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송현장 촬영은 정당한 노조활동 "해고는 부당노동행위"

2024-01-04 11:14:06 게재

대표·업체에 벌금 500만원씩

노동조합을 조직하려 했다며 근로자를 해고한 물류업체가 부당행위로 처벌받게 됐다. 이 업체는 배송현장 촬영을 문제 삼았지만 법원은 정당한 노조활동이라고 판단했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8단독 박 민 판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서진물류 대표 정 모씨와 법인에 각각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정 대표 등은 한 대형마트와 위탁계약을 맺고 운송 업무를 하면서 배송기사 A씨와의 계약을 부당하게 해지한 혐의로 2022년 5월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마트산업노조의 온라인배송지회장이었다. 마트산업노조는 2020년 초 코로나19 확산으로 배송 물량이 폭증한 상황에서 기사들의 업무현장을 촬영하기로 했고 A씨는 동료 기사와 노조 관계자를 연결해줬다.

2020년 3월 이 관계자가 A씨 동료 차량에 탑승해 물품을 지정된 장소에 놔두고 가는 배송 과정을 촬영하던 중 상품을 가지러 나온 고객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고객은 온라인 카페에 동의없이 촬영이 이뤄졌다는 항의 글을 올렸고 대형마트측이 재발방지 대책 등을 요구하자 서진물류는 A씨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서진물류측은 재판에서 "회사와 협의 없이 외부인인 노조 관계자를 운송 차량에 탑승시켜 무단 촬영을 하게 해 회사이미지를 크게 실추시켰다"며 부당노동행위가 아니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는 회사가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해고사유일 뿐 실제는 근로자의 정당한 노조활동에 대한 부당노동행위라고 판단했다. 배송물량이 급증하는 가운데 기사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정당한 노조 활동의 일환으로 촬영이 이뤄졌다는 이유이다.

박 판사는 "노조지회장으로서 언론기자를 배송차량에 동승시켜 촬영하게 하는 것은 코로나19확산 상황에서 배송기사의 업무실태에 대한 방송사 취재에 적극 협조한 것일 뿐"이라며 당초 비대면 배송 장면만 촬영하기로 계획한 만큼 고객 무단 촬영을 의도하진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A씨가 회사의 관리업무를 계속하는데 문제가 있었다거나 회사에 중대한 피해를 입혔다고 볼 수도 없다"면서 "회사가 촬영을 이유로 A씨와 계약 자체를 해지한 것은 심히 부당하다"고 짚었다. A씨는 지방방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한 후 중앙노동위원회의재심을 거쳐 복직 판정을 받았다. 사측은 행정소송을 냈으나 지난해 2월 패소가 확정됐다.
서원호 기자 o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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