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전체 온실가스 1/3 ‘식량 시스템’에서 발생
저탄소 식생활로 탄소 감축 기여 가능
육류 위주 식단 바꾸고 조리법도 변화
서울시, 기후테크기업 발굴·지원 나서
“우리나라 국민들이 즐겨 먹는 음식 가운데 탄소 발생량이 가장 많은 음식은? 바로 ‘곰탕’입니다.”
26일 찾아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컨퍼런스홀에서는 서울시가 개최한 저탄소 식생활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패널로 참석한 과학 커뮤니케이터 ‘울림’씨는 “7~8시간씩 오래 끓여야 맛이 나는 곰탕은 가스, 전기 등 에너지 소비가 많고 가축류 중 탄소 배출량이 가장 많은 소를 주재료로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학계에 따르면 소는 소화 과정에서 많은 양의 메탄을 공기 중에 내뿜는데 소 2~3마리가 내뿜는 메탄 양은 휘발유 자동차 한 대와 맞먹는다.
서울시가 저탄소 식생활을 주제로 박람회를 연 것은 전세계적인 탄소중립 흐름에 부응하기 위해서다. 2015년 파리기후협약 이후 탄소 저감은 모든 나라와 기업의 과제로 부상했다. 하지만 여전히 일반 시민들은 탄소중립에서 중요한 건 정부와 기업의 역할이라고 여긴다.
전문가들은 저탄소 식생활이야말로 시민들이 일상에서 탄소감축에 동참할 수 있는 빠르고 쉬운 길이라고 말한다. 울림씨는 “전세계 탄소 배출량의 26%가 ‘식품’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토지 이용부터 식품을 생산, 제조, 소비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과정까지 식량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지구 전체 탄소 배출량의 1/3에 육박한다는 것이다.
기후변화와 먹거리의 관계를 살핀 책 ‘탄소로운 식탁’의 저자 윤지로씨는 “이상기후는 먼 곳이 아닌 우리 식탁에서 시작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모두 채식주의자 되란 것 아냐” = 저탄소 식생활을 주장하는 이들이 ‘완전한 채식’만을 강조하는 건 아니다. 탄소 배출을 아예 하지 않을 순 없지만 줄이는 일에 동참하는 건 생각보다 쉽다는 것이다. 윤씨는 “소 보다는 돼지, 돼지 보단 닭이 키우고 식품화되는 과정에서 탄소를 적게 배출한다. 야채도 익힌 것 보다 날 것, 하우스에서 재배한 것보다 제철 야채를 먹는 것이 탄소 감축에 기여한다”고 말했다.
토론자들은 단번에 ‘비건(vegan. 채소 과일 해초 등 식물성 음식만 먹는 완전한 채식주의자)’이 되라는 얘기가 아니라도 말했다. 육류위주 식단은 야채 위주보다 3~4배 많은 탄소를 발생한다. 야채류도 익히거나 끓여서 먹을 때보다 날것으로 먹을 때 영양소 섭취가 잘 되고 조리과정에서 탄소 발생도 적다. 이 같은 차이를 인지하고 하루 한끼라도 야채식을 하고 고기도 탄소 배출이 적은 것을 선택하는 등 지금보다 탄소 배출이 적은 식단으로 조금씩 바꿔가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고기를 끊을 수 없는 이들을 위한 대체육과 배양육 제품도 속속 출시되고 있다. 주로 콩을 이용한 제품이 많은데 최근엔 푸드테크의 발달로 모양과 식감이 실제 육류와 비슷한 제품이 많이 출시됐다.
배양육은 말 그대로 배양한 고기다. 쌀에 육류 성분을 주입해 만드는 게 대표적이다. 소비자 선호에 맞게 근육과 지방 성분의 비율까지 조절할 수 있다.
◆젊은층 중심 건강한 식탁 확산 = 채식 위주 식단과 탄소중립에 공감하는 젊은층이 늘어나는 것은 저탄소 식생활 확산에 긍정적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서울시의 기후행동 스토리 공모전에 참가해 우수상을 받은 ‘비거닝 팀’ 야채청년(29. 비건 활동가)은 “원래 소시지와 햄 등 육류를 좋아했는데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 뒤 채식으로 전환했고 완전 채식을 한지 올해 4년째”라며 “내 몸도 건강해지지만 탄소중립을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비거닝 팀은 재래시장에서 씻지 않은 야채를 구입해 고기 성분이 없는 소스로 음식을 만들었고 이를 나눠 먹으며 탄소 저감의 필요성과 실천 방안을 토론하는 과정을 기록, 공모전에 출품했다.
◆저탄소 중심으로 식품산업 전환 = 저탄소에 기반한 새로운 식품 시장이 대한민국의 신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귀담아 들을 만하다. 전문가들은 인류의 식량 시스템 전환은 ‘피할 수 없는 미래’이며 이 과정에서 K푸드 열풍을 확장할 수 있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서울시는 저탄소 식생활과 함께 기후변화에 대응할 기술 및 기업 발굴에 힘을 쏟고 있다. 박람회 기간 열린 ‘2024 서울 기후테크 컨퍼런스’도 이 같은 노력의 일환이다.
시에 따르면 기후테크 분야에서 세계적인 유니콘 기업(매출 1조원 이상 신생기업)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2019년 미국에서 설립된 ‘워터쉐드’는 온실가스 배출량 측정과 지속가능성을 지원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다수의 글로벌기업에 공급하고 있다. 영국의 신재생에너지생산기업 ‘크라켄플렉스’는 에너지 소비량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해 고객들에게 에너지절약 솔루션을 제공하는 사업을 하며 이용자가 5400만명에 달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기후변화 대응을 ‘의무’가 아닌 ‘새로운 기회’로 받아들이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며 “더 많은 국내 기후테크 기업을 발굴하고 시민들의 기후행동 동참을 이끌어 내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