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세 노인 아들사랑 고백…관객 ‘눈물바다’

2024-11-25 13:00:20 게재

노원구 ‘나의 무대, 나의 이야기’ 심리극

전용 상담센터 이용한 주민들 속내 공유

“7년 전에 딸이 외국인 사위를 쫓아갔어요. 후련하기만 했는데 아내는 공항에서 대성통곡하더라고요. 당시에는 이해를 못했는데 아비로써 무심했다 싶어요.” “울컥했어요. 큰아이 결혼한 뒤 제주에 놓고 올 때 생각이 났어요. 외국도 아닌데….”

서울 노원구 상계동 노원구청 5층 소강당. 연극 한편을 관람한 뒤 소감을 나누는 자리에서 나이 지긋한 관객들이 자녀 이야기를 꺼낸다. 떨어져 살고 있는 아이를 떠올리며 떨리는 목소리에 직전까지 무대를 보며 눈물을 닦던 다른 관객들 역시 손수건을 찾느라 여념이 없다. “아이고!”하고 내뱉는 탄식에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이어진다. 노원구가 노년층 주민들 상담사례를 토대로 준비한 심리극 ‘나의 무대, 나의 이야기’ 공연 현장이다.

노원구가 노년층 주민들 집단상담 과정과 결과를 심리극 ‘나의 무대, 나의 이야기’로 선보였다. 사진 노원구 제공

25일 노원구에 따르면 ‘나의 무대…’는 60세 이상 주민 12명이 정신의학과 전문의와 집단 상담을 하며 이를 극으로 풀어내고 다시금 관객과 공유하는 방식으로 준비했다. 앞서 지난달 총 4주에 걸쳐 집단상담을 하며 무대를 준비해 왔다. 60대 중반부터 80대까지 12명이 매주 한차례 모여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봤다. 새로운 직장에서 열심히 뛰던 10년 전, 새벽부터 자정까지 고객을 응대하느라 아이를 돌보지 못했던 30년 전, 넉넉지 않은 집안환경 때문에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직업전선에 뛰어들었던 60년 전 이야기들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주인공을 한차례씩 경험한 뒤 가장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사례 하나를 정해 공동작품을 제작, 지난 14일 주민 6명이 무대에 섰다. 상담을 맡았던 김주현 전문의가 상담을 하는 의사이자 이야기를 엮어가는 연출자 역할로 함께했다.

모두를 눈물바다에 빠뜨린 주인공은 월계동 주민 송은헌(80)씨다. 그는 20년 전 네덜란드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현지 여성과 결혼을 하게 된 둘째를 두고 돌아서던 그날 기억을 끄집어냈다. 한국으로 돌아오던 날 아들은 출근해버렸고 송씨와 남편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돈 내외와 며느리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아들을 잘 부탁한다”며 “며늘아가 사랑한다”고 말은 했지만 내심은 한국으로 데리고 오고만 싶었다. 그는 “공항에 깜짝 등장한 아들에게 잘 살라고 당부했지만 마음은 천갈래 만갈래 찢어졌다”고 탄식했다. 울먹이는 고백에 객석에는 다시금 눈물이 차올랐다. 극을 통해 쓸쓸함을 털어낸 송씨는 “남은 생을 즐기며 행복하게 살아보겠다”고 다짐하며 무대를 마무리했다.

이날 관객들을 사로잡은 무대는 지난해 전국 지자체 가운데 처음으로 문을 연 노년층 전문 상담센터 1년 성과이기도 하다. 센터는 직업이 없어지면서 사회적 관계가 축소되고 가족과 갈등이나 관계 단절로 인한 고립·우울감을 다스리고 여생에 대한 긍정 요소를 강화하도록 돕는다. 오승록 구청장은 “반응이 폭발적이라 분소를 만들어야 할 정도”라고 말했다. 개별 상담을 받으며 심리극에 참여한 오명자(70·상계동)씨는 “나를 뒤돌아보고 좋은 사람들과 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며 “기회가 되면 나로 인해 상처받은 아들과 함께 상담을 받고 싶다”고 평했다.

이날 센터 관계자들과 상담원, 노인 관련 기관 종사자들도 관객으로 참여해 다시금 삶의 주인공이 된 주민들을 응원했다. 관객들은 “혼자 아프지 말고 소통하면서 마음을 치유하자”는 이웃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섰다.

오승록 노원구청장은 “어르신들이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어르신들이 다가올 날들을 기대하며 건강하게 사실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김진명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