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흑자는 미국의 적자와 ‘거울상’

2024-06-12 13:00:03 게재

미국외교협회 브래드 세서 “탈세계화는 미신 … 잘못된 인식이 잘못된 정책 낳아”

수년 전부터 전세계가 지정학적으로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쪼개지고 있다는 공감대가 강화돼왔다. 이른바 ‘탈세계화(Deglobalization)’다. 유수의 언론들은 ‘글로벌 무역과 금융이 중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사우스와 미국 및 기타 서방국가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노스라는 점점 더 적대적인 블록으로 분열되고 있다’고 보도한다. 매년 열리는 세계경제포럼 주제는 ‘탈세계화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맞춰져 있다.

중국 장쑤성 롄윈강항에 늘어선 수많은 비야디(BYD) 전기차들이 수출선적을 기다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탈세계화 증거로 많은 이들은 △미국이 새로운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꺼리는 현상 △세계무역기구(WTO)가 감독하는 분쟁해결시스템의 약화 △무역을 제한하는 새로운 국가조치의 확산 △장단기 자본 흐름이 과거 정점에 비해 모두 감소하는 현상 등을 자주 인용한다.

하지만 탈세계화 주장은 데이터로 뒷받침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미국외교협회 선임연구원 브래드 세서는 최근 포린어페어스 기고에서 “각국 정부가 자국경제의 복원력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을 점점 더 많이 채택하고 있지만, 글로벌 경제는 여전히 주요한 면에서 세계화되고 있으며 특히 중국 공급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 의존도 더욱 높아져

세계경제가 탈세계화되고 있다는 생각은 2016년 미국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대통령 당선 이후 확산됐다. 트럼프는 2차세계대전 이후 자유무역의 가치에 대한 초당파적 합의를 거부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하고, 북미자유무역협정을 재협상해 자동차 무역의 원산지규정을 강화했다. 미국과 중국 간 무역의 약 3/5에 관세를 도입하는 등 정책 전환을 단행했다.

2018년 ‘트럼프 관세’ 도입 이후 중국의 대미수출은 감소했으며, 중국의 미국채 보유량도 줄었다. 하지만 이러한 지표는 두 나라의 진정한 상호연관성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세서 연구원은 “미국 데이터는 중국으로부터의 직접 수입이 감소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중국 데이터는 미국과의 직접 무역감소는 훨씬 적고 현재 대미수출이 증가하는 국가들에 대한 자국의 수출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국제결제은행(BIS)과 UC샌디에이고대학 캐롤라인 프룬드 교수가 트럼프 관세의 영향을 연구한 결과, 양국 간 관세의 가장 중요한 효과는 공급망을 늘리는 것이지 글로벌 무역을 축소하거나 중국산 핵심 투입물에 대한 미국의 근본적인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더 많은 중국 부품이 최종조립을 위해 말레이시아와 태국 베트남, 심지어 멕시코로 향하고 있다.

세서 연구원에 따르면 트럼프 관세 도입 이후 중국경제는 오히려 세계무역에서 더욱 중심에 자리잡았다. 이는 미국과 유럽의 전문가들이 종종 간과하는 지점이다. 2018년 말부터 2023년 말까지 5년 동안 중국의 제조품 수출은 2조5000억달러에서 3조5000억달러로 40% 늘었다. 2013년부터 2018년까지의 증가분 약 15%보다 훨씬 더 컸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수년간 중국의 GDP 대비 수출 비중은 하락세였지만 최근 수년간 다시 상승하고 있다. 중국의 제조품 수출은 팬데믹 이전 GDP의 약 11%에서 2022년 GDP의 14%까지 증가했다.

이러한 증가가 1회성으로 끝날 것이라는 예측은 빗나갔다. 2023년 전세계적으로 소비지출이 감소하면서 중국수출 증가세가 둔화됐지만 올해 1분기 수출량이 10% 이상 증가하면서 회복세를 보였다. 중국의 제조업 흑자는 더욱 극적으로 늘어 2018년 중국 GDP의 약 6%에 불과했던 것이 지난해 무려 10%로 증가했다.

팬데믹 이후 중국의 수출 호황은 세계경제가 탈세계화되고 있다는 주장을 약화시킨다. 중국은 여전히 다른 어떤 나라도 따라올 수 없는 규모로 상품을 생산할 수 있다. 10년 이상 지속된 부동산 호황이 끝난 후 중국은 수출용 공산품 생산에 더 많은 투자를 하면서 내수약화에 대응하고 있다. 대표적인 분야는 자동차다.

역사적으로 중국은 주요 자동차 수출국이 아니었다. 하지만 국내 자동차 수요가 감소하는 추세에 따라 중국은 불과 3년 만에 자동차 순수입국에서 세계 최대 자동차 수출국으로 변모했다. 이런 추세는 약화되지 않을 전망이다. 중국 최고의 전기차 제조업체인 비야디(BYD)는 수출을 늘리기 위해 생산능력을 2배 늘리고 있다. 현재 중국 조선소들엔 비야디가 발주한 막대한 규모의 자동차운반선들이 건조되고 있다.

조세회피 형식 띤 세계화 여전

하지만 무역만이 아니다. 세서 연구원에 따르면 세계화의 놀라운 회복력을 보여주는 또 다른 부문은 법인세 회피다. 현재 미국 제약사들은 유망한 신약에 대한 수익권을 세금이 낮은 관할권에 위치한 자회사에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의약품은 해외에서 제조된 후 미국에서 높은 가격으로 판매된다.

현재 미국에 가장 많은 의약품을 수출하는 나라는 중국이나 인도가 아닌 저세율의 아일랜드다. 2023년 미국은 캐나다 중국 인도 멕시코를 합친 것보다 2배 이상 많은 의약품을 아일랜드에서 수입했다. 그 결과 미국의 주요 제약사와 다른 다국적 제약사들은 거의 모든 수익을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반면 국내 법인세는 거의 내지 않거나 전혀 내지 않는 상황이다.

이러한 추세는 의약품을 넘어선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아일랜드는 미국 연구개발(R&D) 서비스 수출의 최대 글로벌 시장이기도 하다. 케이맨제도와 영국령 버진아일랜드는 미국 금융서비스의 최대 수출시장이며, 버뮤다는 미국의 주요 국제보험서비스 공급국이다. 2017년 국제통화기금(IMF) 연구에 따르면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외국인직접투자(FDI) 흐름이 회복된 건 주로 법인세회피지역을 넘나드는 자본이 꾸준히 늘었기 때문이다.

201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은 기업이 영세율 관할지역에서 수익을 창출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기 위해 세금규정을 바꾸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2020년 말 시행된 그같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조세회피를 통한 세계화를 막지는 못했다.

애플이 개척한 납세전략에 따라 미국의 주요 기업들은 자회사들을 ‘아일랜드 쇼어링’하면서 실효세율을 낮췄다. 그 결과 아일랜드에 본·지사를 둔 다국적기업들의 이익은 10년 전 연간 약 400억달러에서 현재 연간 1800억달러 이상으로 급증했다. 이는 아일랜드 실질경제 규모의 약 70%에 해당한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이익이 유로존 GDP의 1% 이상, 미국 GDP의 0.75%를 차지할 정도로 많다는 점이다.

세서 연구원은 “미국 중부지역의 탈산업화 배경에 중국이 있다는 점은 널리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미국 법인세법 역시 탈산업화를 이끌었다는 점은 그렇지 않다”며 “이익과 생산을 국외로 이전하는 조세회피전략을 쓰지 못하도록 막는다면 아일랜드와 싱가포르 등으로 떠난 미국기업들이 다시 본국으로 들어올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세계화, 줄어든 게 아니라 가려진 것

미국의 대중국 관세 인상에도 불구하고 세계경제는 여전히 긴밀하게 통합돼 있다. 트럼프 관세 이후 중국은 오히려 세계무역의 중심이 됐다. 미중 상호의존성은 줄어든 것이 아니라 가려진 데 불과하다.

예를 들어 미국의 대규모 무역적자가 없었다면 현재 8000억달러에 달하는 중국의 상품무역 흑자는 달성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적자는 더 이상 중국인민은행이 미국채를 직접 매입하는 방식으로 충당되지 않는다. 이제는 중국 수출업체들이 해외에 막대한 달러를 비축하는 형태를 띤다. 여전히 중국은 간접적으로 미국의 적자를 메워주고 있는 셈이다.

결국 중국의 흑자가 미국의 적자를 반영하는 거울상이라는 점은 미국과 중국 경제가 서로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여러가지 복잡한 형태 중 하나다. 경제지표에서 그 관계를 확인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을 뿐이다.

전문가들은 탈세계화라는 용어를 통해 세계경제의 변화를 간단한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현실은 더 복잡하다. 한쪽은 미국의 대규모 적자, 다른 한쪽은 중국의 대규모 흑자로 특징지어지는 글로벌 경제가 진정으로 분열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서 연구원은 “세계는 경제통합의 이로운 점과 해로운 점에 대해 건전한 토론을 벌여야 한다. 그같은 토론은 현대 글로벌 경제의 많은 특성이 여전히 통합을 더 많이 추진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실제 막대한 비용이 든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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