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브로커 도화선 탁씨, 과거에도 로비

2023-11-30 11:30:59 게재

조폭 출신 브로커 통해 금품·향응 … 경찰관 3명 기소돼 유죄 확정 판결

광주지방검찰청이 전현직 경찰관들을 대상으로 수사무마, 청탁 등 이른바 '사건브로커'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이 사건은 코인 사기를 저지른 탁 모씨에게서 시작됐는데, 탁씨는 13년 전에도 경찰관들에게 로비를 벌여 효과를 본 이력이 있었다.

30일 경찰과 법조계, 탁씨와 관련된 사건 판결문 등을 토대로 취재한 결과 탁씨는 2000년대 중반부터 크고 작은 사건으로 경찰 수사선상에 올랐다.

탁씨는 2010년 사기죄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집행유예 기간 중에도 다시 사기를 저질러 징역 8개월, 2014년에 사기죄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는다. 이후 2016년 강도상해와 사기죄로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2심에서는 6개월이 감형됐다. 출소한 탁씨는 다시 코인사기로 기소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카드깡 등 여신전문업법 위반이나 온라인 게임아이템 사기 사건, 중고 사기 등 잡범에 가까웠다. 2010년 전후해 탁씨는 장 모씨가 제작한 게임 해킹 프로그램을 판매했다. 인기포털사이트의 도박 게임에서 상대방 패를 엿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프로그램은 오류 투성이었고, 구매자들은 환불을 요구했다. 탁씨가 응하지 않자 구매자들은 고소장을 제출했다.

◆로비하자 '혐의 없음' = 경찰 수사를 받던 탁씨와 조직폭력배 출신 김 모씨가 연결됐다. 충장OB파 행동대원 출신인 그는 여러 경찰관들과 친분을 과시하며 "무혐의 처분을 받아주겠다"고 호언장담했고, 탁씨는 김씨에게 1500만원을 건넸다. 하지만 탁씨는 2010년 9월 구속됐다가 피해자와 합의하면서 1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됐다. 추가 피해자들의 고소도 이어졌다. 이대로라면 실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높았다. 김씨는 수년간 친분을 쌓아둔 광주 동부경찰서 경찰관 박 모씨에게 연락했다. 박씨는 다시 광산경찰서 수사관 전 모씨를 소개해줬다. 전씨는 탁씨 사건 담당자다.

석방된지 3일 만에 탁씨는 광산경찰서를 찾았다. 탁씨는 전씨와 전씨의 팀장인 임 모씨에게 식사와 향응을 접대했다. 이후 전씨는 그랜저 승용차를 사달라고 요구했고, 탁씨는 렌터카를 조달해 비용을 대신 냈다. 두달뒤 전씨는 탁씨 사건에 대해 '혐의 없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로비는 성공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경찰관 박씨는 2013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 수재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1, 2심에서 징역 1년 2개월 선고받았다. 또 담당 수사관 전씨는 수뢰후부정처사와 부정처사후수뢰 등의 혐의로 기소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탁씨가 향응을 제공한 자리에 합석한 팀장인 임 모씨는 선고유예를 각각 선고받았다. 조폭 출신 브로커 김씨 역시 변호사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아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피해자들과 범행 모의 = 사건 무마가 화근이 됐을까. 수사 과정에서 탁씨와 합의를 했지만 해결되지 않은 다른 피해자들이 있었다. 일부가 피해 보상을 요구하며 탁씨를 집요하게 뒤쫓았다.

2012년 9월 탁씨는 자신과 함께 인터넷 사기를 저지르던 A씨가 생각이 났다. 피해자 B씨에게 "A씨가 현금이 많은데 지명수배된 상태라 돈을 빼앗아도 신고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바로 한팀이 됐다. 문제는 A씨 덩치가 크고 날렵해 경찰관들도 뿌리칠 정도라는 점이다. B씨는 여수에서 활동중인 폭력조직인 중앙파 조직원들에게 2000만원을 주겠다고 끌어들였다. 탁씨는 A씨를 유인했다. B씨가 부른 조폭들은 A씨를 3시간 동안 폭행한 뒤 5600만원을 뜯어냈다. 다만 탁씨는 자신도 납치를 당한 것처럼 A씨를 속였다.

2015년 광주지검 목포지청은 탁씨를 강도상해와 사기죄로 기소했고, 1심은 징역 4년, 2심은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2심 판결에 문제가 없다며 탁씨의 상고를 기각했다. 탁씨와 한팀을 이룬 중앙파 조직원들도 줄줄이 재판에 넘겨졌다.

◆경찰관 2명 추가 구속영장 청구 = 탁씨는 조폭 출신 브로커인 김씨에서 사업가 성 모씨로 갈아탔다. 김씨가 하위직 경찰관들과의 관계를 통해 탁씨를 도왔다면 성씨는 고위직과의 친분을 내세웠다. 이는 그동안 경찰관에게 뇌물 등을 제공하면서 혜택을 받은 학습 효과 때문이다. 수차례 교도소를 들락거리면서 탁씨의 사기 범행도 커졌다. 탁씨는 게임아이템이나 중고물품을 팔겠다며 구매희망자들에게 돈을 빼돌리는 잡범이었지만 점점 사기액수도 커졌다.

'사건브로커'를 수사하는 광주지검 반부패강력수사부는 29일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금융범죄수사대 소속 팀장급 경찰관 C씨에 대해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를 적용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C씨는 탁씨의 코인사기 사건 담당 팀장이다. 검찰은 지난달 C씨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한 뒤 그를 참고인에서 피의자로 전환한 바 있다. C씨는 결백을 주장했다. 서울경찰청도 "체크해 본 결과 큰 문제점이 없다"고 해명한 바 있다. 검찰은 C팀장이 퇴직한 장 모 전 경무관에게 탁씨 사건을 알려준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장 전 경무관은 현재 구속된 상태에서 수사를 받고 있다.

한 현직 경찰관은 "쥐약을 먹여 경찰관을 옷 벗긴 상습전과자에게 간부들이 줄줄이 엮였다"고 탄식했다. 공직사회에서 '쥐약'은 뇌물을 말할 때 쓰인다. 그는 "피의자로 입건되면 과거 범죄 이력이 조회되는 데 담당자들은 탁씨와 관계자들의 뇌물수수 등을 알았을 것"이라며 "요주의 인물을 쳐내지 못해 국민들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검찰은 탁씨 사건무마를 전현직 경찰관들에게 청탁한 성씨를 중심으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이미 전현직 검찰수사관과 경찰간부가 구속됐고, 경찰은 승진청탁이 의심되는 일부 경찰관 7명에 대해 직위해제했다. 검찰 수사가 성씨의 관급공사 수주로 확대된 터라 수사 대상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오승완 김선일 방국진 기자 osw@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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