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팀 국가신인도 지키기 안간힘…내란 길어지면 장담 못해
계엄 발령 11일째 … 윤 대통령·여당 반발에 탄핵 일정 불확실
최상목, 3대 국제신용평가사 “한국경제 견고·안정” 강조했지만
해외시장은 ‘한국시장 정치 불확실성 해소 못해’ 의심 여전해
윤 대통령 입 떼자 증시 또 ‘출렁’ … 14일 불확실성 해소 분수령
내란사태가 열흘 넘게 이어지면서 한국의 국가 신인도가 흔들리고 있다. 정치 불확실성이 경제 불확실성을 키우고 다시 실물경제를 뒤흔드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의 정치상황에 대한 해외의 우려는 국가신용등급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국가 신인도가 하락하면 국채 이자가 오르고, 금융기관은 자금을 빌릴 때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외국인 투자 자금이 대거 유출되면서 국내 증시에도 악영향을 준다. 특히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수입 비용이 증가해 물가는 오르고 기업 부담이 가중된다.
내란사태 이후 경제팀이 연일 경제점검회의를 열고 주요국을 만나 “한국 경제는 견고하다”고 메시지를 내는 것도 이런 우려에서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13일 글로벌 신용평가사들과 접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정치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으면 경제팀의 이런 노력도 허사다. 시장과 글로벌 투자자들은 ‘당국자의 말’이 아닌 정치 불확실성 해소 여부를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신용등급을 지켜라 = 3일 기획재정부는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 무디스, 피치 등 글로벌 3대 신용평가사가 최상목 부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은 견고하고 안정적’이라고 밝혔다.
이들 신용평가사들은 “한국의 모든 국가시스템은 종전과 다름없이 정상 운영되고 있다”는 최 부총리의 설명에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자 하는 노력은 신용 평가에 매우 유용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답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3사는 “최근의 정치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은 여전히 안정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이번 사건을 통해 오히려 한국의 제도적 강인함과 회복력을 체감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고 기재부는 전했다.
S&P 로베르토 싸이폰-아레발로 국가신용등급 글로벌 총괄은 “최근 사태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국가시스템이 잘 작동했다는 점이 신용평가사에게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며 “사태 직후 이뤄진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등 금융당국의 신속한 시장 안정화 조치는 한국의 경제시스템이 얼마나 강건한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덧붙였다.
◆무디스 “정치상황, 예의주시” = 하지만 신용평가사들은 국회의 탄핵결의 여부 등 한국의 정치상황이 국가신용등급 변화에 관건이 될 것이란 점도 시사했다.
무디스 마리 디론 국가신용등급 글로벌 총괄은 “한국의 정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한국의 견고한 법치주의가 높은 국가신용등급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점을 재확인했다”고 말했다. 비상계엄 발령 2시간 여만에 국회와 국민의 신속한 대응으로 계엄해제를 결의하고 지켜낸 상황을 빗댄 것으로 풀이된다.
최 부총리는 글로벌 3대 신용평가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헌법과 시장경제, 위기관리 등 한국의 모든 국가시스템은 종전과 다름없이 정상운영되고 있다”며 “과거에도 두 차례 탄핵으로 혼란이 있었지만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었다”고 설명했다.
또 ”최근 야당이 제안한 여야정 경제협의체에 정부가 적극 참여할 예정”이라며 “앞으로도 경제문제와 관련해서는 국회와의 원활한 소통과 협조가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10일 최 부총리는 야당이 제안한 ‘여·야·정 3자 비상경제 점검회의’ 관련, “협의체가 구성되면 정부는 적극 참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외국인 투자자 등 모든 경제주체들이 평상시와 같이 안정적인 투자·경영활동을 해나가는데 문제가 없도록 할 것”이라며 “반도체·인공지능(AI) 인프라 확충방안, 조선·항공·해운 경쟁력 제고방안, 석유화학산업 지원방안 등 한국 경제를 한 단계 도약시키기 위한 노력도 여전히 해나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피치는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은 ‘AA-/안정적’ 수준으로, S&P는 AA 수준으로 평가하고 있다. 무디스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2015년 12월 Aa3에서 Aa2로 상향한 후 10년째 같은 등급을 유지하고 있다.
최 부총리는 이어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외국인 투자기업 간담회를 열고 ‘해외투자자 달래기’에 나섰다. 이날 간담회에는 르노코리아, 한국쓰리엠 등 10개 외투기업이 참석했다. 최 부총리는 간담회에서 “대한민국의 경제시스템은 굳건하며 정부의 긴급 대응체계도 정상 작동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경제 안정과 대외 신인도 유지를 위해 경제팀이 모든 역량을 총동원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외투기업의 국내투자와 활동에 걸림돌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12월14일 한국경제 운명의 날 = 결국 오는 14일 오후 5시 열릴 국회 본회의가 한국의 국가신인도를 가를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이날도 대통령 탄핵을 결정하지 못하면 시장과 해외투자자들의 ‘셀 코리아(Sell Korea)’가 더 거세질 것이기 때문이다. 2차 탄핵불발은 곧 한국의 정치 불확실성 장기화로 판단할 수 있어서다.
지난 3일 비상계엄 사태 이후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도세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 12일 기준 외국인은 코스피에서 3거래일째 매도세를 보이며 3320억8500만원을 팔았다. 이달 들어서는 1조850억2700만원을 팔았다.
내란사태가 촉발한 원·달러 환율 급등도 외국인 투자심리를 저하시키고 있다. 11월말 한때 1390원대였던 원·달러 환율은 이날 오전 9시 현재 1432.5원을 기록, 초강세를 보이고 있다. 국내 정치 불안으로 원화가 약세인 상황에서 글로벌 달러화 강세까지 가세한 영향이다. 환율이 상승하면 원화 통화가치가 하락해 투자자산 가치에 영향을 미쳐 외국인 투자심리를 떨어뜨린다. 원화 통화가치가 하락하면 중장기적으로 국내 기업의 수익성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국내 시장에 대한 리스크로 작용한다.
실제 전날에도 금융시장은 ‘윤석열 리스크’로 출렁였다. 이날 오전 9시40분쯤 윤석열 대통령이 예고에 없던 담화를 발표하자마자 국내 주가지수는 급락하기 시작했다. 한 때 장중 최저가 수준까지 떨어질 정도였다. 오후 들어 기관투자자를 중심으로 반발 매수세가 확대되면서 겨우 진정됐다. 여당 내에서 ‘탄핵 찬성’을 표명한 의원들이 8명까지 늘었다는 소식도 힘을 보탠 것으로 풀이된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현재 정치와 경제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유일하고 가장 빠른 방법은 탄핵”이라며 “한국의 정치일정이 명확하고 돌이킬 수 없다고 판단해야 시장과 해외투자자들도 안심하고 바이코리아(Buy Korea)를 시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