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란 무엇인가 ⑧ 문희상 전 국회의장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어야 민주주의 … 민주주의가 없다"

2024-02-05 00:00:00 게재

“국가는 거친 파도 속 작은 배, 난파선 선장하면 뭐하나”

“정치가 없다 … 민주주의 퇴행,군사정권 때로 되돌려”

“김대중정신은 '통합' …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적”

“민주당, 위성정당 안 만들었다면 정권 잃지 않았을 것”

거대양당이 만들어놓은 반목과 대립 구도에 문희상 전 국회의장(6선 의원)은 단호하게 “정치가 아니다”, “정치가 없다”고 했다. 한국 정치의 현주소를 ‘반대를 인정하지 않은 공포정치’로 규정하면서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도 했다. 이어 ‘민주주의·민생·평화 등 3대 위기에 빠진 한국호’를 거친 파도 속 ‘일엽편주’로 비유하며 거대양당에 “난파선의 선장하면 뭐 하냐”고 물었다. 문 전 의장은 특히 여야 내부의 ‘선당후사’를 ‘큰 오판’이라고 지적하면서 “당보다 앞선 게 국민, 국가”라고 꼬집었다. 또 대통령과 여당의 ‘책임정치’를 강조하며 ‘내 탓이오’ 정신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통합’을 시대정신으로 지목하면서 극단정치를 깰 수 있는 방법으로 ‘다당제’와 ‘개헌’을 제시했다. 민주당이 4년 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통과시키고는 힘을 합친 ‘1+4’ 진보연대를 포기하고 위성정당을 선택해 결국 정권을 잃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촛불혁명을 착각”해 개헌의 기회를 놓쳤다면서 “잘못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인터뷰는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에 있는 김대중재단 사무실에서 가졌다.

●국회의장 시절엔 ‘무신불립’을 많이 강조하셨다.

무신불립은 나의 정치 철학이고 원칙이다. DJ와 가장 닮은 말이기도 하다. 신뢰가 없다. 대통령이 하는 일이나 여당이, 야당이 하는 일을 믿기를 하나, 상호 간에 믿기를 하나. 정치가 없는 거다. 국민들 상호간에 서로 극단적으로 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누가 먼저인지도 모르겠다. 불신만 팽배해 서로 죽이는 세상이 됐다. 원래 정치는 상생하는 거다. 그냥 내버려 두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되기 때문에 질서를 잡으라고 정치가 생긴 거고 조정하라고 힘을 주는 거다. 그 힘을 가지려는 싸움으로 바뀌면 개싸움이 된다. 경쟁자가 아니라 적이 되는 거다. 그러면 신뢰가 없어진다. 신뢰의 ‘신(信)’자는 사람이 말하는 것이다. 말과 말이 통해서 서로가 맞다라고 했을 때 그걸 지켜야 되고 지키는 세상이 바른 사회다. 지금은 말을 못 믿는다. 말싸움은 당연히 있어야 된다. 민주주의는 말싸움을 하는 거다. 민주주의의 기본은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인정하는 거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본질은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 양심의 자유, 생각하는 사유의 자유, 비판의 자유다.

●민주당 비대위원장 시절, 기강을 잡되 징계하기보다는 대화를 종용했다.

기강이 없으면 흐트러지니까 그걸 막기 위해서 ‘개작두’(중국 판관 포청천의 판결 후 집행했던 사형 도구)를 쓰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하지만 개작두를 진짜 쓰면 그때부터는 공포의 질서다. 겁만 줘야 된다. 법치라는 게 뭐냐. ‘법이 있다’는 걸로 조용해지는 것이 법이다. 작두를 들이대고 이리 자르고 저리 자르고 그러면 모두를 적으로 삼는 거다. 민주주의의 본질은 ‘아니오’라고 할 수 있는 비판의 자유가 허용되는가다. 자유롭게 ‘아니오’라고 해야 될 책임이 있는 집단이 야당이다. 대통령은 반대를 용납해야 한다. 검찰은 사람들을 혐의자로 본다. 의심부터 하고 보는 거다. 여당은 책임지는 당이다. 일이 잘못되면 야당 탓이 아니라 내 탓이라고 해야 한다. 권력을 잡은 사람, 대통령은 되는 순간부터 ‘내 탓이오’라고 해야 한다. 대화도 대통령이 시작해야 된다. 대통령이 물꼬를 터야 한다.

●의장 시절 연동형 비례대표제 합의처리를 위해 힘썼다. 다당제에 대한 소신이 강했지 않나.

한국정치가 어디부터 문제인가를 봐야 한다. 선과 악의 끝없는 싸움은 구태다. 낡은 옛날로 돌아가는 민주주의의 퇴행이다. 많은 사람들이 혁명을 하고 죽고 감옥 가면서 만들어 놓은 민주주의가 퇴행해서 과거 군정 시대 그리고 독재 시대로 돌아가는 것보다 더한 상태가 돼 가고 있다. 막아야 된다. 극단적인 양당 체제가 문제이고 해법은 그걸 없애는 데에서 찾아야 한다. 상대를 인정하는 제도부터 출발해야 된다. 그러려면 다당제밖에 없다. 우리가 나아가야 될 목표는 다당제이고 개헌이다. 그래야 바뀐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어렵게 만들었지 않나.

4년 전, 그때도 오직 목표를 다당제에 두고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뭐라고 해도 참고 끝까지 기다렸다. 이유는 딱 한 가지. (과반인) 151명이 될 때까지 설득했다. 여당과 5개 야당 대표들을 모아 모임도 만들었다. 각 당 대표 부부동반 공관초청도 5번이나 했다. (표결) 하루 전에 151명이 됐다. 재차 확인했다. 병원에서 스텐트를 박고도 본회의장 단상에 올랐다. 죽는 한이 있어도 가겠다고 했다. 그때 만든 작품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다. 민주당이 연동형비례대표제를 제대로 정식으로 (운영)했으면 정권 잃지 않았다. 연합, 연대가 가능했다. 제3당이 있어야 연대가 가능하다. 그래야 이긴다. 151명으로 통과시켰기 때문에 그 법(연동형비례대표제)에 의해서 했다면, 정의당이 한 25석 가져갔다면 절대 정권 안 잃었다.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고 정의당과 연대했다면 정의당에서 대통령 후보를 내지 않고 우리와 연대하지 않았겠나. 그러면 정권은 안 잃게 되는 거다. 소탐대실이다. 지금도 다른 방법이 없다.

●정치권 계파가 자기 이익에 몰두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민주주의는 상대를 인정하면서 출발하는 거다. 서로 의견이 다르다는 것을 합의하는 거다. 이게 민주주의의 본령이다. 상대는 나와 달라야 되는 거다. 틀리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뭐가 틀렸는지는 지금 판단할 수 없다. 세상이 어떻게 달라질지 알겠나. 내 잣대로 단죄하는 것은 맞지 않다. 근거 없는 확신에 차서 하는 주장은 그냥 편집광이다. 단정적으로 얘기하는 사람은 독선과 독재에 빠질 가능성이 많은 사람이다. 계파가 이익 집단화돼 있다. 자기들끼리 뭔가를 가지려고 하는 욕심이다. 배제의 논리가 들어가면서 계파가 된다.

●이익을 위한 계파경쟁이 팽배하다.

선공후사라는 말이 있다. 선당후사는 큰 오류다. 당이 사(개인)보다 더 공익에 가까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당리당략에 따라 국가이나 국익이 나아갈 방향에 반하는 일은 그건 당파주의다. 당보다 더 큰 게 국가, 국민, 역사다. ‘정치는 왜 하는가’를 결론부터 얘기하면 ‘국익민복’이다. 국가의 이익과 국민의 행복이다. 그 다음은 ‘국태민안’이다.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은 안심해야 한다. 권력은 수단이다. 권력을 잡지 않으면 권한이 없고 권한이 없으면 일을 진행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을 잡아야 되는 건 틀림없다. 하지만 권력에 눈이 어두워 국가의 방향을 잃거나 국정 운영의 방향을 잃는 사람은 소탐대실하는 사람이다. 당장은 계파의 이익이 될지 모르고 당장은 정파의 이익에 부합할지 모르지만 역사가 있고 국가, 국민이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히말라야 산맥이 있어 200미터 정도의 에베레스트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이 될 수 있다는 얘기도 했다. 시대정신을 얘기하셨던 건데 이 시대의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첫째도 통합, 둘째도 통합, 셋째도 통합이다. 정치의 복원은 민주주의의 회복이다. 국민이 주인이라는 당연한 사실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여나 야나 국민을 생각한다면 이럴 수가 있냐. 나라를 생각한다면 이럴 수가 있냐. 당장 자기의 미래와 자기의 권력에, 다음 선거에서의 승부에 몰입돼 있다.

그러면 국민은 뭐냐. 주객이 전도됐다. 목적과 수단이 뒤틀려 꼬리가 몸통을 흔들고 있다. 꼬리는 그냥 잘라버리면 그만인 거다. 몸통이 흔들리면 어떡하나. 젖 먹을 힘까지 합쳐도 모자랄 만큼 위급한 위기가 도래하고 있다. 여야 둘 다 넋 놓고 싸우기만 바쁘다. 난파선 위에 선장 싸움하는 격이다. 난파되면 다 죽는데 선장 되면 뭐하나. 여도 야도 같이 붙어서 극단적인 싸움을 하면 4차 산업혁명은 어떻게 되며 기후 재앙은 어떻게 되며 인구 재앙은 어떻게 하며 평화 남북의 평화는 어떻게 되나. 일엽편주같은 신세다. 파도가 엄청나게 격랑으로 몰려 오는데 조각 배에서 서로 싸우고 있다.

● 다양한 목소리를 허용하고 통합하는 것은 결국 지도자 몫 아닌가.

‘반명’(반이재명)이라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있어야 된다. 그 이유만으로 잘라내면 그것도 문제다. 그건 여와 야가 없다. 한동훈 비대위원장도 자기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 논어를 보면 ‘군군신신 부부자자’가 있다. 임금 신하, 애비 자식이 자기 노릇을 해야 한다는 거다. 시대정신에 맞는 자기 역할 다 해내면 된다. 그 역할을 하는 말을 못하게 하면 그건 민주주의가 아닌 거다. 그걸 이유로 쳐내면 그건 더 안 된다. 대통령도, 이재명대표도 예외가 아니다.

●여야 모두 ‘김대중 정신’을 얘기한다. 김대중 대통령이라면 이 상황에 어떤 얘기를 했을까.

돌아가시기 직전에 경고한 얘기가 있다. 2009년 1월 동교동 신년 하례회 때다. ‘대한민국은 지금 3대 위기에 봉착해 있다. 민주주의의 위기, 민생의 위기 그리고 평화의 위기다’라고 했다. 그러고는 6월 15일 행사에서 마지막 유언처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이 경고의 말 때문에 내가 앞에 서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 했다. 겁나서 못하겠으면 욕이라도 하라, 뒤돌아서서 담벼락을 보고 욕이라도 하라고 했다. 수수방관, 가만히 보고만 있는 것은 민주주의의 적이다.

●개헌은 어떻게 현실화할 수 있을까.

좋은 기회를 놓쳤다. 문재인 대통령이 다 잘했다고 칭찬받아도 하나는 잘못한 거다. 촛불 혁명을 착각한 거다. 촛불 혁명은 문재인을 위해서 한 게 아니다. 모든 각계 각층이 다 모인 것은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려고 그랬던 거다. 개헌을 했어야 됐다. 자기 기득권 확보 내지는 그 유지에 급급했다. 결과적으로 정권을 잃었다. 국민의 마음이 다 한 곳으로 갔을 때인 촛불혁명의 진실은 한마디로 세상을 좀 바꿔달라는 것이었다. 제왕적 대통령에서 좀 벗어나라는 것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 책임에서 가벼울 수가 없다. 어떤 대통령이든 집권 초창기에는 (개헌)할 동력이 있다. 지금(윤석열 대통령)도 늦지 않았다. 최소한으로 국회의원 선거 제도라도 이번에 좀 제대로 갔으면 좋겠다. 우리 역사를 보면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 나는 마지막까지 역사와 국민을 믿었다. (문 전 의장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첫 조우에서 나눴던 1시간 30분 독대, 감옥에서 김 전 대통령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경험, 신당에 대한 평가 등은 내일신문 인터넷 홈페이지 www.naeil.com 에서 볼 수 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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