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창업 전형 보여준 TSMC 모리스 창

2024-04-01 13:00:03 게재

55세 창업, 글로벌 반도체 제조시장 석권 … WSJ “창업자 나이 덕분에 성공”

전세계에서 가치를 인정 받는 기술기업들은 놀라울 정도로 젊은 기업가들이 기숙사 방이나 차고, 식당에서 창업했다. 창업 당시 빌 게이츠는 19세, 스티브 잡스는 21세, 제프 베이조스와 젠슨 황은 30세였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 중 하나인 TSMC는 모리스 창이 55세에 창립했다. 이렇게 나이가 많은 사람이 이렇게 큰 가치를 지닌 기업을 만든 적은 없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0일 “모리스 창은 나이에도 ‘불구하고(despite)’ 성공한 게 아니라 나이 ‘덕분에(because of)’ 성공했다”며 “오직 한가지 일에만 몰두하며 중년기업가 정신의 놀라운 이점을 보여줬다”고 전했다.

TSMC는 기존 반도체 회사들과 달랐다. TSMC는 칩을 설계하거나 판매하지 않는다. TSMC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개념이었다. 당시에는 기업들이 직접 설계한 칩을 제조했다. 고객이 설계한 칩을 제조하자는 게 창 회장의 급진적인 아이디어였다. 자체 칩을 설계하거나 판매하지 않기 때문에 TSMC는 고객사와 경쟁하지 않는다. 고객들은 실리콘 웨이퍼에 회로를 새기는, 비싸고 정교한 시설(팹)을 운영할 필요가 없다.

칩 파운드리라는 혁신적인 사업모델은 TSMC를 세계 경제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만들었다. ‘반도체 전쟁(Chip War)’ 저자 크리스 밀러는 “창보다 더 영향력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일 없으면 삶도 없어”

1931년생인 모리스 창은 중국 본토에서 태어났지만 대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 1949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하버드대 영문학과에 들어간 그는 매사추세츠공과대에 편입해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1958년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에 입사하며 사회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는 집적회로(IC)가 발명되던 시점이었다.

그는 생산라인에서 가능한 모든 개선사항을 끌어내는 끈질긴 관리자로 명성을 얻었고, 덕분에 그의 경력은 빠른 궤도에 올랐다. 창은 회사를 다니며 스탠퍼드대에서 전기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60년대 후반 그는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IC사업부를 관리하게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반도체 부문 전반을 운영하는 자리에 올랐다.

창은 일 중독자였다. 자신의 추진력을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에게 인내심을 보이지 않는다. 현재 TSMC는 미국 애리조나에 공장을 짓기 위해 400억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하지만 여러 공정 지연과 인력 부족으로 프로젝트에 차질을 빚고 있다. 창은 “미국 내 TSMC의 일부 젊은 직원들의 업무태도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사람들은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가 그들의 나이였을 때는 몰랐던 말이다. 그때는 일이 없으면 삶도 없었다”고 회고했다.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에서 임원직급에 오른 창은 회사가 반도체에 집중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회사는 가정용 컴퓨터 등 소비자제품에 전념했다. 창은 “기업자원의 심각한 전용이었다”고 말했다. 회사가 반도체에 베팅하지 않는 데다 더 이상 승진이 불가능하다고 본 창은 1983년 텍사스 인스트루먼트를 사직했다.

그리고 전자제품 제조사인 제너럴 인스트루먼트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옮겼다. 하지만 입사 직후 자신이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창은 “나는 완전히 부적합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1년 뒤 제너럴 인스트루먼트도 그만뒀다.

당시 54세가 된 그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몰랐다. 그는 다시 일하고 싶었다. 몇해 전부터 대만정부가 그를 모셔가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대만의 경제전략가 리궈딩은 창이 대만을 대표하는 기술연구소 사장이 돼주길 바랐다. 창은 1985년 대만으로 건너갔다. 그는 “대만이 나에게 훌륭한 반도체 회사를 만들 기회를 줄 것이라는 확신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가능성은 있었다. 나에겐 유일한 가능성이었다”며 “그래서 대만으로 갔다”고 말했다.

미국 창업자 평균 연령 40대

중년 이후의 창업자 모리스 창은 예외에 속하는 걸까. 2020년 전미경제학회(AEA) 소속 경제학자들은 2007~2014년 미국에서 회사를 창업한 270만명을 파악한 다음 이들의 나이를 살펴봤다.

창업 당시 평균 연령은 41.9세였다.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의 경우 45세였다. 경제학자들은 또한 50세 창업자가 30세 창업자보다 큰 성공을 거둘 가능성이 거의 2배나 높았고, 성공 가능성이 가장 낮은 창업자는 20대 초반 창업자라고 결론 냈다.

이는 직관에 반하는 결론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스타트업 창업자의 이미지는 차고에서 무언가를 만지작거리는 스티브 잡스나 기숙사 방에서 코딩을 하는 마크 주커버그 등 젊은이를 떠올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MIT 슬론 경영대학원의 피에르 아줄레 교수 등 저자들은 “성공한 기업가는 젊은이가 아니라 중년”이라고 썼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애플 엔비디아 알파벳 아마존 메타의 창업자 대부분이 30세 이하였다. 이들은 풍부한 에너지와 지칠 줄 모르는 야망, 미래를 내다보는 비전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이들에게는 주의를 분산시키거나 위험에 대한 욕구를 감소시키는 주택담보대출, 가족에 대한 의무, 기타 성인으로서의 책임감 같은 것이 없다. 창 본인도 과학과 기술 분야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더 혁신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업에서는 나이가 많을수록 좋다. 40~50대 기업가들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을 만큼 활력이 넘치지는 않지만, 실제로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한 경험이 있다. 아줄레 교수는 “실제 직업을 가지고 있어야만 가질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다”며 “기업 고객의 문제를 가까이서 직접 겪어봐야 해결책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20대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고객의 성공 지원하는 게 성공의 열쇠

모리스 창은 반도체 업계에서 30년 경력을 쌓은 후 삶의 뿌리를 대만으로 옮겼다. 그는 전세계 누구보다 반도체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특히 대만에서는 그를 따를 자가 없었다. 그는 대만에서 반도체 회사를 창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창은 “그것이 바로 TSMC의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창은 TSMC의 사업모델을 고민했다. 우선 ‘될 수 없는 것’을 배제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는 “텍사스 인스트루먼트나 제너럴 인스트루먼트와 같은 훌륭한 회사는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텍사스 인스트루먼트는 반도체 생산의 모든 부분에 관여했다. 하지만 이 모델은 대만에 적용될 수 없었다. 유일한 방법은 대만의 강점을 활용하면서 여러 약점을 완화할 수 있는 사업모델을 갖춘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회사를 만드는 것이었다.

창은 대만이 칩 공급망에서 정확히 1가지 강점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10년간의 데이터를 연구한 결과, 창은 실리콘 웨이퍼 제조에서 대만의 수율(투입량 대비 완성품 비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대만의 수율은 미국보다 거의 2배 높았다. TSMC의 잠재적 경쟁우위는 오직 칩 제조뿐이라고 믿었다.

순수 칩 파운드리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건 제너럴 인스트루먼트 근무 당시 만났던 벤처투자자 겸 반도체 전문가 고든 캠벨 덕분이었다. 캠벨은 팹 구축과 운영의 어려움, 비효율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스타트업은 칩을 설계하고 제조는 아웃소싱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이는 당시 반도체 업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창은 1987년 TSMC를 창업했다. 파격적인 사업모델을 기반으로 TSMC를 구축할 수 있었던 통찰력은 그의 경험과 인맥, 전문성에서 비롯됐다. 그는 반도체 업계를 혁신할 만큼 깊은 이해도를 갖고 있었다.

창은 “TSMC는 사업모델의 혁신이었다”며 “이런 종류의 혁신에는 나이 많은 사람이 젊은 사람보다 훨씬 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TSMC의 창립정신은 ‘고객의 파트너’가 되는 것”이라며 “이 원칙은 오늘날까지 파운드리사업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TSMC 성공의 열쇠는 고객성공을 지원하는 데 있다”고 덧붙였다.

TSMC의 가치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지난 5년 동안 회사의 시가총액은 거의 4배 증가했다. 창이 소유한 약 0.5% 지분은 현재 약 35억달러에 달한다. 그는 “1985년 대만에 왔을 때 돈을 쫓아 온 것은 아니다. 내가 생각한 가장 높은 수준의 성공은 훌륭한 회사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보다 낮은 수준의 성공은 적어도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었다”며 “우연히 내가 생각했던 가장 높은 수준의 성공을 달성했다”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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