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동주’ 윤석열-한동훈 … 총선 뒤 재충돌할까
지난달 ‘사퇴 요구’ 충돌 뒤 “공멸 안된다” 휴전 들어가
한 위원장, ‘윤심 공천’ 견제 … 비례정당 대표도 ‘이견’
윤 대통령, 친윤 대표 원할 듯 … 한 위원장 선택 안갯속
검찰에 함께 근무하던 시절 ‘동지적 관계’였던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지난달 ‘사퇴 요구’가 불거질 만큼 거칠게 충돌했다. 4.10 총선을 앞두고 “이러다간 공멸한다”는 위기감에 분열을 봉합했지만, 공천을 둘러싼 물밑 신경전은 여전한 모습이다. 여권에선 총선 종료음이 울리는 순간 현재권력과 미래권력 사이의 주도권 분쟁이 재점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28일 여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의 최근 사이는 ‘오월동주’라는 표현이 적절해 보인다. 적대국가인 오나라와 월나라 사람이 한 배를 타고 있다는 뜻의 오월동주는 서로 미워하지만 눈 앞의 어려움이나 이득 때문에 잠시 협력하는 상황을 빗댄 말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이관섭 비서실장을 한 위원장에게 보내 사퇴를 요구했다. 한 위원장 측근으로 꼽히는 김경율 비대위원이 김건희 여사를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한데다, 한 위원장이 김 비대위원을 감싸는 듯한 태도를 보인데 대한 분노였다. 총선을 앞두고 공멸 위기감이 커지자, 두 사람은 전략적 휴전을 택했다. 화재 현장을 함께 찾고, 오찬을 하면서 갈등을 해소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총선 승리라는 절박한 공동 목표를 가진 두 사람은 이후 한 달 동안 최소한 표면적으로 더이상 충돌하지 않았다.
하지만 공천을 둘러싼 양측의 물밑 신경전은 치열하다는 관측이다. 한 위원장은 ‘윤심 공천’ 논란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대통령실과 내각 출신 인사들을 대부분 경선으로 내몰았다. 김은혜 전 홍보수석과 김오진 전 국토부차관 등은 험난한 예선전을 치르고 있다. 박민식 전 보훈부장관은 경선으로 몰리자, 27일 포기 선언을 했다. ‘용산 4인방’(주진우 이원모 강명구 조지연) 중 3명에게 단수공천을 주면서 ‘윤심’과 적절한 수준에서 타협하려는 뉘앙스도 풍기지만, ‘윤심 공천’이란 낙인은 최대한 피하려는 모습이다.
양측은 국민의힘 비례대표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대표를 놓고도 이견을 드러냈다. 용산쪽에서는 비례대표 공천권을 쥔 국민의미래 대표로 인요한 전 혁신위원장을 원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한 위원장은 이를 무시하고 사무처 당직자를 대표로 앉혔다. 국민의미래 공천도 자신이 주도하겠다는 뜻으로 읽혔다. 한 위원장은 지난 23일 “단 한 명도 내가 아는 사람을 (공천 명단에) 밀어 넣지 않을 것이다. 누구라도 사심 있는 생각으로 밀고 들어오면 내가 막겠다”며 용산의 개입 가능성을 미리 차단했다.
결국 두 사람은 총선이 끝나면 ‘오월동주’를 끝내고 승부를 가리려 들 것이란 전망이다. 임기가 3년 넘게 남은 현재권력이 벌써부터 미래권력에게 주도권 뺏기고 뒷방으로 밀려나지는 않으려 할 것이란 관측이다. 윤 대통령이 먼저 주도권 확보에 나설 것이란 얘기다. 친윤세력을 재결집시킨 뒤 당 지도부 장악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전당대회에서 ‘김기현 체제’를 만들었듯이 총선 뒤 친윤 대표를 옹립하는 시나리오에 무게가 실린다. 이 과정에서 한 위원장을 자연스럽게 2선으로 밀어낼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이다. 윤 대통령은 이후에는 인사권과 사정기관을 최대한 활용해 권력 누수를 막으려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 위원장의 선택은 안갯속이다. 만약 총선에서 이긴다면 그 ‘후광’을 업고 강력한 차기주자로 부상할 수 있을 것이다. 당내에도 친윤과 맞설 친한(한동훈)세력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보수층도 현재권력보다는 미래권력에 쏠릴 수 있다. 다만 한 위원장은 당장 현재권력과의 힘겨루기를 통해 주도권을 쥐기보다는 당분간 충돌을 피할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임기가 3년 넘게 남은 현재권력과의 재충돌은 ‘상처 뿐인 영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로 잠시 떠나 미래를 준비할 것이란 추측이 나오는 대목이다. 한 위원장이 재충돌을 감내하면서 미래권력 위상을 확실히 굳히려할 가능성도 남아있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