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시평

푸바오로 보는 젊은 세대들의 공감세상

2024-04-25 13:00:01 게재

한국 젊은이들의 깊은 사랑을 받아왔던 판다 푸바오가 양국 협약에 따라 귀국하게 되면서 세간의 높은 관심을 샀다.

2020년 한국에서 태어난 푸바오의 귀국 길은 중국 언론에서도 보도되었고 특히 ‘푸바오 할부지’의 진심어린 푸바오 사랑은 중국 네티즌들에게도 깊은 감동을 주었다. 얼어붙은 한중관계에 오랜만에 봄빛이 스며드는 느낌이라 할까.

국제 우호의 사절, 판다

판다는 중국에서만 생존하고 있는 희귀종 동물이다. 2024년 현재 1900여 마리에 불과하고, 이 중 해외 10여 개국에 50여 마리 정도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판다는 중국에 있어서 국보로 여겨진다.

신중국 수립 이후에야 판다에 대한 체계적 보호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특히 1980년대 이후 판다의 생존환경 악화되고, 세계적으로 멸종위기 동물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중국의 판다 해외 기증은 현재 임대형식으로 전환되었다. 그 심사 절차도 많이 까다로워졌다.

냉전시기 중미관계에서 나타난 판다의 일화가 유명하다. 1972년 2월 리처드 닉슨 대통령 방중을 계기로 중국은 미국에 판다 기증을 약속했다.

두달 뒤 미국 언론들의 생중계 속에서 한 쌍의 판다가 워싱턴 국립동물원에 정착했다. 대통령 부인 팻 닉슨 여사가 ‘판다 열풍’(pandamonium)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낼 만큼 판다는 미국 사회의 인기를 끌었고 그해 만해도 100만명에 달하는 관람객이 판다를 찾았다고 한다. 이처럼 ‘판다외교’는 중미 간의 ‘핑퐁외교’에 못지않게 국가간 관계 개선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물론 판다가 중미관계를 개선시켰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일부에서는 구소련 견제에 대해 힘의 논리로 중미관계 개선을 단순화 시키지만 실지 그 이면에는 보다 복잡한 시대적 배경이 작용하고 있었다.

1970년대 초기 미국은 혼돈의 시기를 겪고 있었다. 인종 차별 해소를 위한 흑인 민권운동,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전운동이 최절정을 이루던 시기였다. 중동사태 및 제1차 석유위기를 통해 세계가 보다 복합적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현실을 인지한 것도 이 시기를 즈음해서다.

이 시기 미국은 미래를 향한 시대적 성찰에 들어갔고 지극히 수학적 계산에만 의존하던 행태주의를 탈피해 지식체계 이면에 내재한 권력의 본질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이후 사람들은 점차 극화된 이념을 초월하여 분절된 세상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노력을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중미 ‘판다 외교’의 시대적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한중 젊은 세대들 연결해주는 공감의 장

2024년 4월 3일, 한국에서 태어난 판다 푸바오의 귀국은 한중 양국 여론의 시선을 모았다. 한국에서는 푸바오 배웅행사가 크게 열렸고 한국은 물론 중국 언론들도 이 과정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중국 누리꾼들은 한국 젊은이들의 푸바오에 대한 깊은 애정을 실감했고 특히 푸바오의 적응을 위해 중국어까지 능란하게 구사하는 ‘판다할부지’에 감사해 했다.

비록 공동으로 개최하는 행사는 아니었지만 푸바오는 분명 한중 양국 젊은 세대들을 연결해주는 중요한 공감의 장이 되었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음모론적 시각에서 중국의 공공외교를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게 나왔다. 어쩌면 지난 1970년대의 전후인 냉전시대를 다시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세계는 무력충돌로 얼룩지고 이념을 중심으로 국제사회가 파편화, 진영화되고 있다. 오늘의 중동사태를 보더라도 이들이 강조하는 이념과 가치는 도대체 무엇인지 가려보기 어렵다. 이념외교를 애써 강조하지만 오로지 당파적 정통성 재구성을 위한 수단으로밖에 이해되지 않는다.

젊은 세대들은 푸바오와 같이 소중하면서도 순수히며, 모든 것에 호기심과 상상력을 갖고 신비한 세상을 알아가려는 본능적 감성을 가진 세대들이다. 이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가느냐는 앞으로의 세상을 어떻게 바꿔 갈 것인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기성세대는 혼탁한 세상을 살아오며 형성된 편견과 선입견으로 젊은 세대들에게 굴레를 씌우려 할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들만의 시각으로 서로의 사람 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갈 수 있는 사회적 공간을 만들어 줘야 한다.

이른바 전문가라고 하는 이들이 이념논쟁이나 여론조작에 앞장서고 있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그러나 푸바오에 대한 한중 양국 젊은이들의 애정을 보면서 젊은 세대들의 서로 교감할 수 있는 공감대가 점점 확대될 것이며, 나아가 머지않은 앞날 푸바오의 ‘고향 나들이’도 기대해 본다.

퍄오둥쉰 연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