330㎞)에 이르는 최신예 함정으로 대함미사일과 수직발사대, AESA 레이더 등 첨단 무기체계가 탑재된다. AESA 레이더는 공중·지상 등 다수의 표적을 동시에 탐지 식별 추적할 수 있는 다기능레이더다.
필리핀 초계함 2척은 2024년 진수를 거쳐 2025년까지 필리핀 해군에 인도될 예정이다.
앞서 필리핀 정부는 해군 현대화와 전력 증강을 위해 호위함 6척과 초계함 12척을 확보하는 '호라이즌'(Horizon) 사업을 추진하면서 현중에 호위함 2척(2016년), 초계함 2척(2021년), 원해경비함(OPV) 6척(2022년) 등 총 10척의 함정을 발주한 바 있다.
이날 행사에는 토리비오 두리나얀 아다시 주니어 필리핀 해군참모총장이 직접 참석해 자국 초계함의 건조 현황을 살피고, 필리핀 해군 현대화를 위한 협력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현중에 따르면 필리핀 해군참모총장은 "현중은 필리핀 해군 호위함 2척을 건조했을 뿐만 아니라 현재 초계함과 원해경비함을 건조하며 필리핀 해군의 현대화사업과 호위함의 유지·보수·운영(MRO)에도 적극 기여하고 있다"며 "앞으로 함정 건조와 함께 교육훈련, 기술이전, 기존함정 성능개량 등 서비스 부문에서도 협력하며 강한 파트너십을 지속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주원호 본부장은 "필리핀이 자국 해군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10척의 수상함을 우리에게 발주했다는 것은 그만큼 현중이 잘 하고 있다는 것을 평가받은 것"이라며 "한번 발주한 나라는 우리에게 다시 발주하고 있다, 동남아 중동 남미를 넘어 유럽까지 수출시장을 확대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현중은 내수시장과 함께 수출시장을 확대해 현재 7000억원 수준의 특수선사업부 매출액을 2030년까지 2조원 규모로 확대할 계획이다.
현중은 미국 동남아 등에서 이미 호평을 받고 있는 수상함 뿐만 아니라 잠수함 수출에도 자신감을 보였다. 현중은 6월 마덱스 기간 중 밥콕 캐나다와 '캐나다 수출용 잠수함 사업을 위한 기술협력합의서'(TCA)를 체결하기도 했다.
주 본부장은 "잠수함은 계류 교육훈련 운영 등 여러 부문을 종합해 패키지로 수행해야 하는 종합산업"이라며 "현중은 소·중·대형 잠수함 건조기술을 함께 갖고 있는 세계에서 몇 안되는 조선소 중 하나인데다 리튬배터리기술까지 갖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함정산업 전반의 변화는 변수다. 특수선사업부 최태복 이사는 "미국 유럽 등에서 인건비 비중이 올라가면서 함정산업을 유지하기 어려워 지고 있다"며 "이런 흐름은 우리가 미국 등을 대체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지만 미국처럼 어려워질 수도 있는 위기 징후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현중은 위기를 넘어설 수 있는 국내 함정산업 생태계 설계가 중요하다고 보고, 개선책을 고민하고 있다.
한편, 현중은 1975년 한국 최초의 전투함인 '울산함' 개발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이지스함 5척, 한국형 구축함 3척, 호위함 12척, 초계함 6척, 잠수함 9척, 경비·구난함 31척, 지원함 7척, 수출함 14척 등 102척의 함정을 건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