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뎌도 괜찮아” 구청+이웃이 지원
성북구 느린학습자 맞춤교육 시동
전문강사 양성하고 교육기관 연계
“여러 그림이 겹쳐 있습니다. 하나씩 찾아보세요.” “탁자 컵 우산….” “자동차도 있네요.” “잘 하셨어요. 시각적 지각능력이 떨어지는 경우에는 따라 그리기를 하는 게 좋습니다.”
서울 성북구 길음동 성북평생학습관 강의실. 발달 전문가가 지능 특성에 따른 다양한 지원방법을 소개하자 30명 가까운 수강생들이 한껏 몰입된다. 가끔은 “어렵다”는 웅성거림이 들리기도 하고 “작은 성공을 자주 경험하도록 유도하라”는 조언에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느린학습자를 돕는 전문강사에 도전한 주민들이다.
19일 성북구에 따르면 구는 느린학습자들 생애주기에 맞춘 평생학습을 지원하기 위해 지역에서 활동할 전문인력을 양성한다. 지난해 50명이 관련 강좌를 들었고 그 중 실습까지 마친 30명을 전문 강사단으로 위촉했다. 이달 초에는 그에 이어 심화과정을 진행했다.
느린학습자는 지적장애는 아니지만 인지·정서·사회적 기능이 취약하다. 학습부진은 물론 학교와 사회에 적응을 못하고 자립에 실패하는 등 전반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학급당 3명씩 아이들뿐 아니라 성인까지 전체 인구의 13.6%를 차지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다. 지난해 성북구 인구로 따지면 5만8000명 가량이다. 하지만 아직 개념이 생소해 제도적 지원이 미비하다.
성북구는 지난 2022년 말 느린학습자 지원을 위한 조례를 제정하고 지난해 전 생애를 아우를 수 있는 통합 지원 계획을 마련했다. 지역사회 내에서 함께 성장하고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특성과 어려움을 올바로 이해하고 지도할 수 있는 전문강사를 확보하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했다. 구 관계자는 “부모와 학교 관계자, 전문가 등 간담회를 하고 희망하는 지원 내용을 파악했는데 전문인력 양성을 최우선으로 꼽았다”며 “느린학습 자녀를 둔 부모와 평생학습관 수강생 등 모집 3분만에 마감될 정도로 인기였다”고 설명했다.
길음동 주민 안경선(53)씨도 그 중 한명이다. 코로나19 시기 원격수업을 따라잡지 못하는 초등학생 지원에 나섰을 때 느린학습자와 처음 맞닥뜨렸다. 안씨는 “3학년인데 글을 잘 못 읽고 수학 연산을 어려워하는 걸 보니 충격적이었다”며 “기초과정에 8회 실습, 심화과정까지 들으니 방향을 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 마음을 알고 속도를 맞춰 가는 게 중요하다”며 “자기주도학습 도서지도 이력을 십분 발휘해 아이들과 함께 천천히 가겠다”고 덧붙였다.
성북구는 느린학습자와 상호작용, 대화법과 감정 나누기, 문해·수학 지도 등 심화과정에 이어 역량강화와 실습 등 과정을 지속적으로 마련할 계획이다. 지역 내 각종 기관·시설과 연계도 강화한다. 느린학습자시민회 아동청소년네트워크 성북강북학습도움센터 교육복지센터 등이 부모교육과 중등 교육과정, 청년과 부모 모임, 연구·상담 전반에 걸쳐 힘을 모으기로 했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아동·청소년은 문해력 키우기에 집중한다. 사회성이 떨어지고 성범죄에 취약하다는 우려를 반영해 성인지학습을 시작했고 예술치료 연극 축구교실 등 방학에 맞춰 문·예·체 프로그램도 개설했다. 부모교육과 사회적 인식개선도 병행하면서 청년 등 다른 연령대까지 지원을 확대해간다는 구상이다.
이승로 성북구청장은 “느린학습자 아이들과 청년들이 학교와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평생교육 등 지원체계를 든든히 마련하겠다”며 “주민과 관련 기관·단체 모두가 힘을 모아 어려움과 고민을 해결하고 지역사회 내에서 단단히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