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장 후보 추천제’ 놓고 갈등빚나

2024-11-12 13:00:30 게재

조희대 대법원장, 사실상 폐지 수순

법관 설문조사 결과 84% 개선 필요

법관대표들 우려, 내달 9일 정기회의

조희대 대법원장이 내년 초 전국 법관 정기인사를 앞두고 김명수 전 대법원장의 핵심 정책인 ‘법원장 후보 추천제’에 대해 사실상 폐지 수순을 밟고 있어 법원 내부 갈등이 우려된다. 대법원장 자문기구인 사법정책자문위원회가 법원장 후보 추천제 개선의 필요성을 권고한 데 이어 전국 법관 여론조사에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84%를 차지한 것이다. 전국 법관들의 대표조직인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이런 움직임에 우려를 표하고 있는 가운데 다음달 정기회의에서도 논의할 예정이어서 그 결과가 주목된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소속 법원 판사들이 법원장 후보를 추천하는 ‘법원장 후보 추천제’와 관련해 본격적인 개선에 나섰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은 지난 1일 사법부 내부망(코트넷)에 ‘2025년 법관인사제도 운영 방향’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법원장 보임제도는 사법정책자문위원회의 건의 내용과 최근 실시한 전국 법관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등을 두루 참조해 합리적인 절차를 빠른 시일 내에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법원장 후보 추천제는 김 전 대법원장이 권한을 분산하고 각급 법원의 사법행정 민주성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2019년 도입했다. 각 법원별로 소속 법관들이 투표를 통해 법원장 후보 1~3명을 추천하면 대법원장이 최종 임명하는 제도다. 2019년 의정부지법과 대구지법에서 실시한 후 지난해 총 14개 법원으로 확대하는 등 범위를 넓혀왔다.

제도의 긍정적인 측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인기투표’ 가능성과 재판 지연 해소 독려와 같은 적극적인 행정이 어려워졌다는 지적이 많았다.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조희대 대법원장 취임 이후 첫 정기인사인 올해 법원장 인사에서는 촉박한 일정 등을 고려해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시행하지 않고, ‘훌륭한 인품과 재판능력 등을 두루 갖춘 적임자’를 보임했다고 밝혔다. 이어 2025년 이후 법관 정기인사에서도 추천제를 시행할지 여부를 검토해왔다.

대법원은 추천제의 긍정적 측면을 고려하면서도 충실하고 신속한 재판을 위해 사법행정권이 적절히 행사될 수 있도록 법원장 보임 제도의 합리적 개선방안을 검토할 방침이다.

앞서 대법원 사법정책자문위원회는 지난 9월 회의에서 법원장 추천제에 대해 “충분한 적임자 추천의 한계, 추천절차 진행 과정에서의 논란, 실시 법원의 절차적 부담 등에 대한 여러 의견이 제시되고 있어 합리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해 법조계에선 사실상 폐지 수순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이와 관련해 법원행정처는 지난달 21일부터 닷새간 전국 법관을 대상으로 인사제도 개선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법관 1378명이 응답한 이번 조사에서 84%(1150명)는 법원장 추천제에 ‘개선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개선할 필요가 없다’는 답변은 16%에 그쳤다. 그런데 사법정책자문위원회가 개선안으로 제안한 고법 부장판사와 고법판사도 지방법원장 후보로 천거될 수 있도록 하는 의견에는 복수 응답으로 21%(283명)와 32%(446명)만 찬성하는데 그쳤다. 대신 56%(768명)는 지금처럼 인사 이원화 취지를 고려해 지법 소속 법관만 후보로 천거되도록 제한해야 한다고 답해 법원장 후보 추천제 개선방안을 놓고 갈등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대법원장 자문기구로 전국 법원에서 선출된 판사들이 모인 회의체인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최근 법원장 후보 추천제 폐지 논의에 대해 우려하는 글을 코트넷에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법관대표회의는 법원장 후보 추천제가 민주적 사법행정 구현에 기여해 왔다며 이를 철회할 만한 근거가 있는지 의문이라는 입장이다.

법관대표회의는 이번 설문조사에 대해 “기존 추천제의 단점만 제시된 채 진행됐다”며 “설문조사의 구성이나 내용도 일정부분 정해 놓고 한 것 아니냐”고 불만을 드러냈다.

법관대표회의는 인사분과위원회의 논의를 거쳐 오는 12월 9일 정기회의에서 정식안건으로 상정해 ‘법원장 후보 추천제’ 관련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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