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은퇴시장에서 보험산업의 역할

2024-03-25 13:00:00 게재

내년에는 65세 이상 인구의 비중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가 시작된다. 하지만 고령세대의 빈곤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의 재정적자 우려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연금개혁도 기대난망이다. 국민건강보험과 노인장기요양보험의 보장 수준을 높이려고 노력하지만 이 또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공적 보장이 불안한 상황에서 개인은 자구책으로 금융산업이 제공하는 은퇴시장에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 연금저축 연금보험 퇴직연금은 물론 건강보험과 요양보험이 주목받는 이유다. 나아가 보험회사가 제공하는 요양서비스에도 이용자가 몰린다. 이렇게 형성되는 은퇴시장에서 금융회사는 각 업권별로 특색있는 상품 및 서비스를 내놓고 선택지를 넓히고 있다.

초고령사회 시작되지만 공·사보장체계 불안

그렇지만 소비자들이 체감하기에 현재의 은퇴상품 및 서비스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다. 연금상품은 수익률이 높지 않고 실손의료보험 등 건강보험이나 간병보험은 연령이 많을수록 보험료 부담이 늘어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크다. 보험회사가 제공하는 요양시설에 입소하고 싶어도 공급 부족으로 대기기간이 길다. 자조 노력으로 다양한 노후 리스크를 극복해보려 하지만 소득이 제한된 상황에서는 비용이 부담스럽다.

결국 지금 같은 방식으로 대응해서는 수요자인 소비자나 공급자인 금융회사 모두 만족하지 못할 수 있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후 리스크를 가장 폭넓게 다루는 보험산업의 역할 재정립 방안을 중심으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동안 보험산업이 은퇴시장에서 적절히 역할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상품, 세제혜택 등 단편적이고 단기적 관점의 시도가 많았다. 일부는 내부역량 문제로 다른 금융업권에 비해 경쟁력이 뒤지기도 했다. 또한 사회적 신뢰가 높지 못해 ‘닥치고 반대’에 부딪히거나 사회보장의 민영화로 오해를 사기도 했다. 그렇다 보니 노력에 비해 성과는 크지 않았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고 역할을 재정립하려면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

먼저 보험산업은 사회보장제도의 발전을 고려하며 전체 차원에서 노후보장을 강화하기 위한 종합적 비전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보험회사의 역할뿐만 아니라 보험산업 유관기관과 유통채널 역할까지도 포함해야 한다. 또한 다른 금융산업과 협력 및 경쟁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은퇴시장에서 성장을 모색하기에 앞서 수요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보험회사에서 제공할 수 있는 은퇴상품뿐만 아니라 은퇴준비 및 은퇴생활에 필요한 모든 사항을 조사해야 한다. 조사 내용도 공급자의 관점이 아니라 수요자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수요가 파악되면 상품과 서비스를 수요자 중심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역량을 갖추고 발빠르게 대응해야 한다. 영국 생명보험 시장은 최근 연금상품을 중심으로 빠른 성장을 해 세계 3위가 되었다. 기업연금 등의 자동가입제도와 확정급부형연금의 연금리스크 이전 거래가 활발했던 덕분이다. 어쨌든 영국 생명보험산업이 은퇴시장의 수요에 능동적으로 대응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노후보장 강화 위한 비전 세우고 실행해야

나아가 은퇴시장의 발전을 위한 제도개선에 소비자와 함께 나설 필요가 있다. 세제혜택 확대와 다양화는 물론 건강보험 및 간병보험의 적절한 운영에 필요한 의료비 심사 등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도록 정부에 제도개선을 요청해야 할 것이다. 최근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법이 합리적 소비자의 적극적 동의 덕분에 가능했던 것을 모범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일의 추진은 모든 이해관계자가 조화를 이룰 수 있어야 가능하다. 진행 과정이 다소 어려워도 의지를 갖고 해내야 한다. 이를 위해 보험산업의 인식 전환과 함께 담대한 시도를 기대해본다.

오영수 김·장법률사무소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